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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Sep 07. 2024

유럽 자동차여행 출발 전, 테트리스 한 판?

새벽 맥주(물론 운전을 하는 나는 빼고...ㅠ)가 힘을 발휘한 것인지 긴 비행에 지쳤던 모습들이 사라지고 들뜬 표정들이었다. 공항 내 렌터카 부스에서 예약한 9인승 밴의 키를 수령하고 렌터카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본격적인 여행 출발 전 꽤 중요한 게임이 남아 있다. 모양이 제각각인 6개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차곡차곡 쌓는 일과 좌석 지정이 그것이다. 한정된 공간에 6개의 캐리어를 끼워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신경이 쓰이는 일이고 중요한 일이다.


첫 번째는 트렁크를 열 때 캐리어나 가방이 쏟아지면 안 된다. 빡빡하게 끼워 넣어서 차의 이동이나 흔들림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트렁크만 닫힌다면 주행 중엔 상관이 없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짐을 내릴 때 와장창 쏟아진다면 트렁크를 열거나 짐을 내리는 사람이 위험하기도 하고 캐리어 외부와 내부에 손상이 생길 것이다.


두 번째는 주행 중에 신경 쓰이는 소음을 차단해야 한다. 짐끼리 부딪치거나 차 내부의 장치와 부딪쳐서 내는 삐걱삐걱, 끼이익하는 소리는 운전자와 일행 모두의 신경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트렁크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넓었지만 여섯 명의 짐이 꽤 많았다. “이건 정말 테트리스 실력 나올 때네요,” 이번 여행의 막내인 40대 초반의 지니는 웃으며 가장 큰 캐리어를 내밀었다. 그 말을 들은 데비는 대구 사투리를 섞어 느리게 말했다. “그럼 우리 테트리스 한 판 할까요?”라고 맞장구를 치며 작은 캐리어를 건넸다. 두 사람은 이 여행을 통해 처음 만났지만 대구에 거주하는 동향이었다. 그래서 대구에서 새벽에 만나 함께 공항 리무진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한참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서로의 캐리어를 맞춰 쌓기 시작했고, 점점 빈틈없이 정리되어 가는 모습에 모두들 감탄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60대 중반 남성인 윌의 캐리어 하나가 차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가 미안해하며 웃자, 지니가 “제가 좀 공간을 만들어 볼게요!”라며 마치 전문 포장 직원처럼 자리 정리를 도왔다. 애매하게 쌓아 둔 테트리스 블록을 한 방에 정리하는 치트키 조각처럼 캐리어는 딱 맞게 트렁크 안으로 들어갔다.

“성공!” 60대 초반의 캐럴이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제안했고, 모두 함께 웃으며 기뻐했다.

다음 게임은 자리 선정 눈치 게임이었다. 9인승 밴에 6명이라 좌석이 넉넉했지만, 어디에 앉을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저는 마음 편안하게 뒤쪽에 앉아 느긋하게 졸면서 가고 싶어요." 50대 중반의 이 먼저 자리를 정했다. 이어 지니도 뒷자리가 편하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캐럴데비가 중간 자리에 앉고, 키가 앞 좌석에 앉았다.


정해진 자리가 고정석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자리를 잡고 나면 신기하게도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가 익숙해지는 마법이 있다.


큰 신경전 없이 두 번째 게임을 마치고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이제 정말 출발이다. 첫 목적지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였다. 낯선 이들이 모인 이 차 안은 아직은 조용했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차는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달리며, 풍경이 조금씩 변해갔다. 드넓은 평야를 지나 알프스의 산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동안, 여행자들은 창밖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정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목적지 없이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한적한 곳에서 잠시 쉬며 커피 한 잔과 간단한 아침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다. 


"1시간 정도 왔는데 살짝 졸리네요. 잠깐 커피 한 잔 하고 갈까요?" 내가 속도를 줄이며 갓길에 차를 대고 말했다. 당연히 모두 찬성이었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 근처 카페를 빠르게 검색했다.

근처에 소박한 마을 렝그리스(Lenggries)가 있었다. 길가에 위치한 아담한 카페, Cafe Strehler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오래된 그림엽서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 카페는 외관부터 따뜻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리들은 차를 세우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동네 사람들이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아침을 즐기고 있었고, 그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카페는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커다란 창문과 소박한 나무 가구로 꾸며져 있었다. 그곳의 커피는 따뜻하고 향긋했으며, 갓 구운 빵은 고소한 향기를 풍겼다. 이 빵을 한 입 베어 물며 "이 맛이 바로 독일이네요. 어디서든 간단히 들를 수 있는 이런 마을 카페가 여행의 묘미죠."라며 미소 지었다. 은 커피 한 모금을 천천히 음미하며 "이렇게 잠시 멈추고 주변을 느끼는 것도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죠. 바쁜 일상에서는 이런 여유를 가질 틈이 없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짧은 휴식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인스브루크로 향하는 여정은 계속되었지만, 우리는 몇 번이든 어디서든 멈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유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계획 없이도 길에서 만난 풍경과 순간들을 즐기는 데 있다. 그렇게 차는 독일의 알프스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가며, 또 다른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번째로 멈춘 곳은 실벤슈타인제 댐(Sylvensteinsee Damm)이라는 웅장한 장소였다. 거대한 인공호수와 함께 펼쳐진 장대한 풍경은 모두의 숨을 멎게 했다. 물 위로 비치는 산의 그림자는 환상적이었고, 고요한 호수의 물결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아요." 나는 감탄하며 호수 위에 드리운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봤다. 휴대폰 카메라를  이 순간을 남기려 했지만, 사진만으로는 이 장엄한 풍경을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데비도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며, "이런 곳에선 정말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네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잠시 차에서 내려 댐 위를 걸으며, 주변의 고요함과 청명한 공기를 만끽했다.

여행의 속도를 늦추고,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 순간이야말로 이들이 바랐던 진정한 자유였다. 각자 흩어져 산책을 하거나 호수 근처에서 잠시 멍하니 앉아 자연을 감상했다.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고, 누구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이 순간은 그저 그들에게 허락된,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이들은 다시 차로 돌아가며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여행은 단순히 목적지로 향하는 것이 아닌, 그 과정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즐기는 여정이 되었다. 인스브루크로 가는 길은 아직 남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서두르지 않았다. 어디서든 멈추고,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찾아가며 여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멈춤들이야말로 그들의 자유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 여행 참가자의 이름은 실명이 아니라 닉네임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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