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로케 Apr 01. 2024

Similarity: 유사성을 파악하면 경제적이다

헬렌 켈러는 어릴 때 뇌척수막염을 앓고 시력과 청력, 그로 인한 언어장애를 안았다. 물론 우리가 익히 아는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 피나는 노력 끝에 언어장애는 극복할 수 있었다. 그녀는 삼중고의 장애를 극복하면서 결국 5개 국어를 습득한다. 그 뿐만 아니다. 사회 운동가로서 연설하고 글을 쓰면서 어려움이 있는 지역을 찾아가 힘과 용기를 주는 삶을 살았다.누구나가 존경하는 삶을 살았던 헬렌 켈러를 보면서 이런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삼중고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녀에게 남아 있는 감각기관은 단출했다. 오로지 후각, 촉각, 미각뿐이었다. 그녀는 남들 보다 가난한 감각으로 세상을 마주했다. 일반인이 지닌 감각기관에 비해 그녀의 감각은 확실히 부족했다. 하지만 헬렌 켈러는 자신에게 남아있는 감각기관을 최대로 활용하여 감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그녀는 말하는 사람의 목에 엄지를 대면서 목의 진동을 느끼고 검지를 입에 대면서 입모양을 촉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방법을 통해서 그녀는 결국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나는 이제 벙어리가 아니다.(I am not dumb now)”


헬렌 켈레는 자신의 부족한 감각을 대체하기 위해서 남들 보다 훨씬 뛰어난 유추 능력을 발휘한다. 유추는 유사성을 파악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유추 능력을 통해서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고 그를 통해 감각의 지평을 점점 넓힐 수 있었다. 헬렐 켈러는 아래와 같이 자신의 유추 능력을 설명한다.


나는 관찰한다, 나는 느낀다. 나는 상상한다……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인상과 경험, 개념을 결합한다. 이 가공의 재료를 가지고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세계의 안과 밖 사이에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닮은 것들로 가득 찬 바다가 있지 않은가…..내가 손에 들고 있는 꽃의 신선함은 내가 맛본 갓 딴 사과의 신선함과 닮았다. 나는 이러한 유사성을 이용해서 색에 대한 개념을 확장한다. 내가 표면과 떨림과 맛과 냄새들의 특질에서 이끌어낸 유사성은 보고 듣고 만져서 찾아낸 유사성과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견디게 했고 눈과 손 사이에 놓인 간극에 다리를 놓아주었다.


헬렌 켈러는 자신의 촉각, 미각, 후각만으로 이 세상의 개념을 공부했다. 그렇게 조금씩 개념을 넓히면서 시각과 청각의 정보를 유추했다. 그녀가 비록 듣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5개 국어를 학습하고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이유는 유추 능력 때문이다. 유추 능력을 통해 그녀는 유사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유사성은 내가 닮은 점을 찾아 지식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경제적이다. 복잡하게 많은 지식을 알고 있지 않아도 유추 능력만 있어도 충분히 폭 넓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그리고 유사성은 지식과 개념을 정리해주므로 효율적이기도 하다. 바로 범주화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은 유사성을 활용해 세상을 범주화 한다. 세상은 매우 다양한 생명체와 사물이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문방구에서 펜 한 자루를 사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펠트 펜, 중성 펜, 잉크 펜, 볼펜 등 펜의 종류만 해도 30가지가 넘는다. 만약 우리에게 범주화 능력이 없다면 30가지 종류의 볼펜을 하나씩 인지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또 길거리를 산책하는 진돗개나 치와와를 봐도 그것을 ‘강아지’로 범주화 못하면 우리는 모든 개의 이름을 인지해야 할 수도 있다. 또, 잔디가 잔디밭이라는 전체로 범주화 할 수 없으면 잔디 이파리를 모두 별개로 인지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는 신경쇠약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이렇듯 범주화는 ‘세상 만물을 유사성을 통해 이 묶음(범주), 저 묶음(범주)으로 구분하여 우리의 정신 활동과 언어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분류 작업이다.’범주화를 하지 않는다면 복잡한 이 세상을 제대로 살 수 없다.


복잡할 거 없어 보이는 선사 시대 사람들도 범주화를 했다. 가장 초기에 있었던 인간의 범주화는 ‘지금(now)’과 ‘지금이 아닌(not now)’이다. 인간만큼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할 수 있는 종은 없다. 그와 더불어 대상의 영속성 또한 선사시대 사람은 구분할 수 있었다. 즉, 대상이 내 시야에서 사라져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사슴이 내 눈앞에 있다가 사라져도 우리는 그 이미지를 기억하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과 ‘여기와 지금 아님(not here and now)을 구분하는 능력이다.


이런 인간의 능력은 약 3만 년 전 동굴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굴 벽화는 여기 있는 ‘있는’ 것과 여기 ‘있었던 것’의 차이를 보여준다. 여기에 대해 인지심리학자인 대니얼 J 레비틴은 이렇게 말한다.


이 그림은 분명하게 표현된 시간 감각을 입증해 보인다. 저기 바깥에 사슴이 있었다(물론 지금 이 동굴 벽에는 없다). 지금은 거기에 사슴이 없지만, 아까는 거기에 있었다. 지금과 아까는 다르다. 여기(동굴 벽)는 그저 거기(동굴 앞 초원)를 표상할 뿐이다. 마음을 정리하고 조직화하는 과정 중 선사시대에 이루어진 이 단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유사성을 기반으로 한 범주화 사고를 한다. 예를 들어, 당장 처리해야 할 일과 중요하지만 나중에 처리해도 되는 일 그리고 중요하지 않고 나중에 처리해도 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 3가지 범주에 맞는 유사한 속성의 일끼리 분류하여 정리한다. 이러한 분류를 ‘능동적 분류(active sorting)’라고 한다.


능동적 분류를 할 때의 원칙은 ‘정리의 부담을 뇌가 아닌 외부 세계로 넘기는 것이다.’만약 우리가 뇌가 할 정리를 물질세계로 넘길 수 있으면 까먹거나 실수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내가 필요한 정보는 머릿속이 아니라 내가 분류한 파일 폴더에 있다면 그 부담이 훨씬 덜 할 수 있다. 이것을 인지 심리학자는 ‘깁슨 행동유도성(Gibsonian affordances)’라고 한다. 이것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경우는 대표적인 예는 여닫이문과 미닫이 문이다.


여닫이문은 문틀에 홈이 파져 있어서 그걸 보면 옆으로 여는 행동 방식을 유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미닫이문은 손잡이가 문 밖에 나와 있어서 문을 밀고 닫는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물질을 통해서 기억과 행동을 직관적으로 유도한다. 그래서 우리는 문을 여는 방식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유사성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범주화를 할 수 있다. 이것은 세상을 누구 보다 더 정돈된 상태로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함을 위해서는 유사성을 찾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

이전 12화 불편함은 못생겼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