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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15. 2022

고기만 먹던 내가, 회에 눈을 떴다.

이탈리아보다 히말라야

   맛있는 녀석들로 유명한 김프로, 김준현은 음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과 정말 맛있는 음식. 김준현뿐일까. 강호동을 시작으로 유민상, 문세윤, 정준하, 정형돈 등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는 소위 뚱보 캐릭터들은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다. TV 속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체격이 좋은 사람들일수록 편식을 거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100kg를 넘나드는 나도 전형적인 뚱보 캐릭터지만 식성은 정반대다. 꽤나 식성이 까다로운 편으로 스스로 육식주의자라 말할 만큼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과일은 오로지 사과, 바나나, 귤 세 가지만 먹고, 송편에 콩을 넣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는 사람으로 콩밥의 콩은 기가 막히게 골라내는 스킬도 갖고 있다. 


   다행히도 20살이 넘어서는 편식이 많이 줄어들어서 나에게도 김준현처럼 음식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인분만 먹는 음식2인분 이상 양껏 먹는 음식, 메뉴 선택권이 있다면 고를 음식고르지 않을 음식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좋아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가급적이면 피한다는 얘기다.


해산물이 대표적인데 어렸을 때는 된장찌개를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게 다리를 넣고 끓인 해물 된장찌개는 싫어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국물이 시원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특유의 비린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비슷한 맥락으로 바지락 칼국수, 매운탕, 알탕 등도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젓가락질이 서툴러 생선을 먹을 때마다 혼나면서 일종의 방어기제로 생선을 포함한 해산물 자체를 기피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젓가락질이 크게 티가 나지 않는 게, 새우 같은 갑각류는 먹었지만 바르기가 어려운 생선들은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었다. 회도 생선 살을 발라낼 필요가 전혀 필요 없는, 젓가락질이 티가 나지 않는 음식이지만 '생선'이기 때문에 손도 대지 않았었다.


내가 회에 눈을 뜬 건 중학생 때 월출산에 다녀온 다음의 일이었다. 전라남도 영암에 있는 월출산에 가기 위해 집에서 새벽 6시에 나왔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광주 공항에 내려 시외버스를 타고 영암에 도착, 영암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다시 월출산 입구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한창 성장기라 엄청 잘 먹었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산을 다닐 때라 힘들긴 했어도 다리가 풀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월출산에 오르고 나니 처음으로 다리가 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끝없는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는 내가 다녔던 산 중에서 가장 계단이 많았던 산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월출산은 바닷가 근처에 있어서 똑같은 높이의 산들과 비교할 때 경사가 훨씬 가팔라 힘든 등산 코스로 유명한 산이기도 하다.


10시쯤 시작한 산행은 오후 늦게 끝났다. 다른 산들의 경우 보통 3~4시간이면 정상까지 올라갔다 왔었는데 평소보다 2배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새벽부터 움직인 데다 오랫동안 산행을 하고 나니 문자 그대로 다리가 풀려 후들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겨우 몸을 추슬러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목포로 넘어갔다.


원래는 목포에서 1박을 하면서 여유 있게 둘러보고 서울에 올라갈 예정이었지만 너무 지치기도 해서였는지, 부모님께서는 21시쯤 서울로 올라가는 KTX 표가 남은 것을 보고 저녁만 먹고 서울로 올라가자고 하셨다. 목포 관광은 택시를 타고 유달산에 올라 시내 야경을 보는 것으로 대체하고, 택시 기사님의 추천을 받아 횟집으로 이동했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먹어야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의견이었다.


내가 워낙 먹성이 좋기 때문에 고깃집에서는 보통 3~4인분을 먼저 시키고 추가 주문을 하지만 회는 잘 먹지 않는 것을 알았기에 부모님께서는 가장 작은 소자를 시키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택을 후회하셨지만. 평소 같으면 몇 점 안 먹었을 텐데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등산하느라 힘들어서 그랬는지 문자 그대로 말도 안 하고 기계처럼 회를 먹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얄밉기 그지없는 행동이었으나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회 맛에 눈을 뜬 게 반가웠는지 그냥 허허 웃고 넘기셨다.

원래 땀 흘린 다음에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특히나 등산처럼 오랜 시간 운동 후 먹는 음식이 뭔들 맛이 없을까. 오죽하면 최애 음식이 산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이라며 그 맛 때문에 등산을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는데.(물론 농담이겠지만, 그만큼 맛있단 얘기다.)


재미있게도 배드민턴도, 볼링도, 농구도 곧잘 했지만, 등산처럼 식성마저 바꿔 놓는 운동은 없었다. 이제는 내가 먼저 철마다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하자며 친구들을 꼬시고 있다. 손도 안 대던 해물탕이니, 매운탕이니 하는 음식들도 거부감 없이 잘 먹는다. 어렸을 때 편식 때문에 참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때가 되면 다~ 고쳐지는 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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