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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Oct 29. 2022

가방의 무게


이모 여기 물티슈 좀 주세요~

쟤 가방에 물티슈 있을걸??



   술집에서, 고깃집에서, 친구 자취방에서 물티슈가 필요한 순간 나를 잘 아는 친구는 나보고 물티슈를 어서 꺼내라고 재촉한다. 나를 잘 모르는 친구들은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며 기대도 안 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에 왁스 바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옷은 그냥 사이즈만 맞으면 된다는 패션 테러리스트 남자의 가방에서 물티슈라니. 내가 생각해도 상상하기 쉬운 그림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남자 중에 물티슈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친구들이 물티슈를 요청할 때마다 어김없이 내 가방에서는 물티슈가 나온다. 내 가방은 도라에몽의 가방이니까. 물티슈뿐만 아니라 내 가방에서는 오만가지 것들이 튀어나온다. 일단 가방 옆구리에는 우산이 꽂혀 있다. 가방 안에는 필통이나 수첩, 읽을 책은 기본이요, 보조배터리와 충전기, 페브리즈와 구강 탈취제, 코 막힐 때 뿌리는 약 이 정도가 기본 옵션이다. 여기에 여름에는 손풍기, 겨울에는 핫팩,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비상약이 추가된다. 가끔 작업할 때면 노트북이 추가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뭐 별거 없네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줄이고 줄인 결과다. 어렸을 때는 정말 오만가지 잡동사니가 다 들어 있었다. 어느 주머니엔가는 동양화와 서양화가 세트로 들어 있었고, 카드를 즐기기 위한 담요, 괜히 폼 내고 싶은 마음에 넣은 손전등, 땀을 많이 흘리는 탓에 갈아입을 옷과 손수건, 목마름을 달랠 음료수 등등. 한 번은 도대체 왜 넣었나 모르겠지만, 손톱깎이와 맥가이버 칼이 발견되는 바람에 공항 게이트에서 한참을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학생답게 늘 가방에는 책이 한가득 있었다. 난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20년의 학창 시절 동안 단 한 번도 사물함을 써본 적이 없었다. 사물함을 사용하긴 했다. 교내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수업 시간에 읽다가 짱박아놓는 용도였을 뿐. 남들처럼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다닌 적이 없었다. 마치 군인들의 완전 군장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늘 내 가방은 남들보다 몇 배는 무거웠다.


   가방은 최대한 가볍게, 교과서는 사물함에 두고 다니는 내 친구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 역시 내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방은 늘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부모님을 따라 산에 다니면서 죄다 큼직한 배낭만 봤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산책 삼아 야트막한 동네 앞산에 오를 때면 몰라도 ‘등산’이라고 부르는 조금 높은 산을 오르는 순간 가방은 금세 가득 찬다. 세 식구가 먹을 마실 물에, 당을 섭취할 군것질거리, 어느 날은 사진 찍겠다고 카메라도 챙기고, 땀 닦을 수건과 비상약 등을 챙기면 순식간이다. 그나마도 우리 가족의 짐은 정말 단출한 편이었다. 


   전문적으로(?) 타는 사람들을 보면 일단 옷부터 단풍처럼 화려한 등산복에 저마다 끈 달린 등산 모자와 스틱, 등산화부터 시작한다. 가방 한쪽에는 보온병과 컵이 대롱대롱 달려 있고, 또 반대쪽에는 우산이 꽂혀 있다. 앞쪽 조끼 주머니에는 맥가이버 칼과 손전등이 달려 있다. 가방 안에는 아이젠, 등산용 장갑과 비상약, 간식거리, 선크림, 방석, 선글라스 등이 가득하다. 심지어 소주나 버너를 챙겨서 다니는 분들도 있었다. 야간 산행, 종주를 하는 분들은 텐트까지 짊어지고 이동했으니 문자 그대로 완전군장 수준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산에 다녔을 뿐만 아니라 또래와 어울리는 시간이 적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보고듣고배우고자란 ‘가방’의 용도는 ‘무조건 많이 담기’였다. 가방 안에 들어갈 짐의 종류 또한 무제한이었다. 산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법이니까. 방심하고 룰루랄라 걷다가 사고를 당하느니 힘들더라도 바리바리 싸 짊어지고 오르는 것이 안전하니까. 그래서 산을 좀 다니는 사람들의 가방은 늘 무겁다.


어린 마음에 순수하게 등산 가방이 세상 가방의 전부라고 믿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어쨌든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한 보따리 짐을 싸 들고 다니기로 유명했다. 며칠씩 자고 오는 날도 아닌데 외가댁에 갈 때며 거의 한 박스 분량의 장난감을 싸 짊어지고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기도 했으니. 그까짓 교과서 10권쯤이야. 뭐 대수라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꼬꼬마 특유의 어른 흉내를 내고 싶었던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산에 가면 어른들은 무거운 가방을 짊어매고 휘적휘적 산을 오르는데 나는 늘 낑낑대며 따라가기 바빴으니까.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 하면 괜히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착각하기 마련이니까. 마치 까치발을 해야 겨우 닿을까 말까 한 엘리베이터 버튼을 직접 누르고, 버스에 타면서 버스카드를 찍어보겠다고 때 쓰는 아이들과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내 가방은 여전히 묵직하고, 이제는 아저씨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내가 어른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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