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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12. 2022

6화. 군가족의 독립성

여름. 군 관사에 더위가 몰려오면.

집이 너무 좁다. 

기존의 책을 다시 한번 정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 동화책을 대거 정리하고 당근 마켓에 내놓았다.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만날 장소를 정하는데 첫째 아이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걸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사람도 군인아파트에 사는 엄마였다. 부대 안에 두 군데 이상 다른 아파트가 더 있는데 그중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엄마였다. 우린 서로 머쓱했다. 남편이 군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오전 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차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 위풍당당 하얀색 카니발이 보였다. 저 차 주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만남은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이루어졌다.

서로를 알아보듯.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독립적이다. 굉장히 씩씩하고 에너지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하는 반군인 같은 느낌을 지녔다. 중고거래를 한 후 멋있게 하얀색 카니발을 끌고 바쁘게 출발하는 엄마. 당근 마켓의 거래는 그날 하루의 작은 점일 뿐이다.

보통 당근 마켓이나 중고나라에서 무언가를 구매하면 아빠들이 나간다. 서로 모르는 채로 아빠들이 약속 장소에 나와 머쓱하게 인사한 후 확인하고 물건을 받는 식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중고거래를 할 땐 늘 나만 아빠가 아닌 내가 나가서 중고거래를 하고 온다.  오늘도 당근 마켓 중고거래를 하며 느낀 점은 나도 엄마. 상대도 엄마. 



군인 아빠들은 늘 바쁘다. 

일주일 넘게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다. 

그러다 보니 와이프들이 스스로 척척 알아서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도 결혼 전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공상하며 걷는걸 워낙에 좋아하다 보니 운전면허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결혼 후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취득하고 장롱 면허로 두기만 했다. 본격적으로 운전을 해야겠다 싶었던 게 아이들이 생기고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이다. 가족의 일을 본인에게 피해 가지 않고 나 스스로 해결해주길 바라는 남편 덕에 나는 점점 드세지고 스스로 해결하는 멀티 와이프 겸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가끔 같은 관사에 사는 엄마들과 얘기를 나눌 때가 있다. 

하나같이 공통점이 남편들이 오늘 다 늦는다고 한다.  아니면 어디 멀리 훈련을 간다고 한다. 몇 개월째 안 들어오는 아빠는 미국에 가 있어서 몇 달 뒤 들어와 아이와 둘이 지내고 있다고 한다. 

기억에 남는 친구 엄마가 있다. 친구 엄마에게 우리 남편 바빠서 자주 늦어 혼자 육아하기 힘들다고 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 내 남편은 벙커에 들어가면 연락도 없이 며칠 뒤에 들어와~"

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징징되었네요...'


군인 가족들의 아이들은 어떨까.

군 관사에서 지켜본 아이들은 대부분 자상한 군인 아빠를 둔 것 같다. 바쁘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아빠들. 운동장에서 배드민턴도 하고 축구공을 가지고 공차기 연습도 함께 한다. 가족끼리 보내기 위해 캠핑을 주도하는 아빠도 보인다. 시간이 날 때마다 괜찮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데 아는 아빠가 보인다.

아주 투박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차 안에 물건을 꺼내며 아들에게 말한다.

" 엄마한테 선물이라 그래~"

그 짧은 말에 '아. OO엄마 사랑받고 살고 있구나' 싶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데로 사랑을 표현하며 어느 식으로든 소통하려 한다. 듣기로 부부간 다툼이 일어나면 아이가 아빠 입장을 생각하며 "엄마 아빠한테 그러지 마. 아빠한테 잘해줘~"하며 아빠를 두둔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빠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소린데. 애정은  오늘 한번 교감하고 나눈다고 있어지는 게 아닌 그 이상의 감정이다. 평소에 아빠가  무작정 권위를 내세우고 다정하지 않다면 아이들은 절대적인 엄마 편일 것이다.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다. 

즐거운 아이들. 5시 이후면 너 나할 것 없이 밖으로 나온다. 군 관사 주변에는 정리되지 않은 풀들과 나무들이 정말 많다.  한참 여름의 끝자락엔 무성한 풀들 때문에 뒤뜰에 갈 수가 없다. 풀길은 어떻게든 헤쳐나가겠는데 정말이지 너무나 독한 모기들이 순식간에 달라붙는다. 모기의 매운맛을 보게 되면 돗자리 가지고 소풍 가던 우리들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다시는 가지 말자며 돌아서게 된다.

모기의 위력이 점점 드세지고 있다. 숲을 빠져나와  집 앞에 서 있어도 금세 어디서 몰려오는지 모기들이 여기저기 물기 시작한다. '하. 밖에 못 있겠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둘째가 들어가지 말라며 무섭다며. 누나, 형들과 놀다가 빠져나온다. 군 관사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때는 지금뿐이다. 집에 들어가면 티브이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속이 터진다. 나는 모기의 물림을 감수하고 곁에 있기로 한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 킥보드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 정말 가지 각색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아이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더운 여름이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반바지를 입는데 하나같이 모두 다리에 흉이 많은 것이다.  처음엔 많이 넘어졌나 싶었는데 위치가 애매하다. 무릎과 발목사이에 집중적으로 상처의 흔적들이 밀집되어 있다. 자연스레 우리 아이들의 다리를 보는데  어느새 물렸는지 방금 물린 모기의 흔적들이 다닥다닥다닥..... 

그제야 알았다. 이전부터 군 관사에서 지내왔던 아이들은 드센 모기와의 전투에서 이겨낸 명예훈장을 새기고 있단 것을. 흉이 가득하다. 흉쯤이야 연연하지 않고 열심히 나의 할 일을 하는 아이들.

우리 아이들도 곧 명예의 훈장이 생기겠구나 싶었다. 불안한 마음에  뿌리는 모기 퇴치제를 가져와 수시로 뿌려주었다. 하지만 뛰면서 줄줄 흐르는 땀을 이길 수 없었다. 모기와의 전투에서 밀땅하며 물린 다리를 손으로 탁탁 쳐가며 놀고 있는 아이들.

이제 저녁이 되면 선선해지기 시작할 텐데. 초가을까지 많은 아이들이 모기와의 전쟁에서 고군분투할 생각 하니 참 마음이 짠하다. 패잔병이 되지 않은 게 얼마야. 끝까지 버티다 집으로 향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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