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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an 03. 2022

일상의 소중함

Our town

영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 어쩔 수 없이 필수과목이었던 영미희곡 수업을 신청했었다. 희곡이라는 장르는 생소한 데다가 10명 이하의 인원이 정원이어서 정말 내가 이 수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억지로 수강신청을 하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 수업은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나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소수의 인원이었기에 좀 더 깊이 있게 시대상황과 작가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보려고 노력했었고, 작품을 읽고 나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처음엔 어려웠지만 점점 재미있고 의미 있게 여겨졌었다.

 그 수업 덕분에 읽게 되었지만, 많은 여운을 남겼던 작품 중에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 Our Town'이 있다.  


우리 읍내라는 작품은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태어나고 자라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누군가는 죽는다.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고, 항상 존재하는 그런 시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상의 소중함에 대하여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유명한 라틴어 문구 Carpe diem.
영어로는 Seize the day.


현재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즐기라는 뜻이다.

라틴어를 쓰던 옛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감사해하고 즐기지 못하고 자꾸만 잊고 살았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때의 말이 지금에 이르러서도 마음에 와닿고 ‘아.. 그렇지. 그렇게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나 알지만 지키기 힘드니까 반복되는 말이 아닐까.


다시 우리 읍내로 돌아와 설명하자면, 3막으로 이루어진 이 희곡의 1부는 각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마을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2부에서는 그 아이들 중 조지와 에밀리가 서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내용이다. 연극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쉽게 연결시킬 수 있다.

그리고 3부... 에밀리는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되고, 무대감독(이미 1,2장에서 주례로 등장하기도 하고 해설가로 나오기도 하였다.)에게 부탁한다. 자신이 행복했던 12살 생일날 그 하루로 한 번만 다시 돌려보내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에밀리의 대사 중 일부를 발췌해서 읽어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쩜, 어렸을 때 그대로예요. 우리 집이에요. 저 하얀 울타리. 까맣게 잊었었는데, 예뻤었지.
안에들 계세요?(부드럽게) 그래요? 우유 배달 아저씨예요. 보안관 아저씨 하고요. 어, 저 아저씨, 돌아가셨는데.
엄마. 어쩜 저렇게 젊으실까? 몰랐어. (애를 쓰며) 엄마, 내 파란 머리 리본 어딨어요? 못 참겠어요. 저렇게 젊고 아름답던 분들이 그렇게 늙으시다니.
엄마, 제가 왔어요. 어른이 돼서요
엄마 잠깐 저 좀 보세요. 옛날처럼요. 벌써 14년이 흘렀어요. 전 죽었어요. 엄만 손주를 보셨고요. 전 조지 하고 결혼했어요. 윌리는 캠핑 갔다가 맹장이 터져서 죽었고요.
그때 얼마나 놀랫어요. 하지만 잠시 이렇게 다시 모였어요. 엄마 잠시 동안 행복한 거예요. 그러니 서로 좀 쳐다보기라도 해요. (엄마는 에밀리를 알아채지 목하고 그저 요리만 하고 있다.)

그만요.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어요. (울음이 터진다. 엄마와 윌리 사라진다.)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어요. 서로 쳐다볼 시간도 없어요. 난 몰랐어요. 모든 게 이렇게 지나가는데. 그걸 우린 모르고 있는 거예요. 날 데려다주세요. 산마루턱에 제 무덤으로요. 잠깐만요. 잠시면 돼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겠어요.

 (자신이 살던 동네를 바라보며) 안녕 세상이여… 우리 읍내… 학교… 우리 집… 안녕히 계세요 엄마 아빠… 째깍거리던 시계도 엄마가 가꾸던 해바라기도… 맛있는 음식과 아침에 침대 위에 놓인 다려놓은 원피스…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고… 모든 게 너무나 아름다워 그 참 가치를 아무도 모르고 있었어. (무대감독에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얼마나 깨달을 까요? 자신이 살고 있는 1분 1초를 말이에요.   

에밀리가 죽고 나서 무대감독에게 부탁해,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하루로 돌아갔고, 그리고 그 하루의 한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었는지를 나중에서야 깨닫는 장면이다. 하지만 막상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우리 모두 일상을 아끼고 매 순간을 즐겨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감사한 마음보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에 더 초점이 맞추어지거나, 불행한 일이 더 부각되고 마는 것은 이 감사하고 좋은 순간은 기본값처럼 영원할 거라는, 매일 반복될 수 있을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일까?


코로나 이전에는 마스크 없이 바깥을 다니고 사람들끼리 길거리에 모여 누군가의 연주를 구경하고 하는 사소한 일상들이 고맙다거나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것은 그냥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간 마스크를 끼고 지낸 후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마저도 당연한 일은 아니었다. 매우 행복하고 감사했던 일이었다.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자가면역질환 때문에 20대 초에 장기간 입원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 읽으라고 가져다준 책이었는데, 한참 아플 때는 읽을 염두도 못 내고 나중에 회복될 즈음에 읽었다. 이해인 수녀님이 쓴 책인데, 그 책 한 페이지에 내 눈길을 끄는 어떤 일본인의 시가 있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가물가물하지만, 먹지도 걷지도 못하고 몸져 누워있다가 죽었다고 읽었던것 같다. 실제인지 소설속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 모두 기뻐하지 않을까- 이무라 가즈키오

왜 모두 기뻐하지 않을까

당연하다는 사실들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

가고 싶은 곳을 자기 발로 가고

손을 뻗어 무엇이든 잡을 수 있다.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나온다.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아무도 당연한 사실들을 기뻐하지 않아

‘당연한 걸’하며 웃어버린다.

세끼를 먹는다.

밤이 되면 편히 잠들 수 있고 그래서 아침이 오고

바람을 실컷 들이마실 수 있고

웃다가 울다가 고함치다가 뛰어다니다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두가 당연한 일

그렇게 멋진 걸 아무도 기뻐할 줄 모른다.

고마움을 아는 이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뿐

왜 그렇지 당연한 일


입원해서 두 달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조금만 움직여도 배가 아파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랬더니 다리에 힘이 덜 들어가고 주저앉고 나서 다시 일어서거나, 계단을 올라가는 일 같은 게 어려워졌었다. 그래서 검사받으러 갈 때 휠체어를 탔었는데, 병원 1층에서 바깥이 추웠는지 코트에 목도리를 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고 난 검사실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감았었다. 바깥을 자유롭게 다니고, 하이힐을 신고, 코트를 입고 다니는 그들이 부러워서였다. 뭔가를 먹거나 마시는 것도 부럽고 아프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걸 당연하게 일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사하다거나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드물겠지. 나 또한 그것이 제한되고 하지 못하는 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그제야 안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던 나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루하루를 살면서 매일 반복되는 것들, 매일 만나는 사람들, 항상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감사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나를 당장 힘들게 하는 것들, 나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들에 더 포커스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끔 뒤돌아 생각해보면 무엇이든지 항상 영원히 있는 것들도 아니고, 당연한 것들도 아닌데 왜 자꾸 잊고 살게 되는지…


가끔이나마 이런 문학작품을 읽고, 이런 주제의 영화나 음악을 듣고, 3개월마다 들르는 병원의 응급실을 바라보며 내가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 그때 어떤 부러운 마음이 있었는지를 일깨워본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커피를 마시고 노래를 듣고 걸어 다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는 일도 감사한 일이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나를 둘러싼 일상 모두 감사한일이지. 그렇고말고…


새해도 되었으니, 매일 쓰는 감사일기를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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