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이참에 읽자' 북클럽, 독일 문학 시즌 2,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줄거리-스포 있음]
주인공 에리카는 어린 시절부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라는 어머니의 강한 압박에 시달리며 어머니의 대리 자아로 살아왔다. 그러나 그녀에겐 피아니스트가 될 정도의 재능은 부족했고, 연주자가 되는데 실패한 에리카는 현재 마을의 피아노 교습 선생님으로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여전히 에리카의 정신을 지배하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건강한 자아를 갖지 못한 에리카는 자해, 관음 등의 행위로 자신의 욕구를 은밀하게 분출한다. 그러던 중 에리카의 학생 중 한 명인 대학생 발터 클레머가 에리카에게 접근하고, 에리카는 어머니와 클레머 사이에서 전쟁과도 같은 관계의 권력 다툼을 벌인다. 에리카는 어머니와 클레머 그 누구에게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어머니의 품으로 다시 돌아간다.
에리카는 여러 쓰임새를 가진 물건이다. 남성의 성적 욕구를 풀어주어야 하는 여성, 어머니의 욕심을 채워줄 대리 자아. 그래서 책에는 에리카를 물건으로 바라보는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클레머는 에리카에 대해 '갖다, 사용하다, 권리를 취득하다'라는 단어를, 어머니는 '소유물, 육체, 재산, 사립동물원'과 같은 단어를 쓰면서 에리카를 자기 의지대로 다루려는 생각을 거침없이 보인다. 소설 전반적으로 물건, 물화, 동물원, 대상, 도구와 같이 에리카에 대해 우위를 점하는 표현들이 눈에 띄었고, 이들 중 높은 빈도로 등장하는 '물(物)'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되었다.
물건(物件)의 '물(物)'은 소와 칼, 다른 해석으로는 소와 말이 합쳐진 글자라고 한다. 인간이 소를 칼로 도축하거나, 농경을 하며 소와 말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단어일 것이다. '건(件)'은 인간과 소가 합쳐진 글자다. 농경사회의 중요한 재산이었던 소를 인간과 함께 그림으로써, 인간의 소유인 무언가를 뜻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단어일 것이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면 동물(動物)은 '움직이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동물의 정의에는 인간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물건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과 물건으로부터 구별짓는다. 스스로를 고등동물이라 칭하며 다른 동물 종과 구별하고,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부품화된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단어가 가진 원래 뜻과 다르게 우리는 '물(物)'을 부정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원래 물(物)은 단어 자체로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저 존재 자체를 나타낸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물(物)을 대면하는 관계 맺기 과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된다. 이 경계심은 관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한 긴장감이다. 하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이 경계심이 집단 대 집단의 문제가 되면, 이 경계심은 결국 다른 집단에게 가시적인 힘을 행사하려 하는 사회적인 권위 의식이 된다. 이 권위가 일으키는 다양한 충돌로 인해 우리는 권위가 작용하는 물(物)을 열등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인간은 동물이나 물건 뿐만 아니라, 자신을 제외한 모든 물(物)에 대해 경계심을 넘은 권위 의식을 갖게 된다.
에리카, 클레머, 그리고 에리카의 어머니는 각자가 겪은 환경으로 인해 뒤틀린 권위 의식을 갖게 된 사람들이다. 소설은 이 세 사람이 서로에게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려 엎치락뒤치락하는 싸움판이다. 에리카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강요된 존재로 살아오면서 억눌린 존재감을 뒤틀린 성적 권위를 행함으로써 분출하고, 클레머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를 가진 남성으로서 여성인 에리카에게 자신의 남성적 권위를 강요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확신이 가지는 않지만 자신이 성취하고자 했던 사회에서의 또는 가정에서의 존재를 자식을 통해 얻고자 부모로서의 권위를 강요한다.
세 등장인물 각각의 모습처럼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면, 반대로 타인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또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만들어가지 않으면 존재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에리카가 어머니의 족쇄를 풀지 못하고 클레머와의 사랑을 끊어버린 것처럼. 격정적인 묘사로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개인의 존재와 관계 맺기라는 근원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