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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힘

자유와 규율사이의 신앙

by 오필

자유와 규율 사이의 신앙

칼로 이루어진 공개된 숙청과 투명한 단죄,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칼레온의 즉위식을 거행하며 교황 아르테노는 현실을 직시했다. 엘렉티오가 만든 황궁의 규율 또한 올바랐으나, 자유의 대륙에서 파생된 거짓된 자유는 언제든 다시 칼이 될 수 있다. 반역의 칼을 막기 위해선 칼레온 같은 굳건함이 필요했으며 이러한 굳건함이 없다면 역사는 똑같이 반복될 것이 자명했다.

'둘 다 훌륭한 황제임이 틀림없고 그들이 세운 규율 또한 잘못됨이 없다. 그럼에도 자유 위에 규율을 얹지 않고, 규율 위에 자유를 놓는다면 거짓된 신앙, 탐욕에 의한 반란의 발생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황제의 직위를 얻는 과정부터 분란을 정리하며 칼레온의 규율을 세우는 과정까지 이 모든 걸 수월하게 해결하기 위해선 교황 아르테노의 입지는 필수적이었다. 그렇기에 칼레온의 요청하에 질서가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 아르테노는 그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다소 강압적으로 황궁의 규율을 바꾸려는 칼레온에게서 두려움과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점차 정리되는 칼레온의 규율에서는 강압보다는 올곧음이 강조됐다. 결코 억압, 강압의 규율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유 위에 규율을 세운다는 신념은,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닌 정돈된 자유의 형상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완성되어 가는 질서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칼레온은 엘렉티오가 만든 자유의 대륙을 인정하는 유연함 마저 겸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유의 대륙을 깡그리 다 바꾸는 것이 아닌 한정적인 규율을 재정립해 '계급을 얻은 자 계급의 무게를 견뎌라'라는 상징적 규율을 추진했다. 이는 계급을 통한 악행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선동파가 신앙의 이름으로 저지른 범죄, 자신의 아내를 탐하고 죽음으로 내몬 자들과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그렇게 올곧음과 유연함으로 조율돼 완성된 칼레온의 규율은 아르테노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견고했다.


결과적으로 칼레온이 황제가 되자 폭동은 사라졌고, 반란은 잠들었다. 피 냄새가 짙게 밴 즉위식이었기에 남아있던 반란과 분란의 불씨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칼레온은 칼끝으로 세운 두려움에 의한 질서를 두려움에 의한 침묵만으로 유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만든 질서는 '자유 위의 규율'이라는 확고한 신념에서 파생되었고, 자유를 억압한 것이 아닌 정돈된 자유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교황 아르테노의 마음에 새로운 소명을 피워내기에 충분했다.

'교황청의 규율을 바로잡는 것이 신이 내린 나의 역할이리라.'


칼레온은 황궁에서 시작된 정돈된 규율을 필두로, 대륙 전역에 어긋나서는 안 되는 규칙들을 꼼꼼히 전파하며 마무리했으나 종교만큼은 함부로 건들지 않았다. 그 또한 어린 시절부터 성당에 몸담고 종교의 규율 아래 움직였던 성기사였기에 종교 자체의 본질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는 아르테노에게 이렇게 전언했다.

“교황의 손길 없이는 이 대륙을 온전히 다스릴 수 없습니다.”


아르테노는 그 말이 단순한 칭찬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함께해야만 한다는 책임의 선언이자, 옛 질서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닌 통제되지 않은 질서에 대한 질책이었다. 그렇게 칼레온을 지켜보고, 전언을 들은 것을 계기로 아르테노는 소명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칼레온 황제가 세속의 질서를 세웠듯이 하느님의 종은 하느님의 질서를 세워보겠소"


그날 밤, 그는 교황청의 제단 앞에 홀로 서 있었다. 즉위식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검게 탄 성경의 조각과 피가 스민 제복을 움켜쥔 채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황제의 규율이 세상을 정리했다면, 신의 규율은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교황청의 규율을 바로잡음의 시작이 되었다. 아르테노는 곧바로 모든 수도사를 불러 모은 뒤 교황청의 회당을 닫았다. 모두가 기도와 금식을 하게 되었고 교황청 고위직들의 끝없는 논쟁은 공개적으로 벌어졌다. 아르테노는 평소라면 양보했을 사항들을 마치 칼레온이 된 듯 굳건히 다잡아갔다. 그 결과, 하느님을 앞세워 세워진 새로운 규율이 하나씩 빠르게 제정되었다.


제1규율 – 욕망의 절제

결혼 전의 성관계 금지.

출산 목적 외의 성관계 금지.

배우자가 아닌 자와 성관계 금지.

육체의 쾌락을 신앙의 이름으로 미화하지 말 것.


제2규율 – 하느님의 이름의 상업화 금지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한 거래, 사기, 도박, 매매를 금한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팔거나, 면죄를 값으로 매기지 말 것.

헌금은 대가가 아닌 감사의 표시로만 허락된다.


제3규율 – 진실의 보존

거짓된 계시를 선포하거나, 허위 기적을 조작하지 말 것.

하느님의 뜻을 이용해 사람을 조종하거나 겁주지 말 것.

하느님의 이름으로 인간을 심판하지 말 것.


제4규율 – 절제된 향락

음주는 허용하되 탐닉은 금지.

기쁨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되, 방탕은 하느님의 모욕으로 삼는다.

노래와 춤은 허락되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을 잊지 말 것.


제5규율 – 신앙의 순수성

기도는 증명되지 않아도 존재한다.

행위가 아닌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며,

자선을 과시하지 말고, 공덕을 내세우지 말 것.


제6규율 – 종교의 경계

정식 교황청 소속이 아닌 자는 행위만으로 신앙을 인정받는다.

즉, 일반 신도는 의례, 기도, 축제 등을 통해 자유롭게 신앙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모든 규율을 엄격히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자유는 규율을 모욕할 권리가 아니다.

정식 교황청 소속인 자는 신앙의 의미와 내면을 교육받아야 하며, 규율은 의무이자 강제로 적용된다.

규율을 통해 내면을 단단히 세우는 자들이며, 거짓신앙과의 분열을 억제할 책임이 있다.

자유는 하느님의 축복이지만, 방종은 하느님의 침묵이다.


제7규율 – 수도자의 의무

수도자는 외부와의 거래, 세속적 권한 행사 금지.

수도자는 세속의 금전, 권력, 혈연으로부터 단절된다.

수도자는 내면의 청빈을 증명해야 하며, 이를 상징하기 위해 톤슈라를 갖춘다.

정수리를 드러내라. 머리 위의 빈자리는 신이 머무는 자리다.


제8규율 – 금지와 허용의 경계

예술, 음악, 글, 향은 하느님의 언어로 인정한다.

일정량 이상의 음주는 축제일에 한 해 허락된다.

사형집행인은 하느님의 뜻을 대리하지 않는다.

종교는 정치와 연합하지 않는다.


제9규율 – 교황청의 청렴

직위의 매매 금지.

성직 임명은 신앙과 규율의 숙련에 따라 결정된다.

신앙을 권력의 수단으로 삼은 자는 파문된다.


제10규율 – 인간의 책임

하느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

진심 없는 참회는 하느님의 침묵만을 부른다.

용서란 인간의 눈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질서가 확인될 때 완성된다.


규율이 공표된 날, 교황청의 성벽 위에는 새로운 문장이 새겨졌다.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선 내면의 통제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황궁에 전언을 보냈다.

'자유를 위해 규율을 잃지 말라. 규율을 위해 자유를 죽이지 말라.'


이후 대륙의 모든 수도자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톤슈라 스타일로 머리를 깎았다. 정수리를 비워두는 것은 맹세의 표시이자 감시의 눈이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신앙을 지키는 동시에 서로를 지켜보았다. 선동파에 의해 불안해진 신앙의 시작은 이렇게 감시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교황청에서의 회의부터 규율이 공표된 이후까지 가장 큰 논쟁은 바로 '누구에게 강제적 규율이 적용되는 가'였다. 여기에 교황 아르테노는 6규율을 다시금 명확히 말하며 선을 그었다.

“모든 이가 같은 굴레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닐지어다. 하느님의 이름을 따르는 자와 하느님의 집을 지키는 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교황청 내부 문서에 두 가지 개념을 남겼다.

행위의 신앙은 하느님을 향한 행위와 의식이 신앙의 증명이다. 일반 종교인, 즉 교황청 소속이 아닌 신도들은 이 범주에 속한다. 그들은 모든 규율을 완벽히 따를 필요가 없으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기도와 봉사, 선행이 그 자체로 신앙의 완성이다. 이는 신의 자유 안에서 행하는 신앙의 몸짓이다.

의미의 신앙은 신앙의 의미와 질서를 지키는 자들의 길이다. 이는 수도자와 교황청 소속 사제, 즉 규율을 의무로 짊어진 자들에게 적용된다. 그들에게 자유는 책임이며, 하느님의 뜻은 해석이 아니라 수행이다.

아르테노는 여기서 수도자들에게만 추가적으로 전달했다.

“수도자는 하느님을 행위로 찾지 않을지어다. 우리는 신앙의 의미로써 하느님을 섬기며, 하느님을 지키는 자이다.”


이 구분은 칼레온이 세운 황궁의 질서와도 닮았다. 칼레온이 귀족과 백성, 병사와 서기에게 다른 무게의 규율을 부여했듯이 아르테노 또한 하느님의 집 안에서 계층에 맞는 규율을 세웠다. 황제는 세속의 균형을 위해 규율을 분리했고, 교황은 신앙의 균형을 위해 규율을 분리했다. 둘이 세운 규율의 방향성은 달랐지만 목적은 같았다. 바로 혼탁해진 자유를 정돈된 책임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 구분이 공표되자 교황청 내부에서도 놀라움이 일었다. 많은 수도사들은 처음으로 자신이 행위가 아닌 의미의 신앙을 맡았다는 사실에 떨림을 느꼈다. 그들의 머리에 새겨진 톤슈라는 더 이상 단순한 삭발식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책임의 표식으로 굳어졌다. 교황청은 이를 대륙 전체의 수도원으로 전파하며 말했다.

“황제가 세운 규율은 세상을 정리했다. 그러나 신의 규율은 인간의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

“규율이 없는 자유는 죄이고, 자유가 없는 규율은 폭력이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둘을 나누되, 하느님의 뜻으로 다시 하나로 묶을지어다.”


아르테노는 교황청에서 전파한 것을 완벽한 하느님의 뜻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인간이 타락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라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교황이라는 무게에는 '나'만이 신앙심이 가지고,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모두가 신앙심, 믿음을 견고히 하게 도와야 함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게 규율과 함께 모든 것이 갈무리될 무렵 스스로의 소명을 다한 그는 제단 앞에 홀로 서서 속삭였다.

“종교의 질서는 인간의 죄보다 먼저 와야 한다. 자유 앞에서 인간의 죄는 선택하기 나름이 되나 규율 앞에서 인간의 죄는 결정되어 있다. 자유와 규율에 답은 없으나 답을 정해놓지 않으면 언제고 길을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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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카드 - 내면의 통제 / 진정한 용기 / 균형의 회복

아르테노는 개인으로는 강인했으나 리더로서는 강인하지 않았다.

자신의 내면은 잘 다스렸으나 사람들의 내면은 다스리지 못했다.

하느님의 이름을 대변하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가 돼버렸다.

결국 사람들의 죄도, 신앙심도 하느님께 떠넘긴 것이 되어버렸다.

스스로를 위해, 교황청을 위해 무언가 하는 교황의 자리일지라도

무언가의 방향성에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살기 좋을 때, 평화로울 때는 무언가의 행위만으로 납득을 할 수 있었으나

평화가 무너져 내리면 무언가의 행위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가려져있던 것을 들춰냈을 때 행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되었으며

이는 일반 신도들, 수도자들 뿐만 아닌 교황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의미를 잃은 행위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일 뿐이었다.

아르테노는 다행히도 촛불이 꺼지기 직전 칼레온이라는 은덕을 만났다.

덕분에 행위를 통한 신앙이 아닌, 의미를 가진 신앙의 규율을 세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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