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ment designer May 07. 2021

'내가 내가 병'을 아시나요?

독립 vs 자립

월요일 아침. 회의를 시작하려고 의자에서 막 일어나던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업무전화가 오기엔 이른 시간인 8시 50분. 누구 전화지?라고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네_OO디자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OOO 엄만데요. 우리 OOO가 몸이 안 좋아서 오늘 회사에 못 나가겠다고 하네요."

"(화들짝)네???"

"죄송해요 우리 OOO가 전화를 못하겠다고 해서.. 제가 대신했네요."

"아... 네.. 어머님 안녕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어머님은 분명히 '죄송해요'라고 말했지만 죄송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는 듯한 당당한 표정이 전화기 너머로 그려졌다. 


평소 꼰대는 아니라고 자부했는데... ' 90년생이 온다' 책도 읽고 만만의 대비를 했는데도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아무리 인턴사원이라고 해도 출근시간 10분 전, 그것도 부모님이 회사에 전화해 결근을 통보하는 게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일까.


'캥거루족'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경제적. 정신적으로 자립심이 부족하여 계속적으로 부모에게만 의존하려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용어다. 유사시 부모라는 단단한 방어막 속으로 숨어버린다는 뜻으로 '자라족'이라고도 한다. 말로만 듣던 자라족을 가까이에서 실제로 겪어 보니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독립했는가? 자립했는가?


독립의 사전적 의미는  홀로 독,  설 입 :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자립의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 자,  설 입 :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


두 단어 모두 타인이나 다른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는 상태를 뜻하지만 한자어를 보면 그 의미가 좀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독립이 물리적인 환경만을 뜻한다면  자립은  '스스로'의 의미가 더해져 인지와 태도 등 정신적인 상태까지 포함된다. 홀로 서는 것은 같지만 '자립'에는 자발성이 포함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식이 성인이 되면 독립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자립하는 걸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가 자립할 기회를 빼앗아 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아이가 3살쯤 되면 누구도 예외 없이 생기는 고질적인 병이 있는데 바로 '내가 내가 병'이다.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 아이들은 뭐든지 스스로 혼자 해 보고 싶어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아이의 '자립심'을 키워 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꼭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만 골라서 '내가 내가'를 외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물 따르기이다. 1.5리터 페트병에 있는 물을 컵에 따르는 일은 집중력과 더불어 소근육의 발달이 완전히 이루어져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직 모든 게 발달 중에 있는 아이들이 해내기에는 어려운 미션이다.


저녁 식사 후 물을 따르려고 하는데 딸아이가 외쳤다. "엄마 내가 내가!!"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라고 대답한 뒤  물병을 건네줬다.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야무지게  뚜껑을 열더니 세상이라도 구할 듯한 진지한 표정으로 물을 따르기 시작한다. 역시나. 힘 조절에 실패한 아이는 물병의 중심을 잡지 못했고 물은 콸콸콸 쏟아져 바닥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괜찮아. 다시 해보자" (온화한 미소는 필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물을 수건으로 쓱쓱 닦아내고 다시 물병과 컵을 건네준다. 그 후로도 세 번 정도 바닥은 물 바다가 되었고 꽉 차 있던 페트병의 물은 반에 반도 남지 않았지만 네 번째 도전에 물 따르기를 성공한 아이의 표정은 세상을 10번 구하고도 남을 표정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수전 프랭크에 의하면 완전한 자립을 이루려면 후기 청소년기에서 초기 성인기 사이에 3가지 변화를 완성해야 한다고 한다. 


첫째, 행동과 결과를 온전히 책임진다. 

둘째, 독립적으로 생존할 능력을 갖춘다. 

셋째,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다룬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독립했을까? 자립했을까?







내일, 곰돌이 빵 작가님은 '디카페인 커피'와 '무알콜 맥주'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