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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진 Jan 30. 2021

판사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일까?

 미국, 일본에선 이미 15명이 탄핵됐다는데...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을 겪어온 그들은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 데 성공했다.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신성가족』               



판사의 힘은 엄청납니다.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게 헌법적 인지도 판단하고 법무부의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옳은지 그른지도 판단합니다. 공직자 비리 수사처의 존폐 여부도 사실상 사법부가 정한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과서에는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가 균형 속에 서로 견제하며 우리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 나오지만 우리 사회의 사법부 의존, 사법부 우위 현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법관은 법리로 무장한 만능 문제 해결사... 마치, 신과 같습니다. 

정치적, 행정적 갈등의 국면마다 정치인, 행정가들은 검찰로, 법원으로 달려가고 결국 법원이 나서 최종 결정을 내려줍니다. 법 역시 완벽하지 않기에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정치(입법부)의 역할 이건만 그룹 총수도, 정치인도, 국민들 모두 법원 판결일만 기다리는 상황이 거의 매번 연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잘못을 저지르면, 누가 벌할까요. 




을 향한 인간의 도전?   


대통령ㆍ국무총리...법관...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헌법 65조


헌법에 따라 판사 역시 탄핵될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사법 농단을 세상에 알린 판사 출신 이탄희 의원(경기 용인정)이 2월 1일 월요일에 탄핵안을 발의할 예정인데 1월 29일까지 국회의원 151명이 탄핵안에 이름을 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151명은 국회 재적 의원의 과반수로, 탄핵안이 통과되는 데 꼭 필요한 최소 인원입니다. 탄핵안이 가결되면 국회는 헌법재판소에 탄핵 심판을 청구하게 되고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동의하면 탄핵이 최종 결정됩니다. 탄핵이 인용되면 임 판사는 5년 동안 변호사 등록이 안되고 퇴직 급여도 다 받지 못하게 됩니다.      



'신'은 무엇을 잘못했나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의혹’인데요. 일본 산케이 신문 역시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텐데요.      


이 보도에 대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허위보도를 통해 대통령의 인격과 국격을 훼손했다"면서 강하게 반발했고 검찰은 산케이 지국장을 명예 훼손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 지국장  


이 무렵 임 부장판사가 등장합니다. 

임 부장판사는 사건을 담당한 이동근 부장판사의 판결문을 미리 받아본 뒤 “청와대에서 서운해한다”면서 판결문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문구를 넣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판결문이 나왔습니다. 명백한 재판 개입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임 부장판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의 체포 치상 사건의 재판장이었던 최창영 부장판사에게도 판결문 일부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도록 했고, 프로야구선수 도박 사건 담당 판사인 김윤선 판사에게 '다른 판사에게 더 물어보라'라고 말하면서 사건이 정식재판이 아닌 약식명령으로 마무리되도록 했습니다.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다른 국가기관이나 외부세력뿐만 아니라 사법부 내부에서도 법관의 독립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헌법 103조) 재판의 독립성을 상습적으로 침해한 반헌법적인 행위를 판사가 자행한 겁니다.  내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가 상사의 말에, 인맥에, 혹은 다른 어떤 외부 요인에 휘둘린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 판사를, 그 판결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사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 2018년 11월 전국 법원의 판사 100여 명이 모인 '전국 법관 대표회의'에서도 이 사안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누가 신을 벌하려 하는가"


야당인 국민의힘은 판사 탄핵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워딩들을 보면 '어떤 전제' 위에서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문 정부가 광기에 빠졌다"(나경원 예비후보 )

"사법부 길들이기다"(배준영 대변인)      

"판사들을 대놓고 위협하는 것"(오세훈 예비후보)  

  

직무 과정에서 헌법을 위반한 판사를 탄핵하려는 게 ‘미친 것’일까요? 오히려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건 아닐까. ‘판사 길들이기’라는 말에는 판사 탄핵은 음험하고 나쁜 것인 반면 판사는 길들일 수 없는, 어떤 순진무구한 존재라는 무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탄핵 시도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판사를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그 시도야말로 '시민 길들이기'는 아닐까요?  



미국에서도 탄핵되는 판사들      



판사 탄핵 제도는 미국에도 일본에도 있고, 이미 많은 판사들이 탄핵됐습니다.        

아래 사진은 토마스 포르테우스 전 판사인데 뇌물을 받고 위증을 한 혐의로 2010년에 탄핵됐습니다.        

 


미국에서는 1803년 이후 현재까지 15명의 연방법관이 탄핵소추당했고 이 중에서 8명이 탄핵 결정을 받아 파면됐습니다.      


탄핵 소추된 이유는 다양합니다. 

<정신적 불안>, <술 취한 상태로 재판>, <권한 남용>, <재판 중 자의적이고 고압적인 재판 지휘>, <재판 거부>, <소송 당사자와 부적절한 사업 관계>, <탈세>도 있고, <성폭력>, <허위진술> <위증> <절차 방해>로도 탄핵소추를 당했습니다.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나 정책 개발을 돕는 국회 기관인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8년 10월에 법관 탄핵에 대한 해외사례를 연구해 쓴 보고서가 있는데 그 보고서에 자세히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 국회 입법조사처 구경하고 오기  



지하철 성추행으로 탄핵된 일본 판사 


    

일본 역시 판사 탄핵 제도를 헌법, 국회법, 재판관 탄핵 법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건 일반 국민들도 판사 탄핵 소추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1948년부터 2007년까지 90만 건 가까운 판사 탄핵이 국민에 의해 청구됐습니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에 의해 제기된 경우가 대다수였을 테지만 ‘국민에 의해 탄핵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개별 판사들은 판결에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탄핵 소추된 재판관은 9명이었고 이 가운데 7명이 파면됐으며 2명은 파면되지 않았습니다. 파면 사유는 <심각한 직무태만>, <향응 등 뇌물>, <법원 여직원에 대한 스토킹과 성적 수치심을 해치는 익명의 메일을 반복함>, <아동 성매매>, <전철 내 성추행> 등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직무에 관한 위헌·위법 행위만을 탄핵사유로 정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탄핵 사유를 경범죄까지 훨씬 더 넓게 규정함으로써 판사에 대한 윤리 규정을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 그런데, 우리나라 판사는? 



판사들의 비위 사건은 잊을 만하면 한 건씩 터졌습니다. 


2006년 조관행 판사, 1억 원 대 뇌물 수수 

2015년 최민호 판사, 사채업자로부터 2억여 원 수수

2016년 A판사,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 내 5명 부상 

2017년 B판사, 재판에 관여 중인 여검사를 성추행

2017년 C판사, 지하철 4호선에서 여성 신체 몰카 촬영     


미국이나 일본이었다면 탄핵됐을 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넘어가곤 했습니다. 탄핵되지 않은 판사들은 사직서를 내고 나와 변호사로 개업한 뒤 전관예우를 받으며 많은 수임료를 챙겼을 겁니다. 


법의 수호자가 법을 어겼는데도 오히려 더 많은 사회적 보상을 받는 일은 결코 정의롭지 않습니다. 법의 수호자가 법을 어기면 적어도, 법을 수호하는 일만은 할 수 없게 하자는 것, 그래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계속 유지해나가자는 게 법관 탄핵이고 이제 우리는 그 기본적인 걸 해보자고 한 걸음 내디뎠을 뿐입니다.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낸 다음
무릿매질을 하여 골리앗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강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누르고
그를 죽였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17장 



*인용된 국회 입법조사처의 페이퍼를 보시고자 하는 분은 '여기'를 누르세요. 

*글의 맨 처음, 맨 끝에 나오는 구절은 사법부를 비판적 시각에서 들여다본 책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인용했습니다.


**<법안으로 세상 읽기>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통해 정치와 사회를, 그리고 우리를 들여다보는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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