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철역 앞 조그마한 4층 자리 건물 2층에 호프집이 있다.
지인들과 가끔씩 들러 맥주 한잔 하는 집이다. 이 호프집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전철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자리가 나쁜 편은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 집은 오늘의 호프집이 들어오기 전까지 여러 번 상호와 주인이 바뀌었다. 그 자리가 꼭 호프집을 해야만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십 수년째 호프집으로만 운영되면서 자꾸 실패가 되풀이되었던 이상한 자리다.
몇 번의 부도가 발생하는 동안 상호의 이름도 호랑이와 곶감, 직장인들 이야기, 퇴근길 한잔, 금호동 명소 등등 여러 번 바뀌었다. 상호가 바뀔 때마다 느끼는 것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저런 고전적인 이름 사용할까? 여기는 전철역 앞이라고는 하지만 조그만 전철역이고 동네 장사인데 직장인들 운운하기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딱히 올라가서 시원한 맥주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집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에 소소한 변화가 나타났다.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그 집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지나가는 길에 올려다봐도 언제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망하지 않고 잘 운영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단순함에서 찾을 수 있다.
상호 이름이 단순하다. 맥주집!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집이다. 맥주집!
맥주를 파니 맥주집이라 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왜 그동안 여러 미사여구를 붙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한 상호가 직관적으로 그 집의 목적을 파악하게 만든다.
이 집의 두 번째 특징은 맥주집을 가리키는 노란색 화살표다. 길거리를 지나다 이 집 쪽을 바라다볼 경우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 색깔과 화살표시 때문에 인지도가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호프집에서 맥주 맛을 크게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변화를 추구하고 혁신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안주 맛과 간판 말고 변화를 주기 힘든 상황에서 이 집은 간판에 혁신을 이룬 셈이다.
단순하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지구 상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발명하거나 고안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매우 존경받을 일이고 획기적인 변화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어떤 한 개인이 또는 한 회사가 그런 일을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혁신은 자연의 법칙에서 응용하거나, 전혀 다른 분야의 것을 자기 산업 분야에 도입하거나, 서로 다른 것을 붙여서 제3의 것을 창조하여 혁신을 이루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를 비유하여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카피하는 것이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뉴턴 마저도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겸손함을 표현한 바 있다.
창의성이란, 다른 분야에 이미 존재하던 것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거나 모방하되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해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예시한 호프집의 화살표를 병원의 어느 장소에 부착하여 사용할 때 혁신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병원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 안내 데스크에서 물어보는 장소 문의 빈도를 체크하여 가장 많이 물어보는 장소에 화살표 하나를 걸어 둔다면, 문의 건수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불만도 줄어들어 고객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화살표를 멋지게 디자인하여 부착한다면 화살표 자체로 상징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대만산 흑당 버블 라테에 이어 하나둘씩 판매처가 생기고 있는 ‘소금 커피’의 경우, 대만에서는 단순하게 원두커피에 소금 한 꼬집을 넣어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맛 본 소금 커피는 원두커피에 크림을 넣고, 크림 속에 소금을 섞은 후 계핏가루까지 뿌려 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변형된 커피다. 언젠가 이 소금 커피가 가장 혁신적인 커피로 인식될지도 모를 일이다.
융합을 통한 혁신 또는 전혀 다른 분야가 만났을 경우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함에서 시작한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함을 통해 혁신을 이룬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여러 개의 기능을 하나로 합쳐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아이폰의 기능은 심심하리만치 단순하지만 필요한 기능을 더욱 강하게 만든 장점을 지니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단순함 추구는 제품뿐만 아니라 의상마저도 청바지에 검정 티셔츠로 대표될 만큼 단순함을 추구하여 혁신을 이룬 인물이다.
의료계에서도 융합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가정의학에서 태극권을 도입하는 사례나 현대의학과 동양의학의 묶은 동서 신의학 분야가 나타나기도 한다. 의학과 IT, 의학과 3D printing기술, 의학과 4차 산업 혁명이 만나면서 의학의 융•복합적인 창의성은 무궁무진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의료장비 분야에서도 새로운 획기적인 의료장비의 개발보다는 이미 개발된 의료 장비들을 합쳐서 또 다른 혁신을 이루는 도전이 나타나고 있다. PET CT는 이미 상용화되고 있고, PET과 MRI를 합치거나 MRI와 CT를 묶는 도전 등이 그와 같은 것이다. 전혀 새로운 분야를 처음으로 만드는 것은 위대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모든 혁신이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창의성이란 훔친 케이크에 딸기 하나를 얹어 파는 것이다.’
창의성을 추구함에 있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이자 액션페인팅의 대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1]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2016년 말 중동호흡기증후군(MARS)[2]이 전국을 혼란 속에 빠뜨렸을 때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병원들에서는 건물 밖에 컨테이너 임시 진료소를 설치하여 운영한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은평성모병원에서는 이 경험을 살려 병원 신축할 때 건물 내에 있지만, 유시 시 보호벽 하나를 차단함으로써 건물 내에 박힌 컨테이너처럼 병원 본관과 완벽하게 차단되는 안심 진료소를 설치한 사례 또한 병원과 컨테이너를 묶은 혁신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 개원한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3]에서 중소 벤처기업과 공동 개발하여 적용한 스마트미디어 보드는 환자 침대용 식탁에 휴대폰과 같은 스마트 미디어 보드를 내재시킨 혁신적인 제품이다. 스마트미디어 보드는 환자용 식탁과 미디어 기능을 함께 사용될 수 있도록 완전 방수시설을 추가한 제품으로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융합상품이며 두 가지 기능을 하나로 단순화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여러 개의 개념을 하나로 묶을 경우 단순해질 수 있다. 그리고 단순함은 혁신을 이룬다.
고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의 경우, 너무 많은 내용을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면 할수록 혼란을 줄 수 있다. 간결함이 정답이다. 초고 파이에 정(情)이라는 한자를 더했을 뿐인데 혁신을 이룬 사례나 전지현과 이정재가 콤비를 이뤄 ‘잘생겼다”라는 단순하고 간결한 콘셉트를 반복했던 SK텔레콤 LTE 광고는 2014년도 광고 대상을 받을 만큼 혁신적인 공고로 통한다.
단순한 것이 강하다. 나머지는 고객이 알아서 판단한다.
은평성모병원의 병원 홍보 포스터는 ‘오늘’이라는 단순하고 간결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은평성모병원은 이 포스터 광고를 통하여 ‘오늘’ 이 시간 병원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와 고객의 소중한 시간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오늘’ 최선의 진료에 집중하여 당신의 소중한 시간(취미, 건강 등)을 되돌려 드리겠다는 약속과 혁신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 잭슨 폴락(Paul Jackson Pollock)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 중 한 사람. 무시당하며, 삼류라고 인식되던 미국 미술을 오늘날의 지위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
[2] 중동호흡기증후군(中東呼吸器症候群, 의학 :MiddleEastRespiratorySyndrome;MERS머스*], 통용:메르스)은 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바이러스(MERS-CoV)에 의한 바이러스성, 급성 호흡기 감염병이다. MERS-CoV는 박쥐로부터 유래한 베타 코로나바이러스이다.
[3] 은평성모병원은 2019년 4월 1일 개원한 가톨릭대학교 제5 부속병원으로 은평구 진관동에 소재한 808병상의 최첨단 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