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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소네트"

더 많은 갤러리

by 룡하

내 기나긴 인생의 여정은 폭풍 치는 바다를 지나,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배에 의지해,


지난날의 모든 행적을 기록한 장부를 건네야 하는,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항구에 도달했다네.


예술을 우상으로 섬기고 나의 왕으로 모신,


저 모호하고 거대하며, 열렬했던 환상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네.


나를 유혹하고 괴롭혔던 욕망도 헛것이었네.


옛날에는 그토록 달콤했던 사랑의 꿈들,


지금은 어떻게 변했나, 두 개의 죽음이 내게 다가오네.


하나의 죽음은 확실하고, 또 다른 죽음이 나를 놀라게 하네.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네.


이제 나의 영혼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껴안기 위해


팔을 벌린 성스러운 사랑을 향해 간다네.


The course of my long life hath reached at last,


In fragile bark o’er a tempestuous sea,


The common harbor, where must rendered be


Account of all the actions of the past.


The impassioned phantasy, that, vague and vast,


Made art an idol and a king to me,


Was an illusion, and but vanity


Were the desires that lured me and harassed.


The dreams of love, that were so sweet of yore,


What are they now, when two deaths may be mine,


One sure, and one forecasting its alarms?


Painting and sculpture satisfy no more


The soul now turning to the Love Divine,


That oped, to embrace us, on the cross its arms.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사람이 노년을 맞아 예술을 버리는 심정이 담담하고 절절하게 표현된 시를 보며,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 떠올랐다. 균형과 조화라는 르네상스의 이념을 버리고, 뒤틀린 인체로 가득한 화면에서 내가 읽은 건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위기를 맞은 유럽의 기독교 세계


미켈란젤로는 신앙심이 두터운 가톨릭 신자였다. 사춘기에 메디치의 예술교육을 받은 그는 메디치를 둘러싼 인문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아름다움을 통해 신에게 도달한다”는 신플라톤주의(Neo-Platonic)를 신봉했다. 이상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조각해 신에 이르려 했던 그의 욕망은 종교개혁의 회오리를 지나며 흔들린다. 흔들리는 자신이 두려웠기에, 그는 신앙심을 고백하는 그토록 많은 소네트를 써야 했다.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게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고,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과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그는 행복했을까. 젊은 날에 자신을 사로잡았던 예술이라는 위대한 환상을 걷어차고, 십자가에 의지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죽기 며칠 전에 조각한 ‘론다니니 피에타’를 닮았다.


“예술은 착각이었네. 욕망도 헛것이었네.”


또 다른 시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며 그는 이렇게 한탄한다.


“아- 내 자신에게만 오로지 속했던 날은 하루도 없었네.”


정말일까? 미켈란젤로가 남긴 조각과 그림과 건물들은 그의 것이 아니었나. 그의 엄살을 나는 좀 귀엽게 봐주련다. 예술은 원래 과장이다.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처절하게 반성하는,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그의 태도야말로 르네상스적인 것이다.


출처 : 최영미,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서울신문, 2017.03.29, https://www.seoul.co.kr/news/editOpinion/column/cjoiyoungmi/2017/03/30/20170330029006


두 개의 죽음 중 확실한 죽음은 미켈란젤로의 죽음일 것이고, 미켈란젤로를 놀라게 하는 또 다른 죽음은 노년을 맞아 예술을 버리는 심정을 표현한 죽음일 것이다. 이상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조각해 신에 이르려 했던 미켈란젤로는 젊은 날에 자신을 사로잡았던 예술이라는 위대한 환상을 걷어차고, 십자가에 의지한다.



세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역사 10화 로마, "카이사르" 편에서 배부른 소트라테스, 인문학을 즐기되 경제적 여유(풍요)를 가진 사람으로 죽을 것이라고 적었다.


세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역사 21화 스페인, "카를" 편에서 '플루스 울트라(이 너머로 나아가라)'를 나의 모토로 삼고 끊임없이 여행하며 강철로 된 무지개, 나의 운명을 사랑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네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영화 15화 잔 뒤 바리 편에서 아름다움을 죽기 직전까지 사랑하고 싶다고 적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읽는 시 3화 이상, "거울" 편에서 자유 의지로 아름다운 갤러리를 만들고 싶다고 적었다.


네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영화 19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 Infinito) 편에서 미켈란제로가 망치와 끌로 대리석을 조각하여 보여준 '물질 안에 속박되어 있는 개념'과 미디어아트를 연결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1. 한국 - 문무왕

2. 일본 - 오다 노부나가

3. 그리스 - 알렉산드로스

4. 로마 -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5. 몽골 - 칭기즈칸, 쿠빌라이칸

6. 우즈베키스탄 - 티무르

7. 인도 - 바부르, 악바르

8. 스페인 - 카를

9. 프랑스 - 나폴레옹

10. 독일 - 비스마르크

11. 영국 - 아서


죽기 직전까지 위의 11개 외에 더 많은 갤러리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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