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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하지 않고, "진짜" 나를 마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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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지


본 칼럼은 정서중심치료(Emotion-Focused Therapy)를 기반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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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so far




진단하지 않고, "진짜" 나를 마주하기.
상담에서의 자기 이해는 깊이가 다르다.



수도 없이 이뤄지는 평가, 판단. 당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확실하고 구체적이고 답이라는 것을 선호한다. 여기서 필자가 당신과 나누고자 하는 건 전문가가 내리는 진단 diagnosis 이 아님을 확실하게 하고 시작한다.



심리건강과 관련된 질문을 쭉 모아 놓고 보면, "제가 0000은 아닐까요?" "______증에 해당하는 00가지 증상" "당신이 000이 아닌지 알 수 있는 3가지!!" 등 자신이 해당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평가하기 혹하게 만드는 정보가 넘쳐난다. 대중에겐 매우 유혹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의 불안함에 파고들기 쉽게 정보는 흘러넘친다.



실제로 유능한 임상가일수록 진단을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 그만큼 진단이 갖는 영향력을 고려하는 것일 테고, 그것이 그리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도 이에 매우 동의한다.



진단만 그렇겠는가? 넘쳐나는 심리검사 또한 그렇다. 심리검사만의 장점은 분명 있으나, 심리검사가 만들어지고 전문가의 의도와 다르게 오남용이 넘쳐나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당신이 평가와 판단, 진단에 몰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주 중요한 질문이니 잠시 시간을 내서 답해보자. 당신이 정말 필요하고 목표로 하는 것이 진단 그 자체라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만약에 당신이 바라는 것이 회복, 변화, 평안한 일상, 자기 성장, 자기 이해라면... 그 방법은 건강하지 않다. 매우 충분하지 않다.



심리건강과 자기 이해를 가볍게 생각하거나 대충 넘기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이를 위한 방법에서도 매우 단순하게 행동한다. 예를 들면, "심리상담 같은 것을 왜 받냐?" "그냥 술 마시고 잊어버려" "정신력이 약해빠져서 그렇지, 그냥 참고 견뎌. 노력해!" "다들 너만큼 힘들어. 안 힘든 사람이 어딨냐?" "약해 빠진 소리 좀 그만해" ... 등 너무도 많은 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매우 근시안적이면서, 위험하고, 무책임하며, 부적응적인.




우리는 너무도 이런 말과 분위기에 오랫동안 잠식되어 살아왔다. 그래서 그 말이 맞는 말 같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참고 버티거나 어서 빨리 진단을 내려서 답을 내리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 틀렸다. 그건 자신을 이해하고 돌보는 방법이 아니라, 더욱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행위다. 당장 멈춰야 한다.




심리검사 결과, 진단, 유형 등...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진단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타인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식의 태도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유연함과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수용적 태도를 앗아간다. 당신의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다른 사람과의 연결감은 낡아가다가 끊어질 것이다. 자신만의 틀에 갇히고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것이며 외부 관계와의 단절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과 다양성을 환영은 물론 음미할 수 없는 지경이 이를 것이다. 평가와 판단에만 국한된 유형에 갇히면서, 그 외 상황이나 부분에 대해 대처도 점점 열악해질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가진 특별함과 실현 경향성을 잃어갈 것이다.




이것이 진정 당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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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here and now




진단하지 않고, "진짜" 나를 마주하기.



심리검사 결과, 진단 등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 과정 또한 평가적이지 않아야 한다.



판단적인 태도는 자기 이해를 더욱 좁힌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만으로 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진단은 진단일 뿐이다. 변화와 자기 이해는 그와는 또 다른 과정이다.




'나를 이해한다'라는 것은 글자로만, 지식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살아간다. 지식만으로도 해결되는 수많은 일과 자기 이해는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실제로 자기 자신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물론 실제로 체험을 하면서 이뤄진다. 외부의 체험도 있지만, 내부에서 일어나는 체험도 있다. 즉, 어디론가 떠나서 어떤 활동을 신체를 사용해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변화와 발생에 주목하고 이를 음미하는 것도 체험이다. 그래서 온전한 자기 이해는 한 방향, 단일 방식이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자신을 함부로 평가/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에게 어떠한 타이틀을 걸지 않는 것이다. 진단명이 아닌 그저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글자가 당신을 잠식하고 통제하도록 두지 않는 것이다. 어떠한 글자를 나 자신에게 걸기 시작하는 순간 빨려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커진다. 당신은 평가/판단하지 않고도 자신을 바라보고 마주하고 이해할 수 있다.




아마 처음에는 낯설고 많이 어려울 것이다. 평생 평가와 판단 속에 파묻혀 살아온 우리 보고, 그러지 말아야 한다니... 너무도 어려운 주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충분히 가능하다.




당신이 나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면, 이미 당신은 그 어려운 한 발짝을 내디딘 것이다. 불편할 수도 있고 어색한 이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일 테니 말이다. 지금 당신은 자신을 진정으로 마주하는 과정 중에 있다.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니, 앞으로도 불쑥불쑥 올라오는 평가하고 싶고 판단 내리고 싶은 조급함을 알아차리고 다시 여기로 되돌아오면 된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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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앞으로

from now




상담에서의 자기 이해는 깊이가 다르다.



자기 이해는 평가와 판단을 내려놓는 순간부터 가능하다.



심리상담에서도 가장 처음에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개인이 겪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 감정과 정서를 살피는 것도 나를 온전하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있다. 많은 어려움과 괴로움은 자기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거나, 이를 훨씬 넘어서는 고통과 괴로움에 오랜 시간 잠긴 채로 자신을 이해하기보다 밀어내고 덮고 비난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오히려 폄하하고 공격하고 더욱 위험에 노출시키면서 자신을 이해하기보다 더욱 거칠게 다루고 통제만 하려는 것에서 비롯된다.





상담에서의 자기 이해는 깊이와 폭이 다르다. 진단, 평가와 판단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을 상처 입히는 방식이 아닌, 조심스럽게 존중하며 다가가면서도 너무도 괴로운 지점에선 혼자 남겨두지 않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개인차가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자신만의 부분 부분을 하나씩 세밀하게 살펴주고 마주한다. 가장 바로 드러나는 감정부터 서서히 다가가면서 마주하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정서까지도 살펴보게 되고 이해한다. 머리로만 하는 이해가 아닌 몸을 통해 전해지는 감각은 물론, 내면의 변화에 느낌에 반응하는 수준까지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통합적으로 경험한다.



자기 자신에게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깊은 수준으로 세밀하게 마주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때로는 괴롭고 꺼려질 수 있지만, 절대 강요하거나 밀어붙이거나 강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 순간을 그 과정을 함께 견디고 버텨주는 또 다른 존재, 상담자가 그 과정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취약해진 상태이든, 내가 가장 불안한 상태든 상관없이도 그 모든 부분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공감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로 함께 존재하는 상담자가 있기에 더욱 가능해진다. 상담자에게 나의 경험을 나누기도 보여주기도 공유하기도 하면서, 당신은 조금씩 바라보지 못했던 자신의 부분을 마주하고 이해해 간다.



모든 인간은 개인적이면서도 관계적이다. 그렇기에 경험의 정수는 <나>만이 가능하지만, 그 과정은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니, 단순히 한 번의 평가, 화려한 수식어, 와닿지 않지만 불안한 진단명... 이것으로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어떤 단어로 어떠한 수식어로 자신을 명명할 필요가 없다. 내가 나를 충분히 마주할 수 있고, 어떤 모습이든 들어줄 수 있고, 어떤 과정이든 기다릴 수 있다면... 단어 따위, 수식어 따위가 중요할까?




내가 나를 어느 누구보다 바라보고, 함께 존재한다면,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존중하고 이해해 줄 수 있다면,

어떤 다른 것, 누구도 필요하지 않은, 이미 나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로지 상담심리사 ㅣ Semicolon 심리상담센터

https://linktr.ee/semicoloncoun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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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 #안정 #자기이해 #심리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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