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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꿀 Aug 17. 2018

배움

8월 막바지로. 폭염이 한차례 꺾이고.

오랜만에 '디자이너의 순간'을 쓴다. 그 사이 끓어 넘치는 냄비처럼 뜨겁던 폭염도 어느새 한풀 꺾이고, 내 주변의 상황도 아주 조금씩은 변해가는 듯하다. 


저번 주 금요일부터, 회사에서 '영상 편집'을 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영상 디자인'이라고 할만한 수준은 되지가 않는다. 사실 이 정도 수준을 하게 된 것도, 팀장님의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유튜브에서 튜토리얼을 보며 맨땅에 헤딩을 하며 배워놓은 것이다. 여태까지를 생각해보면, 나는 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터와 인디자인을, 회사에서 포토샵을 미리 배워놓은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배워서 터득한 것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이런 경험들을 보았을 때, 나는 팀장님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잘하면  '영상 디자인'의 첫걸음마를 떼고, 숙련도를 쌓아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지시에도 거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바득바득 맞춰서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팀장님께서도 처음인 나의 상태를 고려하여 차근차근 영상의 퀄리티를 끌어올리려 하시는 중이시다. 


여태까지 배우려고 하다가, 너무 어렵거나, 막연해서 그만둔 공부가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가 나에겐 바로 코딩이었다. 이 코딩의 진입장벽은 어떻게 이런 곳에 글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코딩을 업으로 삼은 개발자인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이해를 못하거나 웃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코딩은 위지윅(What You See Is What You Get)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요즘 세대의 디자이너인 나에게, 그것도 독학으로 달려들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HTML/CSS로 시작했다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 포기하고 프로세싱이라는 자바 기반의 그래픽 표현에 용이한 언어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그러다 최근엔 다시 CSS에 도전해보아야겠다고 생활코딩을 들락거리다 지금 또 손을 놓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쯤 되니 코딩이라는 분야가 떠올랐을 때마다 나 스스로 참 부끄럽고, 숨고 싶고 그랬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디자이너로서 좀 더 넓은 분야를 다룰 수 있기를 항상 원했고, 욕심에 비해 좁은 나의 역량이 야속할 때가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 영상에 대한 공부가 정말 너무나도 반갑다. 프리미어 프로를 통해 알게 된 영상 편집의 난이도 자체는 많이 어렵지 않았다. 영사기의 필름을 다루듯이 필름을 자르고 붙이고, 사이사이 다른 컷도 넣어보고... 그런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은 영상을 단순히 자르고 붙이는 일뿐만 아니라, 부분 부분에 효과와 효과음/배경음악을 넣는 일도 어느 정도 할 줄 알게 되었다. 코딩이란 분야는 내가 어떻게 코딩을 나중에 활용할지 조차 잘 알 수 없어서, 이 험난한 길의 끝에 어떤 곳에 다다르게 되는지 감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상이란 분야는 내가 공부했던 시각 디자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이라, 이 길의 끝에 다다르면 어떤 내가 되어있을지 알 수 있었다. 코딩을 배울 땐 내가 뭘 모르는지 잘 모르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영상은 내가 뭘 모르는지 정확히 알고, 그 모르는 것을 깨우쳤을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보였달까. 이런 '나의 모르는 상태를 아는' 상황이 배움을 너무나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아직 많이 미숙하지만, 프리미어의 여러 환경설정과, 동영상 환경에 대한 이해, 여러 가지 효과를 적용하는 법을 익히고 나면 얼추 영상 편집의 일에 절반은 익숙해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후부터는 애프터 이펙트 또한 함께 공부하여, 모션 그래픽과 같이 진도를 나갈 계획이다. 


학생 때 여러 가지 툴을 많이 배워놓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지금에서야 후회를 한다. 학생 때는 역량을 키우지 못한 상태로 야망만 컸던 듯하다. 그러나 이제는 실패를 겪을 때마다 초조해하거나 슬퍼하지 않게 된 것이 학생 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작은 시도와 실패들을 통해서 무엇이든 얻어 나간다. 그 느린 과정 속에서 더 이상 답답함을 느끼진 않는다. 오히려 시도와 착오 속에서 즐거움을 느낄 정도다. 그 과정 자체가 배움이고, 더 나아지는 과정이니까. 


대학을 졸업하면서 했던 생각을 되뇌어본다. 지도교수님도 보시고서 공감을 해주셨던 나의 단상.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가장 크게 드는 생각은...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것. 언제까지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이 많이 없어졌다. 내가 여태 이루고 싶었던 많은 것들이 지금 내 나이에 이루기에는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 시절부터 습관이었던 '나중에.... ~꼭 이렇게 돼야지!'가 사라지게 되었다. 도전에 최선을 다하되, 성취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도전하고 있는 지금의 상태를 충분히 음미하고 즐겨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삶이라는 과정을 즐기자. 죽으려고 사는 거 아니니까!


삶이라는 과정을, 배워나가는 것을 즐기자. 


그냥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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