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소유
사랑의 본질에서 말했듯이 사랑의 본질은 특별함이다. 그래서 사랑을 왜 하는가를 묻는다면 사랑은 특별함을 느끼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특별함을 느끼는 주체는 '나'이기에 사랑은 '내'가 특별함을 느끼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 이와 연관된 본능을 중점으로 사랑을 보면 본질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잘못된 사랑, 틀린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사랑할 때 특별하게 여기는 것을 행하고 특별함을 충족하고자 하는 '나'의 사랑이 있을 뿐이다.
문명의 시작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본질, 본능에 따른 행동은 사회에 규칙에 따라 제재하는 것과 수용하는 것으로 나눠졌다. 이에 따라 본질적인 사랑의 일부도 사회에서 제재하는 것에 해당하게 됐다. 여기서 본질적인 사랑에 대한 오해가 발생하는데 본질적인 사랑 중 사회에서 제재하는 일부의 사랑을 본질적인 사랑의 전부라고 일반화하는 오류가 통용되면서 본능에 가까운 본질적인 사랑은 암묵적으로 '내가 특별함을 느끼기 위해 하는 사랑'이 아닌 '나만이 특별함을 느끼기 위한 사랑'이라고 정의되었고 본질적인 사랑은 잘못된 사랑, 틀린 사랑이라고 못 박히게 되었다.
본질적인 사랑 중 제재하는 일부의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 강요하는 사랑 등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랑,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을 해결하고자 사회는 본질적인 사랑의 일부를 제재하면서 본질적인 사랑이 잘못되었다는 오류와 함께 '나보다 상대를 특별하게 여기는 사랑'만이 제대로 된 사랑이라고 의미부여를 하고 사람들을 세뇌하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은 과학, 심리학등 사랑에 대한 연구로 사랑의 다양성이 넓어졌으나 오해로 일반화되어 있는 본질이 빠진 현대의 사랑은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사랑의 본질은 덮어두고 사회에서 수용하는 사랑만을 고민하게끔 만들어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난항을 만든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일반화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인 특별함, '내가 특별함을 느끼기 위해 하는 사랑'을 알아야 하며 사람마다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원하는 사랑은 달라지기에 '내가 특별함을 느끼기 위해 하는 사랑'이 '나보다 상대를 특별하게 여기는 사랑'이라면 그 또한 본질적인 사랑이다. 고로 본질적인 사랑을 제재하고 '나보다 상대를 특별하게 여기는 사랑'이 일반화된 것이 오류인 것이지 '나보다 상대를 특별하게 여기는 사랑'은 잘못됐거나 틀린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사랑의 시작은 '내가 특별함을 느끼기 위해 하는 사랑'에서 파생된다.
소유는 사랑의 특별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와 연관된 본능이다. 이 본능을 탐욕, 물욕, 지배욕으로 연결 지을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생존에 연결된 소유를 중점으로 본다. 그래서 사랑에서의 소유는 3요소에 해당하는 물질, 정신, 육체, 전부 다 포함되며 그다음 인간관계로 세분화된다. 인간관계 세분화는 물건, 생명, 인간에 대한 독립적인 개념으로 분리되는데 만약 이 세분화를 하지 않으면 소유에 대한 오류가 생긴다.
인간관계를 제외한 소유는 고양이, 강아지등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키우지는 못할 때 '나만 없어 고양이, 나만 없어 강아지'라고 말하듯이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으로 연결된다. 이는 소유자체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으로 비단 동물만이 아닌 부동산, 차, 명품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 이러한 소유의 특별함에 인간관계를 포함하면 사회, 타인의 소유에 해를 가하거나 인간관계와 생명 일부를 독립적인 개체로 구분 짓지 않고 물건처럼 소유하려는 것은 문제가 된다. 이렇게 기본적인 소유에서의 문제는 사회, 타인의 소유에 해를 가하는 것으로 자신의 소유가 아님에도 피해를 가하는 것이다. 이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처럼 어려울 것이 없는 소유의 개념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것이라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자신이 원해도 자신의 소유가 아니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말한다.
여기서 소유를 독립적인 생명으로 연결 지으면 소유에서의 생명에 대한 가치판단은 물건과 분리된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가치판단은 아직도 변하고 있는 중이라서 혼동하기가 쉽기에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는 소유에서 말하는 독립적인 물건과 독립적인 생명을 구분지어야 한다. 독립적인 물건은 소유하고 있을 때 사회,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대개가 어떻게 사용하던 상관이 없기 마련이나 독립적인 생명은 소유하고 있어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으로 인지해야 한다.
독립적인 생명을 소유하는 것의 예시로는 결혼이 있다. 결혼하는 것을 소유의 관점으로 보면 결혼은 부부가 되어 법적으로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이 법적으로 배우자를 소유할 수 없게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혼을 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법적인 소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당사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집안끼리 정략결혼을 하거나 강제결혼, 매매혼등이 가능한 이유로 결혼이 사랑이 아닌 소유의 개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을 시사한다. 그렇기에 혼수 또한 하나의 풍습, 선한 마음으로 행해지더라도 결혼비용 이외의 필요이상의 혼수는 매매혼처럼 소유를 하기 위해 지불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가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독립적인 생명의 가치판단을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권한의 의미가 될 수 있다.
소유의 관점으로 보면 결혼뿐 아니라 연애도 서로의 합의하에 서로를 소유한다는 의미이며 약속이기에 결혼, 연애의 단면에는 소유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물건과 생명에 대한 소유의 분리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결혼, 연애를 하게 되면 상대방을 독립적인 생명이 아닌 독립적인 물건으로 여기고서 필요이상으로 소유하려 할 것이다. 심지어 소유자체를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은 결혼, 연애 중이지 않은 대상 또한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생명을 물건처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이렇듯 독립적인 물건과 독립적인 생명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나'의 소유이기에 '나'의 의지대로 움직여야 하며 상대방과 자신을 동일시, 하나라고 여기게 된다.
비단 결혼, 연애가 아니더라도 인간관계에서 관계가 형성되는 데는 소유한 물질, 정신, 육체 혹은 시간을 주고받는다. 자신이 가진 소유의 일부를 넘겨주고 상대방의 일부를 소유함으로써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관계에서도 소유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혼, 연애와 같은 혼동이 발생하며 이 혼동을 하지 않기 위해선 독립적인 물건과 독립적인 생명에 대한 개념인 소유의 분리가 확실하게 있어야 한다.
사랑을, 사람을,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은 탐욕, 물욕, 지배욕을 제외하더라도 생존과 연결돼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독립적인 물건과 독립적인 생명을 구분 짓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특별함을 느끼기 위한 이유만으로는 소유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래서 독립적인 생명과의 인간관계에서는 자신이 원하더라도 언제나 상대방의 의사가 중요하다. 그리고 사랑의 소유에 있어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서로가 사랑하는 것의 분리가 명확해야 하며 물건처럼 소유를 통해 특별함을 느끼고 싶은 것을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과 서로가 사랑해서 동의하에 서로를 소유하고 싶은 것은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