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라톤 Mar 11. 2024

거룩히 여김이 뭐야?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져보신 적 있으신가요? " 무슨 소리야? 하나님이 하나님이지" 라고 넘기실지도 모릅니다. 흥미롭게도 성경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능력을 이름으로 남겼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땅의 산에서 바칠 때 칼로 찌르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멈추라 하시고 덤불에 숫양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장면이 기억나실 것입니다.  그 내용이 담긴 창세기 22장 14절은 여호와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여호와라파 "치료하는 하나님"은 출애굽기 22장 26절에 등장합니다. 여호와닛시 -우리 곁에 계시는 분 여호와삼마-예배를 받으시기 합당한 분 여호와 샬롬-하나님의 참 평안과 안식, 여호와로이 - 목자 되신 하나님과 같이 성경은 다양한 하나님의 속성을 이름으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창세기 4장 25-26절입니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담의 큰 아들(가인)이 작은 아들(아벨)을 죽이고 도망자가 되어 떠돌이 신세가 되었습니다.가정이 풍비박산난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셋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으셔서 대를 잇게 하셨습니다. 셋은 에노스를 낳아 다음 세대로 아담의 씨앗이 이어질 수 있도록 문을 열었고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찬양을 올렸습니다.


무너진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을 주신 하나님께 아담은 삶의 고백을 드리며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동원해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찬양의 고백을 드릴 때 그 안에 가사들은 모두 하나님을 부르는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내가 만난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감격하는 외침인 것입니다.


주기도문 2번째 시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내가 만난 하나님이 그의 이름이다   


지문이 모두 다른 것처럼 인생도 모두 다릅니다. 인생 가운데 만난 하나님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 6가지 샬롬, 이레, 라파, 닛시, 삼마, 로이 이름은 단축키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공통점을 찾아낸 것입니다. 6가지로 한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은 80억 인구에게 모두 다르게 전달됩니다.


나라, 민족, 인종, 문화, 환경 등 사람은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더 많습니다. 가족 구성원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다르게 상황을 바라봅니다. 아빠의 시각, 엄마의 시각, 자녀들의 시각 모두 다릅니다. 각기 다른 시선임에도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사랑으로 하나로 품으십니다. 다른 인생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다른 상처와 아픔을 지니며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두 다른 방법으로 치료하시고 위로하시며 구원하셨습니다. 전 시간에 보았듯 온 땅을 모두 하늘로 품으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아버지…” 가장 나에게 필요하고 합당한 방법,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아픔을 치료하시며 참 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그분의 존재. 내가 가진 입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동원해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그 말, 그 노래, 그 고백이 바로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시간, 신이 우리의 아버지가 됩니다.

창세기 12장 6-8절입니다.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람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에서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아 삶의 고백을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고백이자 선포인 것입니다. 제게 하나님은 나를 존재하게 하는 분입니다. 젊은 나이에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삶의 이유가 제겐 없습니다. 그저 하나 하나님의 이름을 노래하고 말씀으로 그분을 만나며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걸어가는 것 외에 이젠 솔직히 삶의 의미를 못 찾겠습니다. 가장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시기이면서도 가장 기쁘고 복된 인생의 기간입니다. 이런 모순이 제 안에서 격돌합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세상의 이름이 격돌하는 것이죠. 존재의 격전지에서 우리는 여호와를 살아계심을 찾아내는 경험을 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이름이 나의 삶에 드러나게 되고 우린 그 이름을 예배하게 됩니다.


2. 거룩히 여김을


하나님의 이름이 삶에 드러날 때를 경험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보셨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순간 비로소 그 이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며 아름다우신지 발견합니다. 그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수밖에 없는 삶이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귀하십니까? 그 이름이 삶에 단 하나의 이름, 거룩한 이름이 되었습니까? 거룩이라는 단어는 카도쉬, 구별된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도움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일들을 경험하신 적 있으실 것입니다. 그때 “오 주님…” 이 감탄, 경외의 마음 이것이 하나님을 거룩하게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뱃속에 품고 똑같은 역사를 경험한 엘리사벳과의 만남으로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마리아의 노래, 누가복음 1장 46-50절입니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 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엘리사벳을 만나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죠. 처녀의 몸으로 임신했으니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파혼을 당할 수도 있는 길임에도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는 일에 자신을 초대하셨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 마리아의 입에서는 노래가 터져 나오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다고 높입니다.


거룩은 나의 삶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셔서 그의 능력으로 나를 들어 쓰실 때 터저나 오는 경외의 고백입니다. 눈물을 닦으시고 소망의 노래로 삶을 완전히 뒤집어버리시는 하나님 그 존재자체에 대한 감탄이며 생명의 근원 되시는 창조주를 만난 오침입니다.


사가랴의 노래도 한번 볼까요? 누가복음 1장 68-71절, 76절입니다.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 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 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박해 가운데서도 선지자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가랴는 그들을 거룩하다고 노래합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거부할 수 없는 구원을 경험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향한 외침. 그것이 거룩한 하나님입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며 기다렸던 그 아이가 선지자 중에서도 메시아 예수그리스도를 오심을 준비하는 자로 태어났다니 이것은 기적이자 거룩함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를 발견하는 순간 마리아와 사가랴의 노래처럼 그분을 거룩히 높이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삶에서 발견하는 천국,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되 인간의 힘으로 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일들이 내 삶에 펼쳐질 때 아르키메데스는 “유레카!!”를 외쳤듯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외치는 것입니다.


3.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나를 통해 받으신다.


온 땅을 감싸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나의 삶을 돌보고시고 이끄시며 일으키시니 어찌 그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예배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찬양받기 합당하신, 역사 가운데 모든 자신을 믿고 따르며 예배하는 이들을 완전하게 인도하신 분인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일은 결코 누군가에 의해서, “한번 해봐야지”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름답고 놀라우심을 경험한 사람들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방법 대로 자신의 삶을 인도하실 것을 압니다. 


신명기 8장 2-4절입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10가지 재양으로 이집트를 무너뜨리시고 구원하시고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며 그의 거룩하심을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화끈하신 하나님이 단번에 약속을 이루실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 위해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오직 하나님 까만 의지하는 삶을 가르치시는 광야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의 이름을 높여 예배하는 기쁨,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만 가능한 광야학교에서 철저하게 훈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만 거룩히 여기며 그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전에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움직이셔서 작은 나의 삶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치권력의 이해득실, 돈으로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힘, 먹고 먹히는 치열한 약육강식의 삶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입니다.


1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한 절 안에 구약성경 전체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증손자인 유다의 가문에서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그 배경은 무엇입니까?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인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세금징수를 목적으로 한 호적명령이었습니다. 제국권력의 핵심은 돈이죠. 돈과 권력의 강력한 첫 호령이 메시아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도록 이끈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말구유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세기부터의 약속의 성취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동일합니다. 정치인들의 이해득실, 시끄러운 세계의 힘과 돈의 힘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의 도구가 되어 우리를 부르신 곳으로 인도합니다. 말구유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며 그의 이름을 높이며 거룩하다 고백할 수 있습니다. 


맺음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감격의 순간은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때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경험하며 그의 이름을 거룩하다 고백하는 예배의 삶으로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15-18절입니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누 구이신이 아는 순간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믿음의 반석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말씀으로 세우시고 통치하시는 교회가 나의 삶에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에게 가장 거룩하고 소중합니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나의 보물입니까? 그의 사랑으로 나의 삶을 그의 뜻으로 인도하심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가 부르실 때에 그의 이름을 거룩히 부르며 달려갈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