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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병태 Jun 15. 2020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뻐하라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한 이유

법률은 한나라와 사회를 움직이는 근간이기 때문에 의회민주주의인 우리나라에서의 법률안은 국회의원과 정부가 제출할 수 있다. 최소 10명 이상의 국회의원들이 동의하여 법안이 제출되면 국회의장은 이 법률안을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하여 사전심의를 한다. 소관 상임위원회 심의가 끝난 법률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자구 수정과 체계를 정립하여 국회 본회의에 회부하고, 본회의에서는 해당 법안에 대한 질의. 토론을 거쳐 법률안을 표결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최근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 발의 법안 무더기 통과”, “국회 열리자마자 쏟아지는 졸속 법안들 걱정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텔레그램에 의원들이 대거 참여하여 단톡 방을 개설하고 법안 발의에 동의해 주는 신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등의 기사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생각이 든다. 법률은 전 국민과 우리 사회를 대상으로 적용되는 기본 질서이며 책임과 의무 조항이므로 내용을 심도 있게 살피고, 많은 질의와 토론이 이루어져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더기로 통과하니 이는 사후에 문제가 발생될 소지가 크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사 결정 과정은 국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단체나 조직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도 유사하다. 특히 회의 후에 식사가 예정되어 있는 경우 더 빠르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반대의견 있으십니까? 없으면 통과합니다. 이의 없으시면 `예' 하시고, 아니면 `아니요' 하십시오. 예! 모든 안건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렇게 회의가 일사천리로 신속하게 끝나고, 제시간에 맞춰 식사를 하면서 마냥 흐뭇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만일 누군가 “이의 있습니다. 행사비 부문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원도 얼마 참석하지 않은 행사인데 사전 준비비가 너무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자세한 보완 설명을 요구합니다.”라고 하면 당연히 필요한 질문인데도 모든 참석자들의 곱지 않은 눈길이 그 사람을 향한다. 그리고 대부분 “에이 그냥 넘어가지 얼마 되지 않는구먼.”, “저 사람 또 트집이네. 단골이더라고 아주”하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다. 

 

대부분 회의 진행이나 준비 절차를 생각해 보면, 회의 때마다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거나 예상이 되기 때문에 회의 주재자는 회의 전에 미리 그 사람에게 의견을 듣고 조율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사전에 잘 조율하고 문제없을 것 같은 안건 처리인데도 불구하고 기습적으로 발언을 하거나 트집을 잡기 위해 준비해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 회의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면 회의 주재자도 힘들어지고 안건에 큰 관심이 없는 참석자들은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반대하는 사람이 정말 눈치 없는 사람이고, 필요 없는 질문을 함으로써 시간을 낭비하는 일일까? 때로는 이와 같은 조언자 또는 트집 잡는 사람의 의견으로 인하여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대안을 찾거나 단체의 사업을 미리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그림출처: https://confusingtimes.tistory.com/384

가톨릭 종교에서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활용한다. 악마의 대변인은 어떠한 인물을 성인(聖人)으로 추대하는 일이나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 등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 의사결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안건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과 근거들을 제시하고 반대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악마의 대변인은 꼭 가톨릭 성직자만 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일반 학자들에게 위탁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마더 테레사 수녀의 시복을 앞두고, 무신계의 거두인 크리스토퍼 히킨스(Christopher Eric Hitchens)에게 테레사 수녀에 대한 악마의 대변인 임무를 요청한 경우가 있다. 히친스는 그의 저서  '자비를 팔다'에서 마더 테레사 수녀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 일이 있어 악마의 대변인으로 선정되었다. 악마의 대변인 임무를 맡았던 히친스의 회고에 의하면, 악마의 대변인 증언 작업은 성서가 책상 위에 놓인 조용한 방에서 담당 성직자들만이 배석한 상태에서 이루어졌고, 기탄없이 할 말을 다 시켜주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 임무를 맡았던 히친스가 압박을 가한다고 말을 아낄 사람도 아니지만 히친스는 본인이 가톨릭 교회에 대한 회의적이거나 무신론적 입장을 떠나서 악마의 대변인 시스템 자체는 매우 좋게 평가하였다. 악마의 대변인은 이후 의미가 확장되어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논리학에서 논의의 활성화를 위해 고의적으로 일부러 반대 입장을 취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모의 법정에서 상대측 변호사 역할을 맡는 사람에게 이런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정치학이나 행정학, 심리학 등에서는 집단이 한꺼번에 어느 한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는 집단사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악마의 대변인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만일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으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거나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은 매우 기뻐해야 한다. 곱지 않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악마의 대변인' 역할은 조직의 건전한 방향성이나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 특히,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부분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와 조직 내에서의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해주고,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동기부여를 함으로써 보다 완벽하게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조직이나 기업체의 미래를 좌우하거나 많은 재원을 투입하여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정확하고 악랄한(?)‘악마의 대변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스타트 업에서 이미 깔려있는 통신망에 무료로 접속하여 유료회원을 모집하는 플랫 폼 사업을 한다고 할 경우 “우리 회사는 그 회사가 깔아 놓은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또 다른 사업을 펼치면서 유료회원을 유치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내가 만일 상대편 회사라면 우리가 사용하는 네트워크를 비싸게 유료화할 것 같은데요?”와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이런 악마의 질문이 있어야 해당 기업에서는 “우리의 논리에 그런 허점이 있었구나. 우리가 하려는 아이템은 무료 접속이 장점인데 유료화라면 이 프로젝트를 근본부터  다시 검토해봐야 할 것 같은데?”하는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악마의 질문 없이 “그래 그래 그게 좋겠다. 그냥 그런 논리로 밀어붙이지 뭐” 이런 식의 자화자찬만 하는 의사결정 과정이라면 실제 위기 발생 시 현실적 장애물을 만나게 되곤 한다.

사진출처: http://www.dentist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2044 

누구든지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은 상당한 용기를 내야 한다. 여러 사람들이 싫어할 수도 있고 트집장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마의 대변인과 같은 마음으로 문제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면 그리고 졸속으로 처리한다면 그 사업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누군가 집요하게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을 경우 ‘악마의 대변인’이 나타났구나 하면서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 중 최소한 일부는 ‘악마의 대변인’과 같이 항상 최악을 예상하고,  부정적인 상황을 제시해야 한다. 반론에 익숙해야 하고, 구성원들이 보지 않고 지나가는 문제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눈앞에 보여주어야 한다. 악마처럼 집요하게 질문하고 무리한 요청을 하며 압박해야 한다. 성숙한 조직은 ‘악마의 대변인’과의 씨름을 통해 실제적인 위기관리 경험과 역량을 쌓을 수 있다. 갑작스럽고, 당황스럽고, 좌절되는 상황에서도 악마의 대변인을 기억하면서 스스로 좀 더 나은 논리와 대응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아니오’라는 반대 의견을 당당히 낼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좋겠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진영 논리 또는 집단 사고를 통하여 모두가 한 방향으로 밀어주기식의 의사결정은 성숙한 의사 결정 과정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참석자들이 의견을 스스럼없이 개진할 수 있도록 열려있는 회의를 해야 한다. 반대하는 사람 트집을 잡는 사람이 나타나면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께서 납시었다는 메시지로 듣고 기뻐하며,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고 항상 옆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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