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병태 Aug 14. 2019

이름없는 사회, 닉네임 권하는 사회

-     사라지는 이름 대신 늘어나는 닉네임과 아이디  –

소셜미디어(SNS)가 발전하면서 개인의 이름이 사라지고 별도의 이름(닉네임 또는 아이디)이 늘고 있다. 자신의 고유한 이름이 사라지는 사회, 닉네임이나 아이디를 권장하는 사회, 번호로 불리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되어야 할 것인가? 


1. 오늘 하루 당신은 ‘A000’님입니다. 


현대사회는 각종 공해와 기기의 발달 및 기름진 식생활로 인하여 질병이 증가하고 있지만 의료기술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생명은 점차 연장되는 가운데 고령사회 또는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전에 여러 차례 병원을 이용하게 된다. 병원을 이용한다는 것은 문제 될 것도 없고 숨길 일도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 어떤 경로로 발생한 것인지도 모르는 성인병이거나 혐오스러울 수 있는 상처가 생기는 병 또는, 전염성이 있는 질환이나 암 그리고 희귀난치성질환 같은 경우는 가급적 알려지지 않기를 원치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원에 가면 ‘홍길동 님’, ‘이영자 님’과 같이 환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고, 아직까지도 이렇게 환자를 부르는 병원이 대부분이다. 이럴 경우 공교롭게도 같은 병원에 방문한 지인이나 인친척 또는 불편한 관계에 있는 타인에게 질환 정보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요즘 병원에서는 환자 명단에서 개인 신상을 알 수 없도록 비식별화 형태로 이름을 표기하면서 우리는 이름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한다. 이름 세자 중 한자는 ‘홍○동’님, ‘이영○’님처럼 표기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비별화 노력이 완벽하지 않아 글자로 표기된 비식별 형태의 개인정보와는 달리 실제 진료 시에는 다시 “홍길동 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영자 님 가서 수납부터 하고 오시겠어요?”하고 환자의 이름을 호명(비록 모든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크게 호명하는 일은 줄어들었다 하더라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직접 환자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경우 본인의 순서를 모르거나 본인인지 몰라 순서를 놓치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함으로써 개인정보보호를 지켜주지 못한 불평보다 더 많은 민원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이름을 호출하는 상황인 것이다. 

서울대병원에서 사용되는 당일 고유번호

이와 같은 병원 환경에서 최근 환자 대기 공간에 환자 이름 대신 고유번호, 소위 당일 번호로 환자를 부르는 병원이 탄생하였다. 서울대병원은 2019년 3월 말부터 국내 최초로 환자 이름을 호명하지 않는 진료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환자는 진료 당일 본인의 이름 대신 고유번호를 부여받아 하루 동안 사용하게 된다. 진료 접수를 하면 당일 사용할 'A0000'같은 번호를 받고 이것이 전체 외래에서 당일 사용하는 본인 이름 대신 사용하는 호출 및 식별기호가 되는 것이다. 이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예컨대 "홍길동 님, 들어오세요"가 아닌 "A0000 님, 들어오세요"로 환자를 식별하고 호명하는 방식이다. 당일 첫 진료 때 부여받은 개인의 고유번호는 같은 날 채혈실, 각종 검사실, 약국, 마지막 수납까지 모든 외래 공간에서 동일하게 사용된다. 이와 같은 변화에 따라 개인 정보보호를 바라는 개인에게는 만족도가 높을 수 있으나 장년층이나 노인들의 경우 본인의 고유번호를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불편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변화된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기 위해서는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학교병원의 패러다임 변화를 보면서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권하는 사회, 자기의 이름이 없어지고 다른 무엇인가(닉네임이든 고유번호든)로 불리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닉네임(또는 아이디) 권하는 사회


닉네임(또는 아이디)은 자기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장점이 있다. 개성을 살릴 수도 있고, 어떤 이름들은 기발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닉네임(또는 아이디)으로 인하여 자긍심이 생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멋지고 도전적인 닉네임(또는 아이디)일 경우 닉네임(또는 아이디)처럼 해야겠다는 책임성이 강해진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는 닉네임(또는 아이디)으로 인한 익명성(匿名性)이 높아짐으로써 자기 말이나 주장에 대한 책임성이 낮아지는 부작용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닉네임(또는 아이디)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만들게 된 계기는 1990년대 초반부터 사무실에 개인용 컴퓨터가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메일을 만들어야 했고, 그 이메일이 한글 이름이 아닌 영문으로 지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고유의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고민해야 했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되살려 보면 나는 그 당시 심각한 고민(?)을 통해 원래 이름인 ‘炳泰‘의 의미 즉, ‘빛날’炳에 ‘클’泰의 의미를 살려 ‘bitna’라는 이메일 닉네임을 쓰게 되었다. 그 닉네임은 본래의 의미를 넘어 나의 적은 머리카락과 묘하게 연상 작용되면서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 닉네임으로 지금까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닉네임(또는 아이디)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닉네임(또는 아이디) 창작의 고민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점차 증가하더니, 스티브 잡스의 모바일 혁명 이후 ‘bitna’라는 닉네임(또는 아이디)은 동일한 이름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기 일쑤인 상황이 발생하면서 본인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닉네임(또는 아이디)이 여러 개 존재하는 상황이 되었다.(아마도 어딘가에 메모해 둔 닉네임(또는 아이디)과 비밀번호가 3~4페이지는 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경험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요즘 인터넷상에는 ‘닉네임 추천 블로그’ ‘웃긴 닉네임 Top 50’, ‘캐릭터 이름과 닉네임 생성기’등의 사이트까지 운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닉네임으로 성공하기 노하우에서는 읽기 쉽고 부르기 쉬워야 한다. 긍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독특해서 비슷한 이름을 찾기 어려워야 한다. 개인이나 블로그가 연상되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이 숨어있어야 한다 등의 노하우까지 공개하는 사이트도 볼 수 있으니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권하는 사회는 그 요구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제임스 님”, “안젤라님”, “커피 고픔님”……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스타벅스 커피숍에서의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부르는 풍경이 이제는 일상화된 사회, 어떻게 하면 이색적인 이름을 지을까 하는 네티즌들의 경합이 인상적인 상황에서 웃음 지어야 하는 상황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사회!. 이제 우리 사회는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스타벅스에서 사용되는 닉네임<사진 출처 : 구글 검색>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권하는 사회는 커피숍뿐만 아니라 종적(縱的)인 조직문화를 타파하고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하여 벤처기업이라던지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신생 기업들에서는 횡적(橫的)인 조직문화 확보의 일환으로 “팀장님”,”매니저님” 대신에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부르는 회사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이제 우리는 닉네임(또는 아이디)으로 인하여 불편해하거나 당황스러워할 시대를 넘어선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누가 함부로 이름을 짓는가?”라며 꾸짖는 성명학을 연구하는 분들이 머쓱해진 시대가 되었다. 



3. 닉네임 사용하기와 사이버상에서의 자아 찾기


병원에서 A0000님으로 불리고, 회사에서도 닉네임(또는 아이디)으로 불리고, 편안하게 차 한잔 마시러 가서도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써야 함은 물론 잠시 앉아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어딘가 접속하여 정보를 검색하려 해도 닉네임(또는 아이디) 없이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세상!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다 보니 소중한 정보를 마음대로 가져가지 못하도록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개인의 신상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수십 개에 해당하는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생성해야 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 사회, 그리고 그 수명도 짧아서 길어야 일 년 짧으면 한 달 안에 비밀번호를 바꿔야 하고 비밀번호의 조합도 점차 복잡해지는 사회가 요즘 사회이다.  


사이버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기억조차 잘 안 되는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가진 나는 누구인가? 나 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익명성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사이버상에 어떤 글을 남겼는지 책임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사이버 공간에서는 책임질 수 없는 댓글이나 정보 조작 및 비하 발언,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자정 노력이나 사이버 윤리 여론들이 나타나고 성숙한 대다수의 네티즌들이 건전한 사이버 공간 활동을 하고 있어 사이버 공간이 유지되고 있음에 그나마 가슴을 쓸어내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제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권장하는 사회에서 개개인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니터링되고 어딘가에 빅데이터로 저장되면서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나를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가 함부로 이름을 짓는가?”라는 질문을 헛되이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이버 공간이지만 개인의 향기가 묻어나는, 개인의 자아(自我)가 드러나는 닉네임(또는 아이디)을 의미 있게 만들고, 사이버 공간에 남기는 흔적들을 책임성 있게 남기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서울대병원에서처럼 이름 없이 번호로 불리거나 여러 사이트에서 별도의 닉네임(또는 아이디)으로 불리는 세상에서 나로 존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전 02화 4차 산업은 없다! 6차 산업은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