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아남기
10.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독일의 수영교육
독일의 넓은 호수 한 가운데에는 서커스하듯 통나무 위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돌리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보통 중학생 이상부터 대학생 정도가 그렇게 노는 편이지만, 호숫가 가장자리 쪽에서는 더 어린 아이들이 굵은 나뭇가지나 바위 위에서 다이빙하며 첨벙첨벙 잘도 뛰어 든다.
물 색깔은 에메랄드의 푸른빛이 아닌 진녹색, 진회색의 어두컴컴해서 속이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얼마나 깊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어떻게 독일 아이들은 저렇게 겁도 없이 물에 뛰어 들 수 있는 걸까? 부모도 없이 친구들끼리 와서 저리도 신나게 놀면서 수영도 잘 하는걸까? 궁금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아들은 7살, 가까운 수영장의 Anfänger(기초반)으로 접수를 했다.
수영강습을 신청 할 때는 아래의 몇 가지에 체크를 한다.
-아이가 물을 무서워합니까?
-아이가 무릎 높이의 물에서 놀아본 적이 있습니까?
-아이가 어깨 높이의 물에서 수영 할 수 있습니까?
-아이가 수영을 할 줄 압니까?
물을 무서워 하지는 않는데, 팔튜브를 끼고는 수영할 수 있는데... 마땅한 해당사항이 없어서 물을 무서워하지는 않고, 수영은 못하는 걸로 체크했다. 준비물은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봤더니, 수영복과 큰 타올, 샤워용비누. 끝! 참 간단하다. 물안경은? 수영모는? 수영보조기구는? 간단해서 좋다만, 정말 이게 다 필요없는지 혹시 누군가 말했던 것 처럼 아이를 물속에 던지고 스스로 헤엄쳐 나오게 하는 방식인건 아닌지? 아직 언어로 충분히 자기표현이 완벽하지 않은데 어떡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수영 첫 시간, 부모는 탈의실까지만 같이 가주고 나가야 하고, 끝날 시간에 데리러 오라고 한다. 5살~8살 아이들이 10명 정도 된다. 끝나고 탈의실로 가보니, 아들은 이미 혼자서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수영강사는 “너 혼자서 샤워 할 수 있니?“ 의 질문도 없었다. 그냥 당연한 규칙과 순서를 알려주면 아이들은 그걸 그대로 실천한다. 내 아이는 혼자서 못하는데?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묻는 부모도 없다.
독일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10회의 수업 동안 강사는 아이들이 가진 각자 다른 능력에 따라 재수강을 해야 할지, 자격시험을 봐도 될지를 판단해서 알려준다. 마지막 시간, 10명 중 4명의 어린이가 주저하지 않고 물에 바로 점프하여 뛰어 들어서 25m를 쉼없이 헤엄치고, 어깨깊이의 물 속에서 링 주워오기를 해냈고, 결국 해마( Seepferchen) 자격을 획득했다. 나도 이렇게 감격스러운데, 아이는 얼마나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벅찰까?
해마 자격을 획득하지 못한 아이들의 부모들은 웃으며 말했다.
"전혀 서운하지 않아요. 아마 아이는 속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이에게 맞는 속도로 맞춰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 줘야 하는 게 맞고, 아이도 스스로 알고 자신의 속도대로 성장할 거라고 믿어요."
참 멋지다.
"왜 우리 아이는 시험을 못 보죠? 충분히 실력이 되는데요? 재수강하면 세 달을 또 기다려야 하잖아요? " 라고 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수영 강습 단계
독일 수영협회에서는 2세부터 물에 익숙해 지고, 4세부터 수영을 배우기 적합하다고 한다. 수영교육은 지역에 따라, 학교마다 다르게 운영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아래의 4단계 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각 단계별로 합격하면 작은 수료증과 수영복에 부착하는 배지를 받는다.
1. Seepferchen (해마) : 4세이상,점프해서 25m를 쉬지 않고 완주, 어깨높이의 물에 잠수해서 링1개가져오기
2. Seelöwen (바다사자) : 1~3.5세, 보조기구 착용, 가장자리에서 점프, 슬라이딩
3. Seerauber (해적) : 평영으로 100m 헤엄치기, 1m 수심에서 링꺼내기
4. Bronze (동) : 가장자리에서 점프하여 15분안에 200m 완주, 2m 깊이 잠수,1m 높이에서 다이빙하기, 옷을 입고 수영하고 밖으로 나오기
5. Silver (은): 25분안에 400m 완주, 2m 잠수, 3m 높이에서 다이빙하기, 인어다리 입고 수영
6. Gold (금) : 9세 이상, 24분안에 600m 완주, 2m 잠수하여 3개 링 찾기, 3m 높이 다이빙, 물에 빠진 사람을 구출해서 50m 이상 수영해서 나오기, 익사사고시 대처요령 등 구조에 대한 사항
그 다음으로는 스포츠 단계로 전문영법을 좀더 자세히, 강도를 세게 가르치고 연습한다.
이에 추가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특별한 자격이 한 가지 더 있다.
***DLRG (German Life Rescue Society) : 인명구조과정, 10세 이상, 수료시 ‘Junior Rescuer’배지 및 주니어 인명구조원으로 활동
학교의 수영수업
지역별로, 학교별로 조금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학교에서 수영수업은 초등학교 1~3학년부터 시작해서 중학교인 8~9학년까지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시작하고 끝내는 시기가 정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신체 능력에 따라 진행하고, 보통 한 학년에 한 단계씩은 마치도록 노력하고, 최종 목표는 인명구조에 대해 배우는 Gold단계까지로 하고 있다.
학교에서 수영수업을 한다고 해서 학교마다 수영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시립수영장이나 사설 수영장을 이용한다. 그리고, 담임교사나 체육교사는 모두 수영지도 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영강사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담임 선생님이 수영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 때 혹시 모를 인명사고시 동행한 선생님이 구조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하다고 본다.
기존 수영장을 이용하니 학교수업만을 위한 수영장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특별 예산이 필요 없고, 수영수업을 진행할 강사가 따로 필요없으니 추가 인력 예산이 필요없고, 동행한 담임선생님이 인명구조 자격이 있으니 수업시에 사고에 대해 걱정할 필요없다. 그러니, 간단하게 체육시간에 수영수업을 배치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일반 수영장에 가면 성인들이 4m 수심에서 물 위로 머리만 내밀고 천천히 옆 사람과 대화하면서 수영하고 있다. 나는 아무리 봐도 이건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인지, 물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
어떻게 이렇게 천천히? 거기다 옆사람과 이야기까지? 폐가 3개씩 달린건가?
줄 나누어 수준별로 화려한 영법을 선보이며 누가누가 빨리 헤엄치나, 모두가 수영선수처럼 보이는 우리나라의 수영장의 흔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낯설지만 편안하고 여유로워보였다.
우리나라의 수영장과 다른 점이 뭘까?
어린이 강습의 수심은 우리나라는 0.8m~1.15m, 독일은 1.3m~4m이고, 수온은 우리나라는 32도, 독일은 26~28도이다. 안전과 결과를 강조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위험과 불편에서 찾아가는 노력의 과정을 강조하는 독일의 문화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영을 가르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함이라는 것은 동일하다. 만약 물에 빠졌을 경우에 대비하여 자기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그런데, 물안경과 머리카락을 쏙 넣는 모자 없이는 수영을 못 하는 아이들로 훈련시켜 놓고 물에 빠졌을 때 물 속에서 눈을 뜨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영법을 활용하여 살아날 수가 있을까?
만약 바다 한 가운데, 땅에서 먼 곳에 빠졌다고 가정해보자. 먼 거리를 헤엄쳐 나와야 하는데, 기본 자유형 영법으로 헤엄치다 보면 얼마 가지 못해서 체력이 방전되고 발에 쥐가 나서 살아날 수 있을까?
그래서 독일에서의 수영강습은 평영으로 시작하고, 스포츠단계를 가기 전까지 대부분을 평영으로 진행한다. 이유는 만약 물에 빠졌을 때 구조대원이 도착하기까지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체력소모가 가장 적은 영법으로 천천히 헤엄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이빙 또한 연습을 통해 깊은 물에 빠졌을 때도 침착하게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고, 시야에 방해가 되는 머리카락, 무거운 옷 등에도 평상시에 익숙하게 스스로 다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진행한다. 말 그대로 매일의 연습이 실전인 것이다. 그래서 잠옷을 입고 수영하는 과정이 있고, 최종 단계에는 인어다리를 입고 수영하는 과정도 있다. 반드시 물 밖으로 혼자 나와야 한다. 다양한 실제 예상상황을 만나면서 생존을 위한 능력을 키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도 매년 익사사고가 10~20%씩 증가하고 있다는 수치와 그 원인이 대부분 수영 미숙이였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독일 수영협회와 독일인명구조협회에서는 수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이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원인에 대해 학교의 수영시간이 일주일에 두 번에서 한 번, 심지어는 한 달에 한번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어쩌지? 초등학교에서 더 많은 수영시간이 정규수업 과정으로 지정되어 있어야 할텐데... 걱정이 됐다.
한국에서 “ 너 수영 잘해?” 는 어느 영법까지 구사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고,
독일에서 “ 너 수영 잘해?”는 물 속에 빠진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다.
자신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수영으로 시작해서 다른 누군가를 구조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도록 하는 것이 독일 수영 교육의 최종 목표이자, 국민을 위한 국가 목표인 것이다.
아이들을 최대한 안전하게, 최대한 편안하게 해 주며 최상의 결과를 안겨주려고 노력하는 어른보다는 조금 덜 안전하고, 더 불편하더라도 아이가 그 과정을 극복해가며 스스로 즐거움을 알아갈 수 있게 기회를 주는 어른이 되야 한다.
좀 더 좋은 보조기구를 하나 더 달아주는 게 아니라, 자기의 몸을 스스로 알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부모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