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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Sep 09. 2024

개선문을 통과하는 순간 펼쳐지는 마법의 도시 인스브루크

독일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도로는 끝없이 이어지지만 통행료를 내야 할 순간은 전혀 없는 것이다.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은 통행료가 무료라서 그 널찍하고 잘 정돈된 도로를 마음껏 달릴 수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는 시스템은 우리와 거의 같아서 어찌 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처음 외국을 자동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어부터 표지판 등 모든 것이 두려움일 수 있다. 그런데 통행료가 없는 도로는 낯선 여행자의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는 큰 의미도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국경이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잠시 멈추기로 했다. 오스트리아 고속도로를 이용하려면 '비넷(Vignette)'이라고 불리는 고속도로 통행권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국경 넘어가기 전에 휴게소에서 비넷이라는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통행권을 사야 해요." 내가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국경 근처의 휴게소가 보여 우리는 차를 세웠다. 독일에선 통행료 걱정 없이 마음껏 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는 다르다. 그 두 나라의 고속도로는 무조건 비넷을 구매해 차량 앞유리에 붙여야만 사용할 수 있다.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자 비넷을 파는 카운터가 보였다. 나는 10일짜리 오스트리아 비넷을 샀다. 가격은 12유로 정도로 크게 비싸진 않았지만, 없으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하기에 꼭 준비해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다. "이걸 창문에 붙여야 하는 거죠?" 젠이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앞유리에 붙여야만 유효해요. 안 붙이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래도 이거 하나 붙이면 톨게이트에서 표 뽑고 다시 돈 내고 하는 번거로움 없으니 괜찮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도 무료로 만들 순 없다면 이런 방식도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차로 돌아가자마자, 비넷을 조심스럽게 앞유리 오른쪽 위에 붙였다. "이제 오스트리아 도로를 마음껏 달릴 수 있겠네요."

비넷을 붙이며 나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독일 고속도로는 통행료가 없어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오스트리아나 스위스는 비넷을 꼭 사야 해요. 비넷은 도로 통행권 역할을 하죠. 오스트리아는 이렇게 단기 비넷이 있어서 10일짜리, 2개월짜리 등으로 나눠 팔지만, 스위스는 연간 비넷만 판매해요. 그래서 스위스는 조금 불편하긴 해요. 단기 여행자들에게도 1년 치 비넷을 사야 하니까요. 게다가 40프랑이나 하고요."

"그럼 스위스에서는 며칠만 여행해도 1년 치 비넷을 사야 한다는 거예요?" 윌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맞아요. 그래서 짧은 여행에 스위스를 지나가는 경우엔 좀 아깝죠." 내가 설명을 덧붙이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비넷을 차에 부착한 후, 우리는 다시 도로로 나섰다. 이제 오스트리아의 고속도로를 달릴 준비가 끝난 셈이다.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것 자체가 모두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국경에는 유럽연합 표지판과 작은 건물만 있고 어떠한 검사나 확인 없이 지나쳤다. 국가와 국가의 이동이 서울에서 경기도를 통과할 때처럼 표지판 하나가 전부인 모습에 신기해하며 웃고 표지판 사진을 남겼다. 오히려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보내는 안내 문자가 국가가 바뀌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도시의 구시가를 탐험하기로 했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 이 도시는 알프스를 배경으로, 중세와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나는 여행의 피곤함을 잠시 잊고, 새로운 도시에서의 첫 발걸음에 기대가 가득했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개선문(Triumphpforte)이었다. 인스브루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그 앞에 서자 역사적인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 도시의 과거와 현재가 한눈에 보이네요, " 윌이 감탄하듯 말했다.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지나가는 마차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만들었다.


그다음엔 메트로폴 키노(Metropol Kino)로 발길을 옮겼다. 오래된 영화관 앞을 지나며, 50대 후반의 여성이 "이런 곳에서 옛 유럽 영화를 보고 싶네요"라고 말하길래, 나도 그 분위기에 잠시 빠져들었다. 영화관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그 앞을 지나며 유럽의 오래된 문화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인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여기 인스브루크 포토포인트였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밝은 표정으로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 강(Inn River)을 따라 걷는 산책길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강가에서 불어오는 알프스의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이곳의 평온함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강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가 주는 선물이네요, "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말에 지니가 미소 지었다. 그 순간이 참 좋았다. 강변에 놓인 벤치와 여러 조형물들 모든 것이 완벽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강변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왕궁정원(Hofgarten)으로 향했다. 푸르른 나무들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이곳이 마치 도심 속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숨을 고르며, "여유라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죠?"라고 혼잣말을 던졌다. 그 여유로움 속에서 우리 모두가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장크트 야코프 대성당(St. Jakob Cathedral)이었다. 성당 내부는 그 웅장함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화려한 바로크 양식에 압도되며 나는 조용히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정말 아름답네요. 이런 성당에 들어오면 마음이 차분해지죠, " 데비가 말했을 때, 나도 그 말에 공감했다. 고요한 성당 속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인스브루크의 상징, 황금지붕(Golden Roof)이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황금빛 지붕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 도시의 상징을 보니 이제야 인스브루크에 온 게 실감 나네요, " 내가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 도시가 주는 중세의 매력이 그대로 느껴졌다.

광장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황금지붕 옆 스타벅스에서 모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심 한가운데서 현대적인 커피를 마시는 게 참 묘했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다니, 독특한 조합 아닌가요? 그리고 아이스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여기뿐이죠. 스타벅스는 우리나라 문화가 아니지만 얼음을 와그작 씹어 먹는 커피 때문인가 스타벅스도 한국문화 같아요." 내가 농담처럼 말하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스아메리카노의 시원함이 피로를 싹 씻어주는 듯했다.

우리는 잠시 자유 시간이 갖기로 했다. 나는 골목길을 거닐며 소소한 기념품 가게들을 둘러봤다. 작은 골목마다 인스브루크만의 매력이 넘쳤다. 각자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성안나 기념탑(Annasäule) 앞 광장에 다시 모였다.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주문해 여행의 첫날을 축하하기로 했다. "오늘 하루, 참 멋졌죠? 각자 시간을 보내면서도 함께할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 데비가 말했을 때, 나도 공감하며 잔을 들어 올렸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여행의 피로를 날려주는 듯했다.


이렇게 인스브루크에서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배경 속에서, 유쾌한 대화와 함께 보낸 이 하루가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다. 낯선 이들과 시작한 이 여행이 앞으로 어떤 추억을 남기게 될지 기대가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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