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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거울"

아름다운 갤러리

by 룡하

거울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 말을 못 알아 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요

내 악수(握手)를 받을 줄 모르는-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요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를 못하는 구료마는

거울이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기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至今) 거울을 안 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사업(事業)에 골몰할게요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反對)요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診察)할 수는 없으니 퍽 섭섭하오


출처 : 이상, 『李箱 이상 작품집』, 자화상(2019), p11-12



2. 타자로서 반영된 자아적 이미지


자아는 한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 타자3 와의 관계로 형성된다.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자아가 어떤 의미나 방식으로 현상을 구성하고 현상과 관계를 맺으며, 현상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실현시키는가에 중요성을 두어, 관계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 즉 자아는 그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며, 그 관계를 통해 비로소 형성된다는 것이 탈 현대의 주장인 것이다.


현대적 정체성의 형성은 쟈크 라캉4의 주체분석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시작된다. 『주체의 기능 형성 요소로서의 거울단계』라는 글에서 라캉은 유아단계에 있는 주체가 자신의 거울 이미지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사회적 관계 속에 놓인 자신의 지위를 인식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또한 라캉에 따르면, 유아는 생후 18개월경에 거치는 전언어적인(prelinguistic) ‘거울단계’5를 통해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 사이의 분리를 경험하고 주체와 대상, 주체와 타자간의 관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거울단계의 기능은 유기체와 현실, 달리 말해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사이에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라캉은 거울단계를 통해 주체의 형성과정을 두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하나는 상상계(l'imaginaire)6이고 다른 하나는 상징계(le symbolique)7이다. 상상계에서 자기와 타자, 이 두 관계항은 서로 구별되지 않고, 자기가 곧 타자이고 타자가 곧 자기이다. 하지만 상상계에서 자아의 형성은 완결되지 않고 상징계에 진입함으로써 보다 성숙된 사회적 자아를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타자에 의해 나의 존재를 객관화한 상징적 단계의 자아 역시 완결된 것은 아니다. 라캉에게 있어서 주체의 존재가 고정된 실체가 아니듯이 타자도 고정된 실체적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나에 대한 타자의 언술 또한 서로 모순되고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타자의 언술에 완전히 일치할 수 없고, 자아의 존재는 타자에 의해 완전히 충족되거나 소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캉은 대화 속에서 자신을 '나'라고 지칭하는 나와 나의 말속에서 '나'로 지칭되는 나 사이의 차이에 주목한다. "나는 무엇을 한다" 라는 말을 할 때, 말하고 있는 에고 (ego)8와 말속의 '나'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라캉은 바로 이 두 주체 사이의 틈을 중시한다. 이는 의식된 자아보다 의식되지 않은, 즉 무의식적 생각(나의 존재를 규정하고 내가 무의식중에 받아들인 타자의 언술)이 인간의 정신생활에 훨씬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적 생각은 나의 의식적인 노력과 무관하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나의 의식적인 의도는 무의식에 기록된 생각으로 인해 내가 행하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나를 몰고 간다.” 이를 통해 라캉이 말하고자 한 것은 나는 (자아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곳 뿐만 아니라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도 현존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라캉의 언어로 재구성할 수 있다. 라캉의 이론대로라면 생각하고 있는 나와 그 말을 하고 있는 나는 다르다. 따라서 테카르트의 말은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라는 말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내가 스스로 의식할 수 없는 곳에 있기 때문에 내 자신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없다. 타자의 언술은 나를 사로잡고 있으며 내가 스스로 만든 나의 모습을 부단히 깨뜨려버린다. 그러므로 무의식적 언술의 결과인 증상들로 인해 나의 동일성이 흔들리고 나는 또 다시 “나는 누구인가?”라고 거듭 대뇌이게 된다. 결국 자아의 형성은 한 기제에 머물지 않고 다음 단계로 이행함으로써, 은유와 환유에 의한 끊임없는 원환운동을 상징한다. 즉, 자아는 의식세계 안에서, 또는 무의식 세계 안에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자의 관계 사이, 의식과 무의식 세계 사이를 교가하며 형성되는 것이다.


3) 타자에 대한 논의의 시작은 근대적 의미의 주체(subject) 개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식 사유체계에서 주체는 완벽한 에고(ego)이며 그의 언어는 이성이다. 합리적 이성에 바탕을 둔 데카르트의 주체 개념은 통합된 이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이후 철학자들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되는데, 20세기 후반부의 문화적 흐름은 인간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데카르트의 주체개념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키워낸다.

4) Jacques Lacan(1901-1981) : 프랑스의 철학자・정신분석학자.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정신분석학을 생물학이나 사회학으로 해석한 프로이드의 이론을 언어학을 통해 보다 더 발전시킨 이론으로 정립하였다.

갓 태어난 아이는 6개월이 되기 전까지 자기 몸을(신체를) 서로 연관 없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끼다가 6개월 이후 24개월 사이에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통해 아이는 비로소 자기 몸의 전체상을 지각하고, 그 모습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과 완전히 동일시할 수 없는 것이다. 비춰진 상은 이미 좌우가 바뀐 것이며, 아이가 확인한 ‘자기’는 자기 자신 속의 내재적인 자아가 거울에 비쳐 나타난 것이 아니라 거울이라는 타자를 통해 비로소 구성된 자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아이는 자신과의 소외를 경험하지만 아이는 거울이라는 타자 속에 비친 영상과 자신이 이분화된 동일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오인하면서 “나는 나다”는 동일률을 스스로 정당화 하려하며, 자기 자신이 거울 속에 비친 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상상한다. 어린아이는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통해 비로소 존재의 상상적 수준을 넘어 어떤 통합된 전체로서의 주체/대상 개념을 따로 분리시켜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 상태가 바로 거울단계이다.

6) 상상계는 거울단계의 주체가 부분적으로 속하는 곳이다. 이는 언어이전의 단계로서 주체(subject)와 대상(object)간에 명확한 구분이 없는 때이며,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대상을 주체로부터 구분할 수 있는 중심적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7) 라캉에 따르면 상징계의 특징은 타자와 자신의 구별이며, 이 수준에서 아이는 차연의 세계인 언어로 형성된 보편적 질서의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아이는 지칭사(이름)를 갖게 되며, 이름을 통해 의미의 그물 속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객관화하며 가족과 사회의 관계 그물 속에서 일정한 자리를 얻게 된다. 이는 의미의 세계를 가능케 하고, 구분을 지으며, 타자와의 관계를 제정한다. 상징적 단계에서 자아를 자아로서 구성하는 것은 곧 타자의 언술이며, 주체는 타자를 통해서, 타자의 언술에 관여함으로써 주체가 된다.

8) 사고, 감정, 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에 수반하고 통일하는 주체.


출처 : 박소정. "투영과 반영에 의한 자아적 이미지의 표현." 국내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2001. 대한민국


이상이 ‘거울’을 제목으로 삼은 위의 시가 분열된 주체의 양상을 담고 있다는 것에는 연구자들 간에 별 이견이 없다.14 이 시 외에 이상이 거울을 소재로 삼은 시들을 두고 “현실 너머의 영역”을 상기시키고, “현실과 현실 너머의 중간에 끼어 있는 인식 도구”를 거울로 삼았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15 이상에게서의 거울이 분열된 자기를 비추고 있든 현실의 너머를 가리키고 있든, 정효구16의 말대로 거울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기능을 벗어나는 소재는 아니다.

거울은 인간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닌 도구로 여겨진다. 자기의 발견을 위해 거울 앞에 선다는 말이다. 이상 또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만나는 ‘나’는 소리 없는 세상 속에 있다. 그가 말하는 소리는 ‘말’이다. 거울 속의 ‘나’는 ‘두 귀’를 갖고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딱한 존재이다. 거울은 ‘거울상’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에 반사를 위한 질료적 물질이 없으면 거울이 될 수 없다.17 본래적으로 거울은 막힌 사물이며, 소통이 불가능하다. 거울 자체가 비출 대상이 없고 그 대상이 맺힐 질료적 표면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거울은 환상 그 자체이다. 거울을 만드는 질료는 그 질료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相)이 맺히는 빈 공간, 공백으로만 거울의 가능성을 지닌다. 이는 언어의 본질과 닮아 있다. 언어는 물(物) 그 자체(Das Ding)를 타살하고 언어적 질서 위에 물을 반영함으로써 물의 존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인간 주체가 거울을 통해서 아무리 자기를 찾으려 해도, 거울의 막 (膜) 위에서 보는 것은 ‘거울상’이며, 환상이다. 그 안에 ‘나’(거울상)는 왼손잡이이고, 말이 소리가 될 수 없는 소통불가능에 절망한다. 라캉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 자기를 인식하는 거울 단계에서 심리적 정신적 분열을 경험한다. 거울에 비친 형상은 통일된 하나의 상으로 자기를 나타내지만, 그 몸의 외형은 비춰진 심상(images)일뿐, 자신을 영원히 소외시키기 때문이다.18 거울 속에 나는 있지만,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만질 수 없’다. 하지만 이상의 말대로 거울이 아니었으면 거울 속의 나를 만날 수조차 없다. 언어가 사물을 타살하고 주체에게서 본질을 소외시키지만, 언어가 아니고서는 그 본질에 접근조차 불가능하다19는, 언어적 존재인 인간에 대한 라캉의 설명을 환기시킨다.

라캉의 주체는 말하는 주체(parlêtre)다. 말하는 주체는 생각하는 존재와 현존재의 분리가 재현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 주체가 지닌 내적 이질성(heteronomy)인 소외와 외적 탈중심성(ex-centricity)인 분리를 수용할 때 주체화가 가능해진다.20 거울 밖에 서 있는 ‘나’는 말하는 주체이지만, 거울 속의 ‘나’는 소리 없는 세상(상상계) 안에 사는 환상 속의 자아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거울을 가지지 않아도 거울 속에는 늘 내가 있다. 그것이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이다. 라캉의 상징계는 언어적 질서 위에 있다. 그 언어적 질서의 변증법적 운동을 개시하는 것은 공백(틈)이다.21 그 공백을 환상이 아니라, 근본적 모순과 현실의 비-전체성으로 보기 시작할 때 주체화가 시작된다.22 이상은 거울을 통해서 인간 주체의 분열만 확인한 것이 아니라, 거울이라는 환상과 실존 간의 공백을 주체화 가능의 시작점으로 연다. 나는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딱한 나’로 소외되면서 거울 속의 자아가 실존이 아님을 안다. 그 순간이 상징계의 틈이고, 공백이다. 바른손과 왼손으로 만나는 실존과 환상은 악수할 수 없다. 주체화는 이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상은 거울 속의 ‘나’가 ‘외로된’ 일(事業)에 골몰할 거라는 걸 안다. 거울 속에서는 상상계에 고착된 환상만 가능하기 때문에 나의 일이 언어질서 속에 올라오지 못한다. 그 상상적 이미지를 온전히 가지기 위해서는 상상계가 상징계 속에 존재해야 한다. 라캉은 인간 발달 단계 중 생후 8개월부터 오이디푸스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를 ‘거울단계’로 명명 하고, 그 시기에 인간은 거울이미지에 자신을 동일화하여 정체성을 획득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정체성은 상상적 이미지로, 그것과 분리된 어떤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주체화가 일어난다. 주체에게 거울 이미지가 타자의 시선으로 존재함으로써 주체를 표상하는 하나의 상징을 재현할 때 상징화(주체화)가 시작되는 것이다.23 나와 닮은 거울 속의 나가 결국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주체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주체는 상실한 대상과 더불어서만 존재한다. 대상 그 자체를 ‘나에 대해’ 상실한 것으로 의미할 수 있을 때, 주체로서 성립된다.24 거울 속의 나를 상실한 상태, 염려하고 진찰할 수 없는 섭섭한 상태를 이상은 그대로 수용한다. 인간이 하나의 주체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상징적 사고 안에서 상상계 혹은 환상을 구분해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14 대표적으로 정효구(1984), 김수이(1995), 신형철(2002), 김예리(2008), 함돈균(2010) 장영희(2011), 정성은(2016) 등의 연구를 들 수 있다.

15 권희철, 「이상 시에 나타난 비대칭 짝패들과 거울 이미지에 관한 몇 가지 주석」, 『이상리뷰』, 이상문학회, 2009. 225면.

16 정효구, 「이상과 윤동주 시의 거울 이미지 고찰」, 『국어국문학』92, 국어국문학회, 1984. 351면.

17 김예리, 「이상 시의 공백으로서의 ‘거울’과 지도적 글쓰기의 상상력」, 『한국현대문학연구』25, 한국현대문학회, 2008. 115면.

18 어도선, 「라깡의 “거울단계”이론: 포스트 모더니즘의 몸 철학과 문화비평」, 『비평과 이론』2(1), 한국비평이론학회, 1997. 68-69면.

19 Fink, B., The Lacanian Subject: Between Language and Jouissance, Princeton Univ. Press, 1995, 24면.

20 배선윤, 「철학적 사유와 주체화」, 『현대정신분석』21(2), 한국현대정신분석학회, 2019, 68면.

21 위의 책, 66면.

22 김석, 「라캉과 지젝: 주체화 윤리와 공동선을 향한 혁명」, 『시대와 철학』25(2),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4, 8면.

23 박선영, 「불안, 거울단계, 부정성: 주체 형성의 변증법」, 『비평과 이론』4(1), 한국비평이론학회, 2009, 170-171면.

24 Kristeva, J., Le géne fémini, tome Ⅱ Melanie Klein ou le matricide comme douleur et créativité, 박선영 역, 『정신병, 모친살해, 그리고 창조성』, 아난케, 2000/2006, 303면.


출처 : 배선윤 (2020). 이상의 ‘거울’, 환상의 기표에 비친 주체 인식. 이상리뷰, 16, 111 - 136.


거울 속의 나를 상실한 상태, 염려하고 진찰할 수 없는 섭섭한 상태를 이상은 그대로 수용한다. 인간이 하나의 주체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상징적 사고 안에서 상상계 혹은 환상을 구분해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세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역사 10화 로마, "카이사르" 편에서 배부른 소트라테스, 인문학을 즐기되 경제적 여유(풍요)를 가진 사람으로 죽을 것이라고 적었다.


세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역사 21화 스페인, "카를" 편에서 '플루스 울트라(이 너머로 나아가라)'를 나의 모토로 삼고 끊임없이 여행하며 강철로 된 무지개, 나의 운명을 사랑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네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영화 6화 죽은 시인의 사회 편에서 헤리티지 미디어아트 갤러리 창업을 통해 인문학에 대한 사랑을 책임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네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영화 15화 잔 뒤 바리 편에서 아름다움을 죽기 직전까지 사랑하고 싶다고 적었다.


네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영화 17화 블랙 스완 편에서 자유 의지가 만들어낸 순간을 원한다고 적었다.



운명과 자유의지는 대척하는 개념이고 동시에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 진리라고 해도 우리는 이 세계가 운명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 아니면 자유의지에 의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다. 결국 결론은 하나로 수렴한다. 둘 다 믿는 거다. 스스로의 선택에 자유의지를 실현한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는 내가 바라는 대로 이뤄질 운명이라고 믿어야 한다. 고로 운명과 자유의지는 병존할 수 있다.


출처 : 안혜성, "[기자의 눈] 운명과 자유의지", 법률저널, 2021.11.19, https://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732005



난 나의 자유 의지로 아름다운 갤러리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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