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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병태 Jun 30. 2020

점점 생각을 빼앗기는 느낌, 저만 그런가요?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Homo sapiens-sapiens)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되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대표적인 차이점들은, 문자를 쓸 줄 안다는 것, 그래서 기록을 남길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생물은 사용할 줄 모르는 불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아무리 똑똑한 원숭이라도 모여 앉아 고기를 구워 먹고 그러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원숭이들이 모여 앉아 고기를 구워 먹고 술 한잔 나누고 그런다면 웃길까? 아니면 무서울까? 무서울 것 같다. 실제 우리 인간은 첨단 시대에 살고 있고, 휴대폰도 사용하고 있고, 수없이 많은 CCTV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으니 원숭이들이 고기 좀 구워 먹는다고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 아닌 다른 생물이 물을 사용한다면 그건 심각하게 중대한 일이 될 것이다.  


출처 : 연합뉴스에서

불 이야기가 나왔으니, 인류가 불을 사용한 시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발견된 자료에 따르면, 인간이 불을 처음 사용한 시기는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던 142만 년 전이다. [1] 그 증거를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유적 중 케냐의 체소 완자에서는 짐승의 뼈가 불에 탄 진흙과 함께 발견되어 인간이 불을 사용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고생물학자들은 50여 개의 불탄 진흙 조각들이 배열을 이루고 있는 점에 근거하여 화로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2] 인간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불을 익숙하게 사용하게 되면서 날 것보다는 익힌 것이 더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3] 또한 사람들은 불을 통해서 따뜻함과 외부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고, 추운 밤에도 활동할 수 있어 활동시간이 확장되었다. 포식자나 곤충으로부터 보호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이렇게 오래전부터 불을 사용하게 되었으니 인간 다음으로 지능이 발달한 원숭이들 [4]도 

142만 년이 지난 지금쯤 불 정도는 사용해 줘야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어느 정도 힘을 받을 텐데, 여하간 지금까지는 사람 말고는 불을 사용할 줄 아는 생물은 없다. 그러니 불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다른 생물과 구분되는 뚜렷한 특징이다. 


이렇게 인간이 문자를 남기거나 불을 사용한다는 것 말고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또 다른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 인간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 다른 생물과 다르다. 사람은 생각을 할 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사색과 명상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거나 상상할 수 있고, 중요한 핵심을 찾아내고 요약할 줄 아는 추상 능력이 있다는 것이 사람만이 가진 특성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이고 생각을 할 줄 알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과학적인 문명을 이룩한 것이다. 사람은 깊은 생각을 할 때 조용한 곳을 찾아 명상이나 묵상을 통해 진리를 깨닫기도 하고 도(道)를 터득하기도 한다. 그리고 혁신한다. 사색과 통찰을 위한 장소는 휴대폰과 인터넷, AI(Artificial Intelligence)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선호한다. 특히 동굴이 매우 상징적인 장소이다. 후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기도 하고, 이스라엘 예언자 엘리야가 신의 '미 세한 침묵의 소라를 들었다는 시나이산 동굴도 나온다. 모하마드가 계시를 받았다는 메카 외곽에 위치한 히라(Hira) 동굴도 그렇다. 하물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쟁이나 도인이라 일컫는 사람들도 최소한 계룡산에서 몇 년을 수도했다고 하면서 오랜 시간 생각하고 사색한 것을 경력으로 내 걸기도 한다. 또한 40대 이상의 중년들이 젊었을 때는 대부분 무협지 한 수레 정도는 읽었을 것이다.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대개 젊었을 때 중원에서 고생 고생하다가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 줄 알았는데 깨어나 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도를 닦고 있던 기인을 만나 절세 무공을 전수받고 나와 중원을 평정하는 스토리가 아주 많다. 그만큼 생각은 인간을 다른 생물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데 최근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을 다른 생물과 구분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특징인 생각을 점점 빼앗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는 한 단어라도 더 외우려고 새까맣게 손때 묻은 사전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손쉽게 휴대폰에서 검색하면 어떤 단어도 다 찾을 수 있으니 두꺼운 사전을 하나하나 찾을 필요가 없다. 웬만한 친한 친구들의 전화번호는 다 외우던 시절이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지금은 자기 전화번호도 가끔은 헛갈릴 때가 있으니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증상일 것이다. 또 있다. 웬만한 위치는 외우고 다니기도 했고, 잘 모를 때는 전국 지도를 펼쳐 위치를 찾거나 도로 번호나 국도 번호를 따라 위치를 찾아가던 것은 까마득한 기억이고, 이제는 내비게이션 없이는 아무 곳도 찾지 못하는 길치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정보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엄청난 정보와 지식이 떠 다니는 것 같은데 점차 줄어드는 듯한 IQ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은 꼭 기억하고 머릿속에 있어야만 훨씬 더 효율적이고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니까 휴대폰이든 내비게이션으로 대체되어도 큰 상관없다. 그러나, 이렇게 휴대폰이나 내비게이션으로 대체된 후 남은 우리의 여분의 머릿속이 훨씬 창의적이고 좋은 생각으로 가득해야 하는데, 우리의 눈은 별 효율성 없는 전화번호 외우느라 정신 팔지 말고 상대방 눈을 바라보고 집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손은 따뜻하게 상대방을 잡아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영어 단어가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력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휴대폰 사전을 찾게된다. 외국에서도 파파고와 같은 통역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게 된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손이 조금만 수고를 하면 되니 아무 걱정할 것 없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조만간 간단한 칩 하나 뇌의 부착하면 몇 개 국어를 자동으로 할 수 있게 된다니 굳이 매일 반복적으로 되 뇌이며 영어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자녀들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대화 도중 잘 모르는 말이 나오면 네이버나 구글 검색을 하게 되고, 책 읽는 것 대신  유튜브를 검색하게 되니, 상대방 눈과 마음을 쳐다보거나 느낄 틈이 없지요. 그 정도만 되어도 그냥저냥 살아볼 만할 것 같아요. 그런데 내가 상대방을 바라봐 주지 않고, 휴대폰만 검색하고, 카톡 메시지 확인하고, 유튜브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인터넷 쇼핑에 빠지면 빠질수록 나의 모든 정보와 취향을 누군가 취합하여 내가 딴생각 못하도록 조정하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나요? 그렇다 보니 정보를 제공받는 것이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왠지 내가 없어지는, 없는 기분 들지 않으시나요?


고객이 아마존에 들어오면, 강력한 아마존 추천 시스템(recommendation system)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추천 시스템의 기반은 상품정보와 고객 정보인데 추천 시스템이 정보를 모으다 보면, 고객 간의 유사성도 발견하고 상품 간의 관계성도 보이게 된다. 그럼 아마존의 추천 시스템은 고객에게 미처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조금이라도 망설인다 싶으면, 추천한 상품을 산 다른 사람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말을 걸진 않지만 이런 생각이 들도록 유도한다. “생각할 필요 없어. 이 상품은 내가 대신 생각해 봤는데 너에게 딱 맞아”,  “의심 갖지 마. 너 누구누구 알지? 그 사람들도 이거 샀어. 그러니 너는 그냥 이걸 사. 그럼 너는 그들과 똑같아지는 거야. 어때? 멋있지 않니?” 아마존의 추천 시스템을 운영하는 A9의 홈페이지에는 대놓고 “위대한 검색은 고객들에게 우리의 검색이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Great search can seem to customers like it is reading their minds.”라고 한다. 대신 나의 마음을 읽어주고 대신 생각해 주겠다고 한다. 


결국, 지금 시대 인간은 스스로 발생시키는 정보에 의하여 자신의 행동 패턴을 읽히게 되고, 그에 따라 다음 행동이 예측되며, 생각의 범위나 관심 분야를 알게 되고, 그럼 누군지도 실체가 분명치 않은 그것에 의하여 나의 의도와 미래 행동 유형이 간파되어 예측된 범위 내에서 행동하게 된다. 오늘도 페이스 북에서는 끊임없이 ‘알 수도 있는 사람’ 또는 ‘적합한 친구’를 추천해 준다. 유사한 취향과 성품을 가진 사람을 친구로 등록하고 친구들과 유사한 생각과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유사한 내용과 대목에서 감동받은 사람들끼리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 달아주고, 그러면서 내 생각은 점차로 편향적으로 변해갈 수 밖에 없다.  급기야는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추천하는 대로 해도 되니까. 마치 내비게이션이 가라는 대로 가는 것처럼 다른 것들도 하나씩 하나씩 생각을 안 해도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합리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원숭이처럼 불에 고기도 못 구워 먹는 존재는 아니잖아? 우리는 불을 사용할 줄 안다고. 그러니 휴대폰아 생각은 네가 대신 해 주지 않을래? 난 지금 친구한테 카톡 와서 바쁘거든?”  


너무 우울하게 세상을 본 것일까? 그렇다면, “아니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다. 결코 컴퓨터나 인공지능에 구속되어 그 안에서 허우적대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는 한낱 기계에 불과해. 그러니 우리가 컴퓨터를 지배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그렇다면 생각을 컴퓨터에 맡기지 말고 생각하고 사색해야 하지 않을까? 컴퓨터가 추천하는 대로가 아니라 다르게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사소한 것 중에서 컴퓨터가 대신해 주는 것이 있다면 여분의 남는 부분을 보다 창의적이고 더 좋은 일로 채워야 하는 거 아닐까? 



         

[1] 위키백과, 2020. 6. 29일 자 검색


[2] 피터 왓슨, 《생각의 역사 1》(들녘, 2009) 53~54쪽


[3]《먹거리의 역사》(상) 마귈론 투생- 사마, 까치글방 (2002) 15쪽


[4] 패트리샤 맥코넬 (2011). 《당신의 몸짓은 개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에서는 보노보와 침팬지, 인간의 DNA

염기 서열은 97%가 일치한다고 하였다. 이들은 모두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며 생활에서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한다. 보노보는 모계 사회를 이루며, 침팬지는 부계사회를 이루며 공동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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