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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07. 2023

실수와 결함

인생에 대해 잠깐 생각..

이것저것 참 할게 많아(핑계인가^^:;) 속도는 더디지만 몇 쪽씩 읽어가면서 꾸준히 독서의 끈은 놓고 있지 않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오랜만에 광화문에 나갔다가 내 호기심을 자극하여 구매한 책인데, 주역과 심리학을 엮은 책이다.

전공은 따로 있지만 심리학은 항상 내게 관심의 대상이어서 이런저런 관련 서적은 많이 읽은 편인 것 같은데, 그런 심리학과 주역이라니?

이게 정말 어울리는 내용인 건지 저자인 의학박사인 분은 어떻게 이걸 엮어서 풀어나가실 건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바람 불고 사람들은 여유로이 지나가고 모든 게 완벽했던 그날,

혼자 광화문에 오랜만에 저녁까지 남아, 예전 20대에 자주 즐겼던 시간으로 돌아온 듯 여유로이 보내면서

좋아하는 카페에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교보문고 앞 계단에서 한참 베토벤의 템페스트 3악장을 들으면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바람을 즐겼다..오른쪽은 즐겨가던 카페..

앞부분만 읽었는데도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주역에 대한 편견이 조금 사라진 것 같다고 해야 할지 새로운 발견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렇구나.. 내가 몰랐을 뿐 여러 분야에 이미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구나.. 몰랐네 정말.. 신기해.’


주말인 오늘, 다시 이 책을 들고..

그동안 그리지 못했던 그림도 조금 그려볼 마음으로 카페로 나왔다.

이어폰을 꽂고 책을 펼치고 라테를 딱 올려둔 테이블 앞에서 나는 무척 행복하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ㅎㅎ

지난번에 이어 읽으려다 보니,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극을 쓴 사무엘베케트의 인용구가 나와있다.

그 부분에서 멈췄다. 물아래 가라앉아있던 진흙들이, 조금의 움직임에 따라 소용돌이쳐 올라오듯이 마음속이 조금 복잡해져서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서 그 생각을 써보려고 다시 아이패드를 펼치고 이 글을 적고 있다..  


내가 저지른 실수들이 곧 나의 인생이다.
-사무엘 베케트


이 말이 어느 맥락에서 어떤 글에서 나온 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으면서 바라보고 있다.

내가.. 저지른 실수들이 내 인생의 일부이기도 하지. 그렇지. 실수 그 자체로 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파생되거나 연속해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이나 결과가 인생에서 큰 흐름이 되기도 하니까.

예전에 대학교에서 전공수업 중에 셰익스피어가 있었는데, 그중 일부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이 문장과 연결되어 떠오르는 말은.. 셰익스피어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결정적인 성격적 결함 flaw가 있고 그로 인하여 돌이키기 힘든 비극이 일어난다는 교수님의 말씀. 이건 물론 문학이고 그래서 어느 정도 극적인 요소가 가미되니까 극으로 치닫는 거겠지만.


모든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결함이 있다. 내가 모든 사람들의 삶을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결함 때문에 그렇게 극적으로 치달으며 비극으로 끝나는 삶이 많을까?

정확한 수치도 없고 모르겠지만, 막연하게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결함이 있어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나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유기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여러 답을 얻기도 하고 서로 영향을 받으며 보완해 나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깨달으며 발전해 나가고 꿈꾸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저지른 실수들이 곧 나의 인생이라는 말에 정말 동의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다. 나의 인생은 그보다는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하지.


인생에는 답이 없고,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이건 정말 아닌 길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예상치 못한 답을 찾기도 하는 게 인생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이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어 점점 누군가가 나에게 의견을 묻거나 조언을 부탁해도 쉽사리 말을 하지 못하겠다.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는 것이 나의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에게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걱정스럽고, 어떤 말을 해주더라도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겠기에 점점 그렇게 된다.


첫 번째 챕터는 주역 중 미제괘에 관련한 내용인데, 그것은 무엇이 되었건 완벽한 마무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끝없는 변화의 과정. 영원히 풀리지 않음. 그런 의미. 하지만 원래 그런 미완성과 변화의 가운데에서 뭔가가 새로운 게 움트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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