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사량도 지리산을 등산한 적이 있었다. 높이는 397m로 높지는 않았다. 내가 많은 산을 타지 않았지만 샤랑도 지리산은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올랐던 산 중에 극악이었다. 보통의 산은 오르고 내려가는 패턴이 예측이 된다. 하지만 사량도의 고도는 낮지만 능선을 따라서 이동하는 코스여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올라갔다가 올라가고 다시 내려가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등 패턴이 예상되지 않는다. 이 예측 불허의 패턴이 등산을 힘들게 했다.
그래서 등산하는 사람들이 말하길 산을 오를 때 가장 편한 구간은 내리막이 아니라 평지라고 한다. 나도 사량도 지리산을 등산하면서 찰나의 평지가 나왔을 때 숨통이 트이는 행복감을 느꼈다. 고저 없이 완만하고 평평한 상태, 우리는 그 평평한 순간을 얻기 위해서 오르막을 오르고 내리막에 내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기질은 내 삶의 방식과도 연관이 있다.
나는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는다. 술, 담배, 커피는 서민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는 마지막 보루다. 그 3가지는 돈 없어도 즐길 수 있다.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먹을 수 있고 1,300원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도 있고 담배 한 개비로 근심걱정을 날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 조차도 하지 않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도 내가 왜 그런 삶을 사는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다가 애나 렘키라는 정신과 의사가 그 대답을 대신해주었다.
정신의학 의사인 애나 렘키는 《도파민네이션》에서 쾌락과 고통은 쌍둥이라고 말한다. 쾌락과 고통의 관계를 시소로 비유했다. 쾌락의 무게가 클수록 쾌락 쪽의 시소는 내려가지만 반대편의 고통은 높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즉 쾌락에 상응하는 고통은 늘 따라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잊기 위해서 다시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멀쩡한 뇌도 쉽게 망가진다는 것이다.
정신의학 분석이 아니더라도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경험들을 많이 한다. 밤에 기분 좋게 술을 먹었지만 그 다음날 숙취의 고통에 시달리거나 클럽에서 신나게 놀고 난 다음, 해 뜨는 아침을 맞이했을 때 느끼는 왠지 모를 울적함이 그렇다. 법정 스님은 이러한 중생들의 아이러니를 이미 파악하시고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모자람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넘침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자람이 채워지면 고마움과 만족할 줄을 알지만 넘침에는 고마움과 만족이 따르지 않는다.’고 말이다. 고통이 크면 조금만 그 무게를 덜어져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넘치는 쾌락은 끝없이 추구하게 되고 더 진한 행복이 아니면 행복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평온한 게 재미있다. 들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고 그저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나에게 최고의 재미다. 술, 담배, 커피는 내 바이브를 위아래로 요동치게 만든다. 기분이 하이 해지면 좋지 않아? 라고 하는 데 기분이 높이 올라간 만큼 떨어질 때는 그 만큼 아래로 떨어진다. 그게 반복되면 나만의 평온함을 유지하기 힘들다. 평온함이 유지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재미가 없고 불쾌하다.
어릴 적과 지금 느끼는 행복의 속성은 다르다. 어릴 때는 행복이 설렘, 재미라면 지금은 안도감, 고마움이다. 어릴 때를 생각하면 축구공만 있어도 좋았다. 친구들과 골목 어귀에서 축구만 해도 재미있었다. 5의 에너지만 써도 50의 행복감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행기 타고 하와이 정도는 가야지 설렘을 느낄 수 있다. 돈과 시간 등 50의 에너지를 쓰면 70정도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어릴 때와 비교했을 때 효율적인 행복을 기획하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행복의 정의를 달리 했다. 나에게 행복은 평온이다. 즉, 불행하지 않는 상태, 걱정 없는 상태가 곧 나에게 행복이다. 이렇게 정의를 하니 나는 내 방 한 구석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 나의 행복은 설렘과 재미여야 한다고 고집했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 불행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나이 대 부터 그러한 순간은 급속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평온함은 오롯이 일상을 순도 100%로 마주하게 한다. 일상을 순수하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술, 담배, 커피 보다 재밌다. 마음이 평온하면 해질녘 석양도 재밌고 집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도 재밌고 베란다를 스치는 선선한 바람과 햇살도 재미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방향은 재미나 쾌락에 있지 않다. 최대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평온함은 지루함과 권태가 아니다. 평온함은 일상을 건강하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기반이다.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야 일상에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행복의 정의는 다르다. 행복의 정의에 맞춰 내 삶을 고집하기보다 내가 행복한 상태에 맞춰 행복을 재정의 한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