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3> 상황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 당나리 때 관리로 쓸 인물을 고를 때, 네가지 조건이다. 순서대로 하면 인물이 괜찮은가. 말을 잘 할 줄 아는가, 글씨를 잘 쓰는가, 판단력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앞에 기준은 상대적으로 기준을 세울 수 있지만, 판단력 문제는 쉽지 않다. 판단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흔히 맞는 것이다. 친구랑 안양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금요일 오후 퇴근시간 내가 있는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안양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도 순간의 판단에 의존해야 한다. 선택은 수많은 가짓 수가 있다. 7분 정도 걸으면 있는 국회의사당에서 9호선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역에서 1호선 전철로 갈아탈 수 있다. 단 9호선 일반열차는 간격도 좀 길다. 아니면 기계회관 앞으로 가서 10번 버스나 영등포 10번 버스를 타고, 영등포역이나 대방역으로 가서 일반열차로 갈아탈 수 있다. 단 불금이라 차가 막혀 버스가 늦어질 수 있다. 이밖에도 택시를 이용하는 등 수많은 선택의 갈림에 서서 판단을 해야 한다. 별로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경우에 따라 도착에는 30분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만약 시간이 잘 맞게 전철역에 도착한다면 안양에서 급행 전철을 타면 30분이면 도착할 수도 있는 방면에 한시간 넘게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순간순간 판단을 하고, 결정한다. 그런데 이건 사소한 판단이고, 증권사에서 펀드매니저의 경우 수많은 자금을 놓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한때 월가의 5대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The Bear Stearns)는 111억 달러의 자산을 갖고, 4,000억 달러를 움직였지만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투자해 1년만에 해체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최고 책임자의 판단력 문제가 빚는 문제는 사례가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이런 판단들의 결과로 일어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래의 주머니로 생각하는 국민연금은 자금운용본부가 있어서 금년 4월을 기준으로 하면 833조원을 운용한다. 물론 이들은 한 바구니의 계란을 모두 담아놓지는 않지만 매년 7%이상의 수익을 목표로 운용하기 때문에 위험이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투자가 항상 성공일 수 만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자금이 손실나지 않겠지만, 상당 부분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금 운용자들의 판단력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럼 상황을 읽어서 결정하는 판단력은 어떻게 해야할까. 앞서 소개한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안양역 가는 것은 어떻게 결정할까. 사람마다 다르다. 우선 시스템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이동전화에 있는 지도 앱을 이용해 두지점을 찍고, 선택해 가장 짧은 시간을 제시하는 곳을 선택하는 하는 기계형이 있다. 하지만 앱도 하나는 아니다. 또 앱이 교통정체 상황을 감안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통상적인 상황만 고려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통상 앱을 이용해 가장 가까운 기계회관의 버스도착 정보를 확인한다. 출퇴근 시간에는 버스 간격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으므로 가능하면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만약 내가 필요한 두 대의 버스가 정류장 도착 후 5분 이상이라면 9호선 국회의사당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을 선택한다. 아니라면 보통은 버스를 탄다. 그렇게 결정되면 일단 마음을 내려놓는 게 좋다. 그 다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노량진역에서 수원 방향으로 가는 기차 시간을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 운나쁘게 급행을 간발에 차로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사람에게 있어 판단은 그 만큼 중요하다. 때문에 판단에 관한 수많은 조언들도 존재한다. <판단력>을 저술한 웨렌 베니스와 노엘 티시는 판단력과 리더십을 연결한다. 판단이야말로 리더십의 핵심으로 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리더의 판단은 준비와 결정, 실행 세단계로 이뤄진다고 보고 현명한 판단을 위해 리더는 자신과 사회적 인맥, 조직, 이해관계자에 대한 상황적 지식부터 충분히 확보하라고 정의한다.
이런 문제는 먼 문제가 아니다. 우리기업의 입장을 한번 살펴보자.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기업은 삼성, 현대차, LG, SK, 한화 등이었다. 그런데 지난 시간 동안 우리 기업 중에서 가만이 있었던 곳은 없다. 삼성은 이동전화에서 위축된 면이 있지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역할을 살리고 있다. 현대차는 글로벌 공급망을 갖추고, 자동차 시스템 분야와 수소차에 생명을 걸고 있다. LG는 낡을 분야라고 생각됐던 가전에서 최고급 브랜드로 다시 서면서 굳건한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SK는 통신을 기반으로 반도체로 힘의 일부를 나누고, 이노베이션을 통해 밧데리를 키운다. 한화는 태양광, 레저 등을 통해 세를 유지한다.
이런 결정은 기업 전체가 전략을 짰지만, 최고 책임자가 최종 결심을 한 것이다. 앞서 말한 <판단력>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리더로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현명한 결정이다. 불확실한 상황, 서로 충돌하는 요구, 여기에다 여러 경로로 압박이 가해지더라도 오로지 조직의 생존과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리더로서 조직의 가치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가령 LG는 적지 않은 공을 들인 이동전화 기기산업에서 손을 땠다. 많은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끌어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일단 삼성전자를 앞서서 그 분야에서 1위가 되기는 힘든데, 중국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자신의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보면서 내릴 수 밖에 없는 결정이기도 했다. 반면에 하이엔드 가전에는 오히려 공을 더 들였다.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기 위해 더 많은 공을 들였고, 세계 시장에서 1위를 하는 분야가 오히려 늘어나는 정도다. 거기에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올라가면서 그 동반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 개인에게 있어 판단력은 무엇일까. 나는 3가지 케이스를 바탕으로 어떤 판단 기준이 필요한지를 생각해 본다.
우선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앞서도 말했듯지만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판단할 때, 학력, 직업, 자격증 등 다양한 요소로 판단한다. 그래선지 통상 한국에서 장관급에 올라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명문대학 출신에, 고시를 합격하고, 사회에서 승승장구한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게 모두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임원을 살펴보면 이 원칙이 꼭 맞지는 않는다. 이 기업을 보면 지방 국립대 출신들의 상당수가 임원에서 훌륭한 활약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산업인력공단이 2018년 밝힌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 이후에 SKY대학 출신의 비율이 15.3%에서 10.5%로 4.8% 감소했고, 비수도권대 출신비율은 38.5%에서 43.2%로 4.7% 증가했다. 즉 일반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게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자기가 어디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일반적인 기준도 있지만 자신감에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연거푸 취업에 실패하고, 외국으로 눈을 돌려서 성공한 사례는 너무도 많다. 더욱이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올라가면서 과거보다 이럴 수 있는 가능성은 더 커졌다. 결국 한국이라는 위치에서 자신을 보고, 위축되기 보다는 세상을 부딪히면서 자신이 있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판단의 기준에 가치관을 두라는 것이다. 세상의 잣대는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보수가 옳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진보가 옳다고 한다. 미국 정치를 봐도 보수와 진보는 정치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오랜 대립의 구도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이 선택은 자신의 것이라기 보다는 가족이나 지역에서 주입된 것이 많다. 그런데 태어난 곳으로 인해 정치적 성향까지 결정하라는 것은 옳은 것은 아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확한 잣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 어긋나면 스스로 기준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을 부패한다. 링컨도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안주하기 때문이다. 안주하기 위해서는 부정을 통한 축적이 필요하다. 그런 부정을 인정하면서 순수했던 사람이나 세력도 차츰 악과 타협하는 게 수많은 역사에서 증명했다. 강옹건 치세를 만든 청나라도 세계의 절대적인 부를 차지했지만, 이후 부패하고 무능해져서 외세에 유린되고 종이호랑이가 됐다.
조선왕조도 태조부터 태종대를 거쳐서 세종시대까지만 해도 강성했지만, 이후 차츰 무력화되면서 외세의 침략을 받고, 위기를 맞는다. 우리나라 왕조들의 명이 유독 길었지만, 전란으로 인해 백성들은 큰 피해를 봐야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은 과거와 같은 정권 연장은 없을지 모르지만 결국 부패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속에서 한 개인은 어떻게 살아갈까. 현대 정당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이 ‘원팀 정신’이다. 앞선 과정에서 피터지는 처절한 싸움을 한다 할지라도 다음에 가서는 한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는 충성심이다. 특히 한국처럼 1~3% 차이로 선거의 당락이 결정되는 민감한 정치 지형도를 가진 나라에서는 더더욱 중요한 정당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런 사례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민주당이다. 1997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가장 큰 기회를 맞았다. 대선 한달전 IMF 관리체제라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정부 여당에게는 무한책임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빨갱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진 김대중 후보는 자신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선택한 것이 김종필 총재와 같이 하는 DJP였다. 그런데 12월 18일 치러진 선거에서 김대중은 40.3%를 얻어, 38.7%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이겼다. 1.6%차였다. 다음 선거인 2002년 선거에서도 노무현 후보는 48.9%를 얻어, 46.6%인 이회창 후보에게 2.3%로 이겼다.
반면에 야당에서 한 정신이 훼손된 2007년 선거에서 정동영 후보는 26.1%를 얻어, 48.7%를 얻은 이명박 후보에게 참패했다. 정동영 후보가 도덕적으로 큰 결함이 없음에도 이런 참패를 한 것은 CEO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부도덕할지라도 잘 살게 해주지 않을까하는 국민들의 욕심이었다.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훗날 수사로 두사람은 모두 감옥에 갔다.
결국 정치가 여야의 싸움이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역사는 훗날이라도 분명히 심판대에 그 사람을 세운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살라미 전술에 당하지 말하는 것이다. 잘라서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에서 유래된 살라미 전술은 협상 테이블에서 한 번에 목표를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부분별로 세분하고 쟁점화하여 차례로 각각에 대한 대가를 받아가는 방식이다. 문제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합리화할 때, 이런 방식에 당한다는 것이다.
어떤 댐이든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간다. 수압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험이 감지되면 과감히 포기하는 게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판단할 때 신뢰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7년 엠브레인이라는 업체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설문조사한 것이 있다.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 여부(75.2%, 복수응답)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은 약속을 잘 지키는지(59%)와 스스로 법이나 규칙을 잘 지키는지(53.1%), 상황이 변해도 일관성이 있는지(52.8%)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언행일치하는지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상대를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이라는 말은 당연히 수긍이 간다. 무엇보다 두가지가 일치하지 않은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대상이라는 말에도 모두가 수긍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나 모임에는 모두가 한 곳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의 판단으로 다양한 갈등을 빚는 이들이 많다. 상대방 앞에서는 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그가 없을 때 험담을 하는 사람은 그 모임에서 가장 배척해야 할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의사결정권자에게는 아주 잘한다. 하지만 팀웍을 해치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결국 이 과정으로 인해 유능하고, 좋은 인성을 가진 이들이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이 판치는 조직은 갈등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해체되는 게 일상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책임자들은 이런 흐름을 잘 파악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