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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꽃피 May 08. 2024

내 인생의 빌런, 사랑

악의 꽃



2024. 5. 7.



사월에 꽃마리 피다 2024





4일을 앓았다. 


이제껏 노력해 온 사랑과 사람에게 내건 희망에 관해 배신을 당했다고 느꼈다. 정신이 멍했다. 온몸의 근육과 심장이 쿡쿡 쑤셨다. 이어서는 가슴에 불이 났다. 들끓는 분노였고, 원치 않는 눈물이 흘렀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해하려는 습관이 아주 강하고, 그래서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천천히 실행한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또 이해해 보려 애쓰고, 스스로에 대해 성찰한다. 악함을 당한다면 선함으로 매듭짓는다. 그 악함이 정말 악함이 아닐 수 있다고 되새기며, 이 선함이 정말 선함인지 한 번 더 되물으며. 그래야만 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스스로도 습관처럼 계속해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 왔다. 이런 습관은 나에게 많은 좋은 것들을 주기도 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무력함의 웅덩이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4일 전, 나는 끔찍한 대화를 나눴다. 깊고 희망찬 사랑으로 시작해서 처절한 악몽으로 끝난 대화였다. 나는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눈앞의 사람(들)이 정말로 악인이었다는 것을, 단지 악인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하는 상대가 아닌 상대의 실체를 보고 들었다. 심장이 쑤신 것은 그때부터였다. 정신을 조금 차렸을 때는 콜드플레이(Coldplay)의 O를 들었다. 새의 날개가 그려진 치유의 앨범, '고스트 스토리(Ghost Stories)'의 마지막 수록곡이다. 곧이어 앨범 전체를 계속해서 들었다. 음악은 따스한 목소리로 이 악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내 인생의 참된 스승이자 영감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덕분에 이런 글도 쓰고, 앞으로의 집필에 대한 생각과 신념도, 인생의 목표도, 관계도 더욱 깔끔하고 결연하게 정리되지 않았는가. 깨달음의 순간에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4일 후, 오늘. 나는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깊은 치유의 대화를 나눴다. 대화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커다란 힘이 있었다. 대화의 중심에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사랑이 있었다. 삶은 이렇게 난데없이 병을 주고선 놀랍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약을 주기도 한다. 나는 삶이 준 이 쓰디쓴 알약을 씹고 또 씹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 있어 사랑은 빌런이었다. 그것이 어떤 관계에서 비롯된 사랑이었든지 간에. 한때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랑도 경험했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인생에서 경험했던 초기의 사랑은 비교적 산뜻했지만, 성장 과정에서 나는 점차 목이 말랐다. 나는 사랑을 갈구하지는 않았지만, 목이 말랐던 만큼 언제나 나만의 순수하고 열렬한 사랑을 추구했다. 굳이 외부를 통제하려 하진 않았지만, 내면의 정원만큼은 아름답게 가꾸었다. 화려하거나 아주 풍족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산뜻한 땅에서부터 시작했다. 오래도록 나는 내면의 일에 열중해 있었다. 동시에 순진하게도 지금까지 거대한 착각 속에 살았다. 내 내면이 꽃밭이면 다른 사람의 내면도 꽃밭일 것이라는 착각. 내 내면을 가꾸는 일이 곧 다른 사람의 내면 또한 가꾸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둘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이 자명한 사실을 왜 이제서야 깨달은 것일까.


물론 내가 인간의 악행에 대해 둔감할 정도로 순진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것에 아주 민감했고, 그것에 대해 아주 잘 아는 편이었다. 오래도록 가까이에 있었고, 함께였으니까. 다만, 악의 현재보다는 악의 뿌리에 주목하고자 했을 뿐이다.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악인인 사람은 없다. 악랄한 결핍이나 무지가 있을 뿐. 즉, 악인은 주로 정서적, 지성적 약자에서 출발한다. 불행히도 결핍이나 무지가 적절하게 채워지지 않고 점차 심해지면 그들의 생존력은 더욱 악랄해진다. 주변의 사람들은 다친다. 그들을 사랑할수록 더욱 잔인하게. 안타깝게도 그들은 참된 인간 존재란 선한 법칙 안에서 이루어짐을 모른다. 정말로 모른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곧 모르는 것이다. 앎은 체험에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존중과 배려, 이해와 인내, 진솔한 대화와 난로처럼 따뜻한 신뢰와 같은 참된 인간적 가치를 섬세하게 느끼거나 구현할 수 없다. 즉, 악인이란 사랑 불구자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사랑을 절절히도 원하지만.


아무리 좋은 인간적 가치도 상대가 그 가치의 의미를 모른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일평생 꽤 오래도록, 빈번하게 내가 그런 것을 해 왔다고 느꼈다. 나의 생명과 시간을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소중하게 다루는 적합한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이다. 왜 이제서야 깨달은 것일까. 인간 역시 동물이다. 악인은 짐승과도 같다. 짐승이 인간이 되려면 정말로, 많고도 질 높은 사랑과 교육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야만 하는 순간에 꼭 단호해져야 한다. 냉담한 단절과 엄중한 처벌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고결한 사랑도 희생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면 냉혹하게 버려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생명과 사랑의 원칙이다.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한 퍼붓는 사랑을 받은 개들이 반려인을 매섭고 잔인하게 무는 것을 보았다. 같은 원리가 인간 짐승에게도 적용된다. 상처로 인한 악보다 무분별한 사랑을 받은 악이 더욱 악랄하다. 건강한 사랑은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다시 나에게로 흐른다. 주려는 나에게만 혹은 받으려는 너에게만 고여 있는 게 아니라.


나는 내면의 동기에 몰두되어 있는 사람이기에 외부를 향한 질투가 강하다거나 경쟁적이진 않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소유욕과 집념만은 강하다. 올해부터는 자주,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악랄한 너희들도 그렇게 당당하게 사는데, 나는 더 당당하게 살아야지. 또한 내가 눈치채지 못한 나 자신의 악을 다른 선한 누군가가 이기기를 바란다. 나는 기도해 왔다. "나에게 힘을 주세요. 좋은 데 쓸게요." 언젠가, 악인들에게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 아무런 미련도 슬픔도 없이 나의 빌런들을 떠났다. 진정 나의 모습과 선택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Charles Pierre Baudelaire, LES FLEURS DU MAL,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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