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느 날, 내담자는 약간의 침묵 후,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들 그러더라고요. 그냥 넘기라고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빛바랜 기억 하나가 속에서 울렸다.
나 역시, 그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익숙한 말이다.
‘그 일쯤이야’
‘다 그런 거야’
‘그냥 무시해’
— 마치 정서를 덮어버리려는 눅눅한 담요처럼, 말들은 가볍고 덧없이 흘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마음은, 그 울림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오며, 수없이 ‘별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다. 때로는 부모에게, 때로는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때로는 친구나 동료에게.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말이다.
그 말은 마치 감정을 정리하지 않고 물어도라는 허락처럼 다가온다. 마치 감정이 거추장스럽고, 치워야 할 짐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감정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미처 다하지 못한 울음을 기억해 낸다.
“그때, 사실 나 힘들었어.”
“그 말이, 나한텐 아팠어.”
이 단순한 말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눌려 있었는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저릿하다. 정서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돌봐져야 하는 것이다. ‘별거 아닌 일’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마음은 분명히 무언가를 느낀다. 그리고 그 느낌은, 말해질 때 비로소 방향을 찾는다.
내담자의 말 앞에서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감정이란 결코 ‘별거 아닌 것’이 아니라고. 그 조용한 울림을, 누구도 대신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 나이 땐 다 그래.”
“지나고 나면 별거 아냐.”
“그걸로 그렇게 힘들어해?”
ㅡ 이 짧은 문장들은 내 마음을 작고 하찮게 만들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는 걸까?’
타인에게서 시작한 그 말들이
나에게서 피어날 때 마음의 문은 점점 무거워진다.
하지만 감정은 논리로 꺾이는 것이 아니다.
사라지라는 명령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은 먼저, 그저 소리를 낸다.
상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건 사소한 건데요…”라며 머뭇거리는 그에게
나는 조용히 말한다.
“전혀 사소하지 않아요. 바로 그 지점이, 가장 중요할 수 있어요.”
힘듦을 말한다는 건
해결책이나 결론을 구걸하는 일이 아니다.
그 감정이 존중받아도 되는 마음이라는 걸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남이 아닌 나 자신에서 올 수록 더욱 깊고 포근하다.
“별거 아니야”라는 말에 꺾였던 순간이 있다면,
당신은 예민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 정직했던, 진솔했던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 진솔함이 결국
당신을 다시 숨 쉬게 할 것이다.
가장 당신답게, 가장 나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