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중년 생존 키워드
필자가 자존감(自尊感)이란 말을 안 게 된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가 다닐 때였다. 당시 아이는 자존감이 상당히 높다고 학교의 검사에서 나왔다. 우리 부부는 자존감이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곱 살 때 갑자기 한국으로 건너와 적응해야 했고, 적극적인 성격도 아니어서 혹시 자아 존중감(自我尊重感)이 없으면 어떻까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결과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이 자존감이라는 말은 나에게도 되돌아온다. 뉴스를 듣다 보면 끊임없이 동반자살의 소식이 들린다. 그 연령도 다양하다. 신중년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2018년 연령대별 자살률은 50대가 인구 10만 명당 33.4명으로 60대(32.9명) 보다 높다. 물론 70대(48.9명), 80대(69.8명)보다는 낮지만 신중년들의 자살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주요 자살 동기는 연령대에 따라 다르다. 10~30세는 정신적 어려움, 31~60세는 경제적 어려움, 61세 이상은 육체적 어려움이다.
하지만 신중년이라 해서 정신적 어려움이 없을 리 없다. 다만 몸이 건강할 때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신적 어려움을 잊거나 상쇄할 수 있었지만,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면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서 버틸 정신력이 필요한데, 이 힘의 근원을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지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비교해서 자신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막아내는 능력이기도 하다. 아이 교육에서 가장 금기가 되는 것도 “엄마 친구 아들은 어떻다”로 시작하는 엄친아 이야기다. 미국 26대 대통령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는 “비교는 기쁨을 훔치는 도둑이다.”라는 말을 했다. 실제로 사람은 태어날 때마다 수없는 차이를 갖고 있다. 어떤 이는 두뇌가 우수할 수 있고, 어떤 이는 육체적으로 우수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두뇌와 육체가 모두 우수할 수 있고, 어떤 이는 두 가지 모두가 부족할 수 있다. 그런 차이를 비교하다 보면 그는 평생 타인에게 굴복하는 느낌으로 살 수 있다. 이 시대 멘토 역할을 하는 법륜스님은 "굳이 타인의 장점을 찾아내서 비교하는 것은 자기를 미워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존재이며 지금 여기 살아있는 것만 해도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입니다"라고 '지금 이대로 좋다'라는 글에서 말한다.
실제로 법륜스님이 하는 즉문즉설의 질문자 가운데 상당수가 타인과 비교해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할 수 있다. 그럼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대신에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선은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사람은 시간과 함께 성장한다. 몸은 쇄약 해질 수 있지만 지혜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김형석이나 소노 아야코 등 많은 작가들은 나이가 듦으로써 오는 기쁨을 예찬한다. 힘들지라도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한, 반드시 자신의 발전에 뿌듯해할 것이다. 성장하는 자신을 동기부여로 삼아서 살아가는 여유가 필요하다.
타인과 비교될 수 있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피할 필요가 있다. 필자도 페이스북 등 SNS를 한다. 하지만 힘들고, 내가 가진 약점을 올리기보다는 잘한 일, 풍요로운 일을 올리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내가 아주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자기 자랑의 결정판이다. 그런 것들을 보는 것은 자신과 그 사람을 비교할 수 있는데, 이런 느낌이 든다면 피하는 게 좋다. 필자의 경우 대외적인 일을 많이 하는 만큼 내 일과 접점이 있는 이들을 링크하기 때문에 SNS를 주로 사용한다. 내 삶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200% 자랑하고, 힘든 부분은 절대 감추는 게 필자의 SNS 이용방식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수면 위에서 우아하게 있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물아래에서 수없이 갈퀴질을 하는 백조의 모습을 사람들도 가질 수밖에 없다. SNS를 통해 보는 상대는 절대 제대로 된 모습이 아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그런 것들을 보고,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면 그냥 애플리케이션을 지워 버리는 게 현명하다.
세 번째는 비교 대신에 배우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신중년은 일단 일모작을 끝내거나 끝내 가는 이들이다. 일모작을 통해 풍족한 노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에 맞게 새로운 일을 배울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봉사하는 이들을 하면 마음에 더 평화롭지 않을까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외교관을 해왔던 한 선배는 수년 전 만났을 때, 사회복지사 공부를 한다고 했고, 사회복지사를 취득했다. 관련해서 공부를 마치고는 관련 법에 관한 책도 써서, 현장과 교육을 같이하고 있다. 만약 스스로 노후 준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이모작을 위해서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 이럴 때 가장 힘든 이들이 사무직 종사자들이다. 최근에는 서울시를 비롯해 많은 지자체들이 신중년을 위한 다양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지자체들의 이런 프로그램을 찾고, 전문가들에게 상담을 하다 보면 답을 찾아갈 수 있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나이가 들면 쇠약해지는 부분이 있다. 지금 당장의 열정으로 배운 일들이 육체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쓸모가 없어지면 헛 공부가 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바리스타나 목공 등 다양한 공부를 한다. 이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취업할 경우 다양한 고용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에 잘 알아두면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자신의 소질이나 몸 상황을 잘 판단해야만 헛 공부를 피할 수 있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자존감을 챙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은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은 자존감을 향상하는 중요한 단계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며, 실수와 약점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강점과 장점을 인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긍정적인 자기 대화다. 내면에서 하는 대화에 주목해 보자. 부정적인 자기 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목표 설정과 도전이다. 자신에게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향해 노력하는 것은 자존감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 작은 목표부터 시작하여 성취감을 느끼고, 점차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 볼 필요가 있다. 네 번째는 자기 관리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자존감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운동, 영양가 있는 식사,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하는 등의 건강한 습관을 가져야 한다. 다섯 번째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자존감을 저하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스트레스 관리 기술을 배우고 일상적으로 실천해 보자. 명상, 요가, 호흡 운동, 취미 활동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여섯 번째는 긍정적인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자존감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결과로 형성된다. 자신을 지지해 주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건강하고 격려하는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필자는 <신중년이 온다>에서 한 대기업백화점 VIP팀장으로 일하다가, 명퇴한 지인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주변에서 돈 버는 일을 하자는 제안을 거절하고, 전기기사 자격증을 땄다. 화려한 라운지에서 일하다가 지하실에 있는 전기실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자존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한 지역 시장에서 도시재생을 관리하는 공모에 지원해 합격해 지금은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일이 더 낫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존감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을 수 있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고민은 필자에게도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