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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인 Jan 14. 2022

연과 바람 그리고 약속

약속을 잘 하지 않는 그의 약속

 내가 연이면 신랑은 바람이다. 바람이 없으면 하늘을 날지 못하는 연처럼 신랑은 내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 연을 날리는 주체는 사람이지만 단순히 유희를 위해 바람을 이용하는 사람에 신랑을 비유하고 싶지 않다. 나는 우리를 연과 바람처럼 그들만의 영역에서 순수히 서로를 의지하고 영위하는 존재로 표현하고 싶다. 바람이 없으면 꼼짝도 못 하는 연과 연이 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바람처럼,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서로에게 절대적이다. 나는 신랑의 사랑과 관심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그의 정신적 지지와 응원을 필요로 한다. 나의 사랑은 마치 어린아이 같다. 반면 신랑은 나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면서 나의 행복과 기쁨으로 자신의 행복을 느낀다. 정말 가끔은 그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과 오버랩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내가 늘 나보다 신랑의 사랑이 더 크다고 느끼는 이유 중에 하나다. 그는 실제로 나를 '아가' 라 칭하며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존재처럼 다룬다. "너 때문에 못살아"라고 말하는 나와 달리 신랑은 내게 "너 때문에 산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가 "어이구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 하면 신랑은 또 '못살아'가 아닌 "안 살아"라고 말한다. 신랑은 정말 바람처럼 나로 인해 자신이 존재한다는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터키에도 겨울이 왔다. 겨울의 아침은 세상 모든 직장인들에게 괴로운 시간이다. 밤새 가득 채워놓은 온기 속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 밖으로 몸을 빼내는 건 강인한 정신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느 날 신랑은 내게 고백했다.

"솔직히 요즘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든데, 옆에서 자고 있는 너를 보고 힘을 내서 일어나"

"에이~~~~ 뻥! 무슨 나를 보고 일어나"

"진짜야! 내가 일을 나가야 우리 아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좋은데도 데려갈 수 있는데 이렇게 다시 잠들면 안되지 하고 일어난단 말이야"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감동이었다. 나였으면 하루 종일 자도 누가 뭐라 할 사람 하나 없는 마누라가 부럽고 약 올라서 일부러라도 깨울 거 같은데, 신랑은 그렇게 늘어져 자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어떤 책임감과 사랑의 힘을 발휘했다. 보통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 아닌가. 신랑은 나를 정말 대가 없이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신랑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포옹으로 대신했다. 그런데도 여태껏 신랑이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진 못한다. 대신 신랑이 머리를 말리는 헤어드라이기 소리에는 벌떡 일어난다. 부스스한 머리로 눈을 비비며 그의 아침에 내가 등장한다. 신랑도 그러기를 은근히 기다린 건지 나를 보자마자 강아지처럼 혓바닥이 보이게 헤헤거리면서 웃는다. 어느새 내 알람 소리는 드라이기 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드라이기 소리를 들으면 눈꺼풀이 무거워도 마음이 안도된다. 신랑의 출근길을 쓸쓸하게 보내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 언젠가 TV에서 재밌는 연구결과를 보았다. '아침에 아내에게 키스를 받은 남자는 그렇지 않은 남성과 비교했을 때 연봉이 훨씬 더 높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여자다. 신랑은 결혼하고 3번의 직장을 옮겼으며 그만큼 나를 애태우기도 했지만 재주도 좋게 그는 옮기는 직장마다 매번 연봉이 올랐다. 그리고 그건 내가 신랑의 출근을 마중해주는 횟수와도 비례했다. 내가 그 연구결과에 한술 더 보태자면 신랑을 온전히 챙겨줄 수 있는 지금, 그는 나의 응원에 점점 더 자신감과 안정됨으로 회사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지금의 4번째 회사에서는 그는 확실히 인정받고 좋은 성과들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 연구결과가 모닝키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모닝키스에는 배우자에 대한 존경, 사랑, 지지, 기대, 안정과 같은 마음이 밑바탕으로 담겨있고 그것이 가장이 일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당연 아침 배웅을 입맞춤으로 시작하는 가정은 화목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식솔을 챙겨야 하는 가장은 많다. 그러나 가장의 삶에 가족 구성원 누구도 무관심하다면 그 누가 일할 맛이 나겠나. 나는 앞으로도 더 정성을 다해 신랑의 점심 도시락을 챙기고 매일 아침 문지방 포옹과 입맞춤으로 그를 배웅하고, 그의 퇴근을 격하게 환영하고자 한다.

 

 신랑은 내게 바람이다. 언제나 살랑살랑 바람을 불어주어 어느 틈에 나를 하늘로 날게 한다. 그는 그런 능력과 재주가 있다. 가끔은 준비되지 못한 헛바람에 날아올랐다 된통 당하기도 하지만 확실한 건 그가 불어주는 바람엔 우리의 바람이 담겨있다. 연이 하늘 위로 날기 위해 처음에 센바람이 필요하듯 신랑은 내가 시작한 일에 강력한 지지를 선언한다. 그리고 내가 좌절을 맛보거나 무기력해지지 않게 끊임없이 바람을 일으켜 지속력을 높여준다. 내게 결혼생활이 가치 있는 것은 단순히 삶을 같이 산다기보단 서로를 성장하게 한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도 모두 신랑의 덕분이다. 가만히 나의 글을 기다리고 읽고 다음 편을 기대한다. 그 모습에서 나는 진심을 느낀다. 글을 업로드하는 텀이 길어지면 신랑은 "요즘은 글 없어?" 하고 아쉬워한다. 내가 "집안일하고 택배 신경 쓰고 그러느라고 글이 잘 안 써져"라고 했더니 본인은 평일 내내 일해서 힘들었을 텐데도 주말에 청소기를 돌리고 밥을 차린다. 마음이 여유로워야 글이 잘 써지는데 바쁘고 어수선하니깐 작품이 안 나온다면서 말이다. 나의 글을 가장 기다리고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나는 터키에서 어떤 날은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어떤 날은 시를 쓰고, 또 어떤 날은 그림을 그리며 그렇게 기록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신랑은 내게 글이든 그림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감정을 표현해내는 모습이 빛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혜인아 내가 2년 전에 지키지 못한 약속 이제 지킬게. 너 작가 해. 내가 너 작가 시켜줄게"라고 말이다. 정작 우리 둘 다 어떻게 작가가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또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신랑은 내게 참 따뜻한 바람이다.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걸면서 "약속해"라고 하면 신랑은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하는데 못 지켜서 생기는 죄책감과 원망은 듣기 싫다’며 질색팔색 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잘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신랑이 내게 약속을 했다. 2년 전, 결혼하면서 신랑은 내게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게 해 준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우리는 현실과 부딪혔고 타협했고 나는 취직을 했다. 맞벌이 부부로 남들처럼 살았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꿈은 멀어졌다기보다 사라짐에 가까웠다. 그리고 신랑은 나의 원망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꿈을 놓는다는게 결국은 내 의지였을텐데 이기적이게도 나는 신랑을 원망하며 신랑의 탓으로 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아! 이제 알았다. 신랑이 왜 그토록 내게 이기적이라고 말했던 건지. 그런데, 2년 후 지금 그는 그 많은 원망들을 듣고도 나에게 다시 작가가 되라고 말한다. 그리고 약속처럼 신랑의 격려와 지원은 아낌이 없다.


 나는 생활비와 용돈을 따로 받고 있다. 자신은 돈 쓸 일이 없다면서 나의 용돈의 반만 가진다. 그런데도 미술관 갈 때,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떠날 때는 기꺼이 본인의 지갑을 연다. 이건 나의 영감을 위해 자신이 후원하는 거라면서 말이다. 나에게 정말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다. 어떤 날은 회사에 있는 신랑이 내게 화장을 하고 외출했냐고 묻는다. 나는 외출을 하도 많이 해서 눈치 주나 싶어 집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날씨가 좋길래 밖에 나가서 재밌게 놀고 있나 궁금해서 연락했다고 한다. 내가 즐거워야 따뜻하고 감성적인 글이 나오는데 그걸 또 본인이 읽으면 자신도 따뜻해지고 좋다면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내 마음은 더 뜨겁게 타올랐다는 것을 신랑은 알까? 아마 이 글을 읽으면 알겠지. 여보 내가 정말 고맙고 사랑해. 내가 느끼는 우리의 이 값진 순간들을 계속해서 기록할게. 그리고 이젠 나의 이 행보를 멈추지 않고 정말 작가가 되어볼게. 나도 약속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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