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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병태 Oct 03. 2020

‘촉’의 양면성

우리는 ‘촉’이 좋다 또는 그 사람은 촉이 남다르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그 의미는 직관적인 감각이 아주 좋다는 의미다. ‘촉 ‘의 사전적 의미는 ‘긴 물건의 끝에 박힌 뾰족한 것’을 의미한다. 말초신경과 같은 예민한 감각이다. 그렇다면 ‘촉’이라는 것은 얼마큼 정확할까? 


‘촉’은 어떤 객관적인 정보나 분석적인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 또는 동물적인 끌림에 따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무의식적인 직감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촉’이라는 것은 맞을 수도 있지만 맞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촉’을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선입관이나 초기 인상과 같은 것들을 종합하여 내리는 성급한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선입관이나 ‘촉’에 관한 것은 고객 만족 분야 또는 마케팅 분야에서도 사용된다. 예를 들면 ‘진실의 순간(MOT)[1]’같은 것이다. 


‘진실의 순간’은 고객이 회사나 제품에 대해 이미지를 결정하게 되는 15초 내외의 짧은 순간을 일컫는 마케팅 용어이다. 종업원과 접촉하거나 광고를 볼 때 등 고객이 어떤 특정 시점에 갖게 되는 느낌이 기업의 이미지나 생존을 결정짓는다는 뜻으로 스웨덴 경제학자 리처드 노먼이 최초로 사용한 용어다. 실제 이 개념을 활용하여 스칸디나비아 항공에서는 고객들이 어떤 느낌을 갖게 하는 특별한 지점, 즉 접점을 분석하여 구분하고 그 접점에서는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전체적인 서비스 향상을 기하고자 하는 경영전략이다. 


'진실의 순간(MOT)'은 스페인의 투우 경기에서 유래하였는데, 마지막 투우와 투우사(Matador)의 대결을 뜻하는 표현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거대한 소와  투우사가 오랜 시간을 겨룬 후에 마지막에 단 한번 만에 검을 꽂아서 투우를 죽여야 하는데 그 순간이 제일 엄숙하고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은 단 한 번만에  끝을 봐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로 접점에서의 서비스를 강조한 고객만족 활동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선입견 또는 초기 인상 등 ‘촉’이 긍정적으로 활용된 경우이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보다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대가 될 것이므로 선입견이나 촉은 틀리는 경우도 많이 발생할 수 있다.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개념이 있다. ‘대충 어린 짐작하기’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마케팅 용어이다. 사람들은 불충분한 시간과 충분하지 않은 정보로 인해 과거 경험이나 시행착오 또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에 의존해 판단하거나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지 않을 때 직관적으로 어린 짐작을 하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냐면 사람의 두뇌는 기본적으로 게으르게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고 복잡한 계산을 싫어한다. 머리 아파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직관적이거나 촉에 따라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쇼핑하면서 휴리스틱에 따라 구매한 후 나중에 정신 차리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 마케팅 측면에서 주류를 이루는 이론적 배경은 사람들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마케팅 전략이나 광고는 최대한 소비자를 설득하고 논리적인 증거를 제시하고자 했다. 그런데 최근 소비자들의 행동을 보면 상당히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인 판단 즉 ‘촉’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소비자를 설득하는 광고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의사소통 방법의 하나인 유튜브에 게재되는 광고는 5초만 지나면 건너뛰기를 할 수 있다. 만일 5초 보다 더 빠르게 건너뛰기한다면 소비자들은 더 빠르게 건너뛰기를 할 것이다. 심지어 일정 부담금을 내더라도 아예 광고를 보지 않는 프리미엄 유튜브 사이트가 인기를 얻고 있는 세상이다. 5초 이내에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촉’이 극도로 작용한다는 의미다. 


‘전망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캐너먼[2]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사람의 행동을 좌우하는 생각 유형을 시스템I과 시스템 II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시스템 I은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인 판단 유형이다. 5초 이내에 판단하는 ‘촉’에 의존한 유형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유형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한다.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생각 유형인 시스템 II는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매우 비싼 가격의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처럼 주요 결정 시기에만 가동되는 생각의 유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합리적인 결정을 할 때보다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인 판단을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람들을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라는 이전의 이론을 뒤집은 것이다. 물론 캐너먼은 시스템 I만 생각해서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유형의 생각을 모두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의 두 가지 유형을 4 산업혁명시대에 적용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 4 차 산업혁명 시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AI)[3]의 경우 빅 데이터에 기반하여 일정한 패턴을 도출함으로써 알고리즘을 만들고, 이 알고리즘에 따라 지속적인 학습을 시킴으로써 인공지능이 만들어지게 된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반면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이거나 직관적인 판단을 종합한 ‘촉’에 따라서 행동을 결정한다. 인공지능과 달리 어떤 상황에 대하여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개입이 이루어지고 주관적이고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바람직한 것이고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각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경우에는 인공지능의 판단 더 맞을 수도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상황만으로 작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이 있다. 그러므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인공지능을 통하여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후, 인공지능이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을 반영하고 정서적이고 인간적인 따뜻한 감성을 기반으로 판단할 때 바람직한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1] MOT는 Moments of Truth의 약자로 진실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2]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년 3월 5일~)은 이스라엘 국적의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학문적인 업적은 판단과 의시결정 분야의 심리학, 행동경제학과 행복심리학이다. 아모스 트버스키와 다른 학자들과 함께 발견법 및 편견으로부터 기인하는 보편적 인적 오류 요인에 대한 인지적인 연구의 토대를 세웠으며, 전망이론을 만들었다. 이러한 전망 이론의 성과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우드로 윌슨 스쿨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3]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인간의 학습능력, 추론 능력, 지각 능력, 자연언어의 이해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이다. 지능을 갖고 있는 기능을 갖춘 컴퓨터시스템이며, 인간의 지능을 기계 등에 인공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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