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1> 자신을 읽어보자
‘너 자신을 알라’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졌다는 유명한 말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계속 강조해, 이제 현존하는 지구인들 가운데 이 말을 안들어본 이가 없을 것이다. 동양에서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인데, 여기서 가장 방점이 찍힌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상대만 알아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상대가 100만 대군이 있어도, 우리가 200만 대군이라면 싸울 수 있고, 상대가 1만명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천명이라면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신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학에 나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도 어찌보면 같은 의미다.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는 말인데, 역시 처음 자신을 닦으라고 할 때, 이 말의 가치가 있다.
사실 델포이 신전에 이 경구가 쓰인 것은 ‘인간아! 깨달아라, 너는 신(神)이 아님을’을 의미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거치면서 이 뜻은 ‘신과 대면하여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회복하라’로 변화했다.
다시 돌아가자.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사실 자신을 제대로 알기도 힘들지만, 문제는 자신을 아는 것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객관적으로 그걸 증명하는 장치는 시험이다. 시험에 따라 세상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리해준다. 그 결과로 대학을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고, 평생을 그 레벨에 맞추어서 사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길이다.
그런데 더 뛰어난 자신은 학업성적에 있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시험으로 평가받아 규정되는 삶은 한 사람의 능력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그런 시험들이 한 사람의 발전 능력을 어느 틀에 갖추어 더 발전시키지 못하게 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다. 개인적으로 2년전인 2019년 여름에 골프를 시작했다. 당시 한 기업의 투자유치 담당 임원으로 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골프를 배워두면 좋은 상황이었다. 매형에게서 받은 몇 개의 클럽으로 집 근처 골프연습장에서 연습을 했다. 보름 정도 주말을 이용해 연습을 하고, 회사가 소유한 해남 파인비치골프링크에서 첫 필드 라운딩을 했다. 소위 머리를 올린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골프가 어렵지 않았다. 팔 힘이 있어서 드라이버도 제법 많이 나가고, 아이언도 나쁘지 않았다. 110대에서 마쳤는데, 공치사이겠지만 캐디도 첫 라운딩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얼마간 나는 농담 삼아서 “내가 빨리 골프를 배웠으면 영광의 최경주도 될 수 있었는데, 아깝다”라는 농담을 했다.
물론 이것은 가정일 뿐이다. 하지만 학교에 양궁부가 있는 학교에서나 선발했을 우리 양궁 국가대표는 세계를 제패한다. 아마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열었다면 더 뛰어난 아이들이 선발될 것이다. 골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든 아이들이 골프의 능력을 시험해 보지는 않는다. 부모가 골프를 하는 아이들 정도가 골프를 입문해보는 게 일반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정규 교육에서 그런 능력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은 별로 많지 않다. 우연히 얻어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험이라는 틀거리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것이 어린 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수시로 자신을 파악하고, 정리해서 능력을 인정받아야만 살 수 있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한가지 능력이 평생 직업을 만들어주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
따라서 바뀌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읽어야 한다.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것은 인구의 구조변화다. 통계청에 가면 우리 인구 구조를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2050년까지는 너무나 명확하게 나온다. 2010년 우리 인구 피라미드에서 가장 넒은 구간은 40세 전후다. 그런데 이 구조는 계속해서 위로 올라간다. 2020년에는 50세 전후다. 2030년에는 60세 전후, 2040년은 70세 전후, 2050년은 80세와 70대가 두터운 층을 이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필자가 속한 연령대가 바로 가장 많은 층을 차지하는 세대다. 이런 흐름에 관한 나는 전작 <신중년이 온다>를 통해 폭넓게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인구구조에 따라 사회가 바뀐다는 것이다. 또 그들의 변화에 따라 그 국가의 성패도 나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20년 정도 먼저 이 형태로 인구가 변화했던 일본을 보면, 우리의 미래도 알 수 있다. 인구의 가장 두터운 층이 일자리에서 벗어나면 그 사회는 급속히 경쟁력을 잃어간다. 일본이 한국에게 실질 구매력이나 국가경쟁력에서 밀린 것은 이런 인구 구조의 변화가 큰 원인이다.
결국 이런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해서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무원이나 교사 등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층은 상대적으로 낫겠지만, 우리 사회의 급격한 구조 변화에 따라 이 마저도 안심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 등은 그런 위험성을 충분히 예감할 수 있게 한 적이 있다.
그럼 자신의 역량을 어떻게 판단할까. 가장 중요한 관건은 스스로 ‘인생 이모작’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그러려면 미래 일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 시기는 일자리에서도 큰 변화가 있다. 두뇌로 할 수 있는 일은 인공지능이 할 수 있고, 육체 노동은 로봇이 대행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노동을 할 수 있는 청년층들이 급속히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결국 이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일은 인간을 돌보는 것이나 로봇으로 대체하기 힘든 일이다.
가령 고령화로 인해 나타나는 소소한 집 수리(전기, 배관 등)는 로봇이 대행할 수 없다. 결국 배관이나 전기 기술 등은 하찮은 기술로 보일 수 있지만, 중요한 미래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강의시 우리나라의 미래 산업으로 농업이나 임산업을 말한다. 한국에서 친환경으로 생산되는 제품은 상당한 부가가치를 지닌다. 한국이 주도하는 골프나 양궁의 힘은 이런 스포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인삼이나 은행이 탁월한 약성을 가지는 것처럼 한국산은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런 곳에서 상당히 소중한 일자리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은 70세, 80세가 되도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자신을 읽을 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의 능력은 물론이고 소통 능력도 갖추는 것이다. 소통 능력을 평하는 기준은 많지만, 나에게 믿을 만한 친구가 몇 명 있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친구란 급할 때, 큰 돈을 빌려주는 능력이나 신뢰도 중요하지만 외로울 때, 찾아가서 같이 허심탄회하게 만나서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얼마전 아내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서방, 진짜 친구로 말할 수 있는 사람 몇 명이나 돼”
“응 뭐 골고루 있지. 고등학교 친구 응영이, 미디어오늘서 만난 철민이도, 시골 친구들 가운데 천호랑, 희영이도, 사회에서 만난 웅재나 대민이도 그런 친구고. 이제는 소원하지만 복규도 그런 친구. 그리고 현용이랑 몇 명 더 있겠네.”
“친한 친구 다섯명만 있으면 실패한 인생 아니라는데, 서방은 다행이긴 하다.”
스스로 정말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자. 사실 현대 사회가 진짜 친구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바쁜 일상과 이익을 중시하는 문화로 인해 진짜 친구가 만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령화 시대 자신을 위로해줄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선 정말 친한 친구라면 적당한 시골을 선택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다른 직군을 가진 친구 몇 명이 한 공동체를 꾸릴 수 있다면 그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사실 귀농귀촌을 하는 이들이 가장 힘든 것은 한 지역의 커뮤니티에 합류되기가 상당히 힘들어서다. 그런데 자기 주변에 3~4명만 있다면 굳이 지역 커뮤니티와 무관하게 독자적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주변과 자연스럽게 연합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고향 마을만 해도, 노인들은 돈을 쓸 필요가 없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식사나 건강관리, 레크레이션까지 챙겨주는 게 요즘 농촌이다. 거기에 요즘은 100원 택시 같은 사업들이 있어서 승용차가 없어도 큰 불편이 없이 살 수 있다. 또 믿을 만한 친구들이라면 차 한 대로도 공유할 수 있어서 과도하게 돈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내 노년의 꿈은 고향 마을에 낙향하는 형제들과 친구들이 같이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마을이 중간에는 다양한 책을 보고, 글을 쓸 수 있는 공동도서관을 만들고 싶다. 이곳에서는 고전 공부는 물론이고 고향의 문화나 여행에 관한 의견을 정리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이곳에서 다음 떠날 여행지를 선정하고 깊게 공부하는 것이다. 필자가 2004년 여행사를 만들고 처음 만든 상품이 ‘고미숙과 떠나는 열하기행’이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작가와 함께, 베이징, 칭동링(청동릉), 청더(승덕, 옛 열하), 울란보퉁 초원을 5일간 여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고미숙 작가가 차안이나 호텔 강의실에서 열하일기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나도 버스 안에서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여행이 됐다. 이런 방식으로 삼국지 등 고전이나 중국 역사에 관한 무한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필자는 여행사를 경영한 경험도 있고, 중국을 안내할 수 있는 가이드 능력도 있고, 중국어도 충분히 구사하고, 중국에 갔을 때 연결할 수 있는 수많은 루트도 있다.
물론 이런 능력도 사드나 코로나로 인해 중국 가는 길 자체가 막히니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도 깨닫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분명히 쓸모가 있는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 스스로에게 돌아가서 물어보자. 난 인생 이모작을 위해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진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몇이나 되는가. 인생 후반을 살기 위한 재정 능력이 있는가도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그 질문 앞에서 자신이 있을 때만 안심하고, 자신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