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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수진오속"

신라시대의 다도 문화

by 룡하

이키가이 편에서 최치원의 다도와 관련하여 글을 적을것이라고 했다. 식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신라시대의 식문화를 알아보고자 한다.


혹 중국향을 선물하는 사람이 있으면, 질화로에 잿불을 담아 둥 근 환으로 만들지 않고 사르면서, ‘나는 이것이 무슨 냄새인지 알 지 못하며, 다만 마음을 경건하게 할 따름이다’고 하였다. 또 중국 차를 바치는 자가 있으면, 땔나무로 돌솥에 불을 때면서 가루로 만들지 않고 달이면서, ‘나는 이것이 무슨 맛인지 알지 못하며, 그 저 뱃속을 적실 뿐이다’라고 하였다. 참됨을 지키고 속됨을 거스르기(守眞忤俗)가 이와 같았다.59)


59) “或有以胡香爲贈者 則以瓦載煻灰 不爲丸而焫之曰 吾不識是何臭 虔心而已. 復有以漢茗爲供者 則以薪㸑石釜 不爲屑而煮之曰 吾不識是何味 濡腹而已. 守眞忤俗 皆此類也”, 최치원, ≪고운집≫, <비・진감화상비명>, 한국고전 종합DB.


그는 돌솥에 땔나무로 지펴서 가루를 내지 않고 끓이는 방식과 뱃 속을 적시는 것을 ‘참됨(眞)’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와 대비되는 중국 의 철솥62)에 숯을 지펴서 가루를 내어 끓이는 방식과 차맛을 분별하 는 것은 ‘속됨(俗)’이 된다. 그렇다면 참됨의 내용은 돌솥과 땔나무를 사용하는 검소함, 가루 내지 않고 끓이는 소박함 그리고 따뜻한 찻물 로 뱃속을 적시면 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수진오속(守眞忤 俗)’은 고급 중국차를 대할 때 세속에서 추구하는 형식과 맛에 걸리지 않고, 검소하고 소박하게 끓여서 선수행에 유용한 차의 갈증해소와 각성효과를 취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진감선사가 중국차에 정통하 고 흥덕왕의 총애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선사였음을 감안한다면, 그 의 소박한 음다는 중국차와 신라차의 분별을 초월하고 차의 본질을 취하는 남선종 수행의 실천이었던 것이다. 즉, 수진오속은 형식과 분 별을 내려놓고 곧바로 불성을 깨닫는 선종의 종지와 완전히 합치된다.

한편, 위 비명의 내용은 최치원이 진감선사의 차생활을 기록한 것 이지만 실제로는 최치원 본인의 차생활과 음다경지를 드러내고 있다 고 봐도 틀리지 않다. 왜냐하면 857년에 최치원이 태어났을 때 진감 선사는 이미 입적한 지(즉 850년 열반) 수년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 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실질적으로 서로 만나거나 차를 마셔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탑비도 진감선사가 입적한 후 30년이 지난 887 년 건립되었다. 물론 이 차사(茶事)가 실제 진감선사의 일로서 그의 제자들이 최치원에게 들려주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적어도 ‘수진오속’ 이란 말은 최치원이 창안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게다가, 차를 끓일 때 찻덩어리를 갈아서 가루로 만드냐 안 만드냐는 일을 심오한 선 (禪)과 연결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차와 차문화에 대한 제반 지식은 물론 유불도와 풍류도를 섭렵한 깊은 철학적인 소 양을 가진 최치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또한 이 ‘수진오속’에는 최치원이 신라로 돌아와 주창하기 시작한 주체적인 동인의식도 내재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수진오속’은 우리 차문화사 상 문헌에서 나타난 최초의 다도정신이자, 최초로 등장한 차생활을 통해 도달한 다도경지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출처 : 이행철 and 김일림. (2021). 차인(茶人) 최치원 연구. 동아인문학, 57, 411-444.


수진오속은 守眞忤俗 지킬수, 참진, 거스를오, 풍속속으로 참됨을 지키고 속됨을 거스른다는 뜻이다. 이는 선불교와 연결된다.


특히 성본스님은 선불교의 사상을 ‘각자 인생관의 혁신’으로 요약한다. 다시 말해 선불교는 일체의 권위나 형식 관념에서 탈피하여 인간 각자의 본래 자연 그대로의 참된 자아(불성)를 깨닫고 지금 여기에서 지혜로운 삶을 창조하는 현실의 종교라는 것이다.


출처 : 허정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중국 선불교 사상, 불교신문, 2020.10.05,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286


최치원의 "수진오속"은 본래 자연 그대로의 참된 자아(불성)를 깨달은 정신적 경지를 다도와 연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신라시대의 식문화를 식품으로 만들 때 참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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