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를 보면 경사가 90도에 가까운 아슬아슬한 절벽을 자유자재로 뛰노는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산 절벽에 사는 산양이라든가, 티베트 고원에 사는 눈표범이라든가. 산양이나 눈표범까지 안 가더라도 대다수 동물들은 도저히 사람은 다닐 수 없을 것 같은 바위틈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사람은 도구를 이용할 줄 아는 동물인지라 동물도 갈 수 없을 듯한 절벽을 오르고, 날개 달린 새들만 넘나들 수 있는 계곡도 건널 수 있도록 다양한 도구를 개발했다. 예를 들면 암벽 등반용 밧줄이라든가, 케이블 카라든가, 구름다리라든가.
뭐하러 그렇게까지 산을 올라야 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만큼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절경이 펼쳐지는 모습들을 보면, 위험을 땀을 뻘뻘 흘리며, 기다시피 올라가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야 구름다리가 워낙 많아졌지만, 구름다리라고 하면 대둔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산을 좋아하지 않아도 누구나 광고나 뉴스에서 한 번쯤은 대둔산의 구름다리를 배경으로 한 항공사진을 본 적이 있을 만큼 대둔산의 ‘구름다리’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CNN에서 선정한 한국에서 가볼 만한 명소 50곳 중 하나라는 썰이 있을 정도니 정말 아름답긴 아름답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내가 같은 장소에 간다고 같은 풍경을 본다는 보장은 없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보는 사진은 문자 그대로 ‘사진빨’이니까. 다만 ‘구름다리’라는 독특한 구조물만큼은 변함없이 즐길 수 있기에 계속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는 모양이다.
대둔산의 구름다리는 특이하게도 수평으로 계곡을 건너는 첫 번째 다리인 금강구름다리와 거의 60도 경사로 절벽을 오르는 두 번째 삼선계단으로 나뉜다. 1000m도 안 되는 산치고는 제법 계곡이 깊고, 절벽도 가팔라서 밑을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가끔씩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대둔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둔산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방송에서 대둔산 구름다리를 볼 때마다 반가우면서 문득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이름도 모르는 그는 나보다 3,4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금강구름다리 앞에서 다리를 건너가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는데 오지랖 넓은 우리 부모님은 그에게 여기서 뭐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동네 앞산도 아니고 대둔산은 초등학생이 혼자 올라올만한 산은 아닌 데다 아들 또래의 남자아이가 혼자 주저앉아 있자 걱정이 되신 모양이었다.
그 형은 학교에서 단체로 선생님, 친구들과 왔는데 고소공포증인지, 그냥 그 나이 대 어린아이들 특유의 소심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구름다리가 무서워서 도저히 자기는 못 건너가고 구름다리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고 했다. 아무리 다시 만나기로 했다지만, 핸드폰은 고사하고 삐삐조차 흔치 않던 그 시절에 산 중턱에 초등학생을 남겨두고 가다니. 지금 생각하면 인솔한 선생님이 제정신인가 싶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부모님은 필살기(?)인 나를 내세워 “여기 동생도 잘 가는데 형도 같이 가야지?” 어린아이들 특유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면서 한편으로는 살살 달래주었다. 나는 30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고소공포증이 약간 남아 있지만, 그땐 무슨 정신이었는지 그 형 보란 듯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해맑게 웃으며 건넜던 거 같다. 앞에서 깨방정을 떤 내 덕분인지 부모님 덕분인진 모르겠으나 그 형도 용기를 내서 함께 구름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금강구름다리를 건넌 형은 부모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후다닥 뛰어갔다. 그리고, 불과 30분? 1시간 만에 다시 그 형을 만날 수 있었다. 두 번째 다리인 삼선계단 앞에서. 이번에도 부모님은 형보다 어린 나를 앞세우고, 열심히 달래 보았다. 함께 다리를 건너자고, 가서 친구들 만나야지 않겠냐며. 삼선계단만큼은 도저히 갈 수 없다고 고개를 내젓는 통에 그 형을 뒤에 남겨두고 우리 가족끼리 산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개인적으로는 계곡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금강구름다리가 훨씬 무서운데, 왜 삼선계단 앞에서 포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대둔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이름도 모르는 그 형 생각이 난다. 과연 친구들을 무사히 만날 수는 있었을까? 혼자 무리해서 따라 올라가든, 뒤돌아 내려오든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동물도 다닐 수 없을 만큼 험난한 길을 건널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도구가 발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튼튼하고, 안전한 도구가 있다고 해도 안전사고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가파른 절벽이나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계곡 사이를 가로지르는만큼 근본적인 공포가 사라지진 않는다. 에버랜드니 롯데월드니 수많은 놀이기구들이 있지만, 잊을만하면 사고가 발생하고, 놀이기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름다리를 건널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 옆에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건너 안전을 증명해주고, 두려움에 빠진 내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지친 내가 다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응원해주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