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4>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전략. 많이 쓰는 말은 아니다. 게임 매니아들은 쓰는지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전술은 작은 계획이라면 전략은 큰 개념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복잡한 개념이다.
우선 두산백과에는 전략(strategy, 戰略)이 그리스어 strategia(將帥術)에서 왔다고 한다. 뜻은 전쟁에서 적을 속이는 술책이라는 뜻이라 한다. 하지만 차츰 개념이 확장됐고, 군사적인 개념을 넘어 더 확장적으로 쓰인다고 한다. 실제로 투자유치 전략, 마케팅 전략, 국가전략까지 상당히 넓게 쓰인다.
그럼 어떤 일을 하고 판단할 때, 전략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또 전략적 사고는 얼마나 가능하고, 어떤 의미를 가질까. 개인적으로 공직에 일할 때 그 생각을 많이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생각하는 전략과 전략적 사고로 가는 길을 살펴보자.
2010년 11월에 나는 첫 공직을 시작했다.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은 우리나라 경제자유구역 중 하나고, 내 소속은 전북도청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중국 투자유치와 교류였다. 전임가급은 4급 상당이었지만, 필요하면 통역까지 하는 실무자였다. 당시 사무실은 전북도청의 꼭대기 층인 18층이었다. 부끄럽게 면접을 볼 때까지도 새만금사업 현장을 가보지 못했다. 그래도 새만금 사업에 대해 공부를 했으니, 큰 무리없이 면접을 봤다.
임용되고 현장을 갔다. 도청에서 차로 50분 정도면 닿는 거리다. 말이 투자유치지 정확히 하면 세일즈맨이 된 것이다. 그리고 첫 방문을 통해 내가 팔 물건을 봤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33.9Km를 차로 횡단하면서 나는 두가지 기분이 들었다. 하나는 와 우리 물건 크다는 것과 하나는 ‘*됐다’였다. 내가 봉이 김선달도 아닌데, 이 바다에 투자자를 끌어들여온다는 것인가라는 자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시에도 이미 일본 소재기업 도레이와 벨기에 화학업체 솔베이는 투자협약을 한 상황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기업이었다. 향후 10년 후에나 완공될 곳에 투자하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그럴 때 나는 생각했다. 이 일을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되겠구나. 진짜로 전략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냥 투자유치 한다고 코트라 따라다니면서 중국에서 투자유치 설명회에 참석하면 가장 단순한 범위에서 내 일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실무직 공무원들이 그렇게 일한다. 물론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것보다는 가만히 두는 게 피부에게는 좋다. 하지만 국가적인 프로젝트였고, 투자유치 시점을 조금이라도 당겨야만 지역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나는 온갖 상상을 시작했다.
그럼 투자유치를 하는데 있어 어떤 것이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것일까. 우선 가장 간단한 범위에서 내 일은 이 일을 전문으로 하는 코트라와 같이 중국 등지에서 투자유치 활동을 하는 것이다. 투자유치 행사는 국가적인 단위, 산업통상자원부 단위, 몇 개 경제자유구역청 연합, 단독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 행사에 가면 준비된 자기 구역에 대한 영상물을 보여주고, IR자료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관심기업에게 상담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상대방이 우리 제품에 호감을 가질 것이냐 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기업의 입장에서는 더 의문이었다. 서해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중국 해안도시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내륙도시들도 모두 투자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기업을 한국으로 투자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제주도의 경우 땅을 살 수 있다는 매력과 좋은 이미지로 인해 투자가 많았다. 그것도 오랜 과정 스토리텔링을 해온 덕분이었다. 상대적으로 새만금은 인지도도 낮고, 그런 스토리텔링도 없었다. 특히 산업은 더 먼 문제였다. 중국은 투자유치를 할 때 모든 인프라는 물론이고, 선진기술기업이라면 공장, 심지어는 중국 국가조달시스템에 등록해 판로를 열어주겠다는 곳이 상당수다. 반면에 새만금은 와서 땅을 조성하는 개발사업을 하거나, 수년 후 조성되는 산업단지에 공장을 지으라는 방법이었다. 상대적으로 얼마되지 않아 새만금경제청에서 빠지는 군장산단도 토지가는 차이가 나지도 않는데, 이미 조성된 상태였다. 투자유치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풀어갈까 하는 것이었다. 전략적 사고에서 필요한 자세는 3가지다. 우선 '열린 사고'인데 유연성과 관성타파가 그 요소다. 두 번째는 ‘논리적 사고’인데 체계화, 정보습득, 통찰력, 타이밍이 구성요소다. 세 번째 ‘비판적 사고’는 역발상과 의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전략적 사고의 핵심이다.
내가 생각하는 새만금을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기존에 코트라에 의존해 투자유치하는 관성을 타파해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자를 찾고, 접근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타깃인 중국인들에게 이 사업을 체계적으로 전달할 논리를 만들고, 적절하게 홍보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팔지말고 사게하라’는 마케팅의 역발상을 생각했다.
코트라는 투자유치에 있어서 상당한 노하우와 국제적인 조직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관인 것을 맞다. 하지만 일들이 많고, 중국의 경우 갈수록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이 축소되면서 투자를 결정한 층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필자는 코트라는 물론이고 좀 더 우리 대상에 근접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방식을 선택했다. 필자가 참여하는 중국자본시장연구회나 중국 내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찾았다.
새만금에서 일하면서 가장 아쉬운 게 중국 사람들이 새만금에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가 드물었다는 것이다. 나는 중국인들에게 ‘배를 빌려 대양으로 나간다’(借船出海)는 논리를 만들었다. 중국은 미국의 무역압박 속에서 자국산 제품을 세계로 나가는데, 날로 어려움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중국 기업이 새만금에서 일정 부분을 만들면 ‘MADE IN KOREA’로 해외시장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미중 무역 갈등이 높지 않은 때였는데, 이 방식은 지금에야 이해되어 중국 기업들을 유치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전략을 한국에서 홍보하지 않고, 중국 인민일보에 소개하는 작업도 했다. 인민일보는 중국에서 우리 중앙지 절반을 합친 만큼 권위를 가진 만큼, 중국인들에게 우리 프로젝트를 소개할 때 무엇보다 유용했다. 또 중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정부 싱크탱큰인 중국사회과학원에는 ‘중국 자본이 새만금에 투자할 가치 분석’에 관한 용역을 의뢰했다. 또 고대부터 당대까지 새만금과 중국의 인연을 정리해 직접 시나리오를 써 ‘새만금 이야기 여행’이라는 80여 페이지의 만화를 만들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어본도 만들어 중국인들이 새만금을 더 친근하게 이해하도록 했다. 이 이야기에는 진사황이 불로초를 가져오라 지시해 한반도를 찾은 서복, 중국에서 지장보살의 화산이 된 김교악, 최치원, 중국에서 한반도에 관해 가장 자세한 저술인 고려도경, 최무선, 이순신 등의 인물이 담겨져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팔지말고 사게하라’는 마케팅의 금과옥조를 어떻게 새만금에 적용하는가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였다. 전북도청에 있던 새만금경제청은 내가 일한지 1년 후인 2011년 여름에 현장인 군산으로 이사했다. 방조제에서 군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경제청에서 나는 한가지를 알았다. 경제청은 인근 군산공항과 5.5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런데 군산공항에서 전투기가 뜨고 내리면 회의를 하기 힘들 만큼 소음에 시달렸다. 이런 곳에 무엇을 만든다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경제청 건물과 공항 사이는 당장 계획에도 포함되지 않은 바다와 같은 상황이었다. 나는 그곳에 태양광 발전사업과 관련 제조 기업을 유치한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관심이 있는 중국기업이 있어서 작업을 했다. 투자협약은 내가 있던 2015년에 했다. 곧바로 발전 시설 투자는 2016년 4월에 새만금 구역 안에 첫 태양광 발전소가 준공했다.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새만금 태양광 발전을 희망했다. 지금은 일정 규모의 투자를 하면 태양광이나 풍력을 주는 방식으로 변했다. 우리가 팔려할 필요가 없이 사기 위해 새만금을 찾는 이들이 생긴 것이다. 새만금 태양광 산업의 규모는 7조원 규모가 됐고, 신재생에너지는 새만금 지역의 주요한 상징으로 작용했다. 내가 처음 유치를 위해 뛰었을 때, 옹호해주는 것은 기획재정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도나 시는 물론이고 시민단체들의 반대도 많았다. 나는 그들과 통화를 통해 설득했다. 시민단체 관계자와 통화를 기억해본다.
“새만금 방조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싸움이 있는지 모르시죠”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군산사시니, 저희 청과 공항 사이에 소음을 아시죠.”
“그래도 그런 땅에 어떻게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합니까.”
“영구히 하자는 게 아닙니다. 15년 후에 발전소가 나가면 땅도 더 다져지고, 더 가치있게 팔자는 겁니다. 그 기간에 발전에서 나온 돈으로 새만금 인프라 등도 더 작업할 수 있습니다.”
“발전 사업하면 환경 오염 안됩니까. 미군에서도 반대하는 걸로 압니다.”
“환경오염은 저희도 조사했습니다. 미군도 하와이 태평양 사령부까지 가서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곳에 더 가치있는 사업을 해야 합니다.”
“너무 시끄러워 농사를 짓기에도 불가능한 땅에서 장기간 안정적인 수익이 나올 수 있습니다. 대승적으로 봐주시죠”
몇 개의 고비를 넘고, 새만금 태양광사업은 주요한 프로젝트가 됐고, 이런 환경을 활용해 그린뉴딜의 새로운 발상지가 됐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연 4,679GWh 전력을 생산하는데, 약 170만 가구가 사용 가능한 규모다.
만약 새만금이 그 순간 태양광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해내지 못했다면 새만금은 지금도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도로, 철도 등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곳에 사용하는 비용은 또 다시 개발기초비용이 되기 때문에 어려움은 가속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새만금 태양광을 통해 얻은 수익은 인프라 개발 등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비전을 만들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