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라는 용어의 여러 개념적 요소를 중심으로
세상 최초의 철학이자 최고(最古)의 철학이라고 불리어지는 신화는 스토리 텔링의 원형이자 무한자 세계와 유한자 인간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며 삶의 의미를 통찰했던 인간 정신의 발로이다. 신화적 인물은 과거에 매여있지 않으며 인간의 유한적 삶의 논리를 초월한다. 신화적 관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며 재생과 재창조로 이어지는 무한한 순환의 한 과정으로 인식된다. <라임라이트>와 <그린라이트>에 드러난 신화적 요소를 분석해 봄으로써 신화라는 용어의 여러 개념적 요소들을 파악해 볼 수 있다.
<라임라이트> - 신화화되는 인간상
신화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라임라이트>는 ‘채플린의 신화화’라고 분석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채플린은 신화화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자기 반영을 넘어 자기 신화화의 작업까지 수행한다. 이 과정은 채플린 자신을 현자적 면모를 지닌 새로운 세대의 구원자이자 상호시혜의 주체로, 나아가 ‘탄생의 재현’을 이끄는 신화적 인물로 의미화하며 실현된다. 유한성의 굴레를 벗어나 초월적인 영역으로 접어드는 내면적 여정, 죽음과 새로운 탄생이라는 신화적 순환 구조는 보편타당한 주제의식과 맞물리며 신화적 인물로서의 채플린을 형상화한다.
<그린나이트> - 내면의 여정
신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 <그린나이트>는 신화라는 용어가 내포하는 개념적 요소를 살펴보기에 용이한 텍스트이다. 영화의 SF적 요소, 어딘가 미스터리하고 괴기하며 어두운 분위기, 어드벤처 게임 형식을 연상케 하는 아이템(item)의 획득과 선택의 기로는 인물이 나아가고 있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여정을 그려냄과 동시에 그를 맞이할 일종의 보스인 절대자의 위상을 형상화한다. 인물의 여정은 외면적 요소를 지니긴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내면적인데, 이 험난한 여정을 통해 지극히 인간적이었던 인물은 유한한 세계에 대한 집착을 초월해내며 신화적 면모를 지닌 인물로 격상된다.
신화는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인간이 벌인 의식적/무의식적 투쟁의 산물이다. 즉 신화는 출생과 죽음이라는 시작과 끝을 지닌 유한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무한한 세계에 대응하여 어떤 의식과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에 대해 고찰한 인간 정신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 속에서 신화적 인물로 변모하는 자는 태생적으로 고결한 자질을 지닌 누군가가 아닌 성장하는 보통의 인간이다. 성장하는 인간의 내면적 여정을 그려내는 신화를 통해 인간은 유한과 무한을 통합하는 초월적, 일원론적 인식을 기획하고 죽음과 탄생의 무한한 순환을 상상하면서 유한한 인간의 삶에 무한한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