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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31. 2022
일과 사람 사이
직업과 직장 사이
회사를 다닐 때, 이직을 고려할 때, 일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요?
나의 꿈은 글을 잘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특히, 글자로 남는 글이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를 통해 표현되는 글을 쓰는 시나리오 구성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방송 막내작가로 일을 시작했다. 방송 작가가 되면 내 글이 방송을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것이니까. 그러나 막내작가로 버티는 길은 쉽지 않았고, 버티고 버티다가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꿈을 접을 순 없기에, 방송이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해왔다. 때론 유튜브 콘텐츠 대본을 쓰기도 하고, 바이럴 영상 구성안을 쓰기도 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스토리 작가, 시나리오 작가 채용 공고를 보고 입사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스토리 작가로 들어왔지만, 내가 하는 일은 sns 콘텐츠를 기획하고 채널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사실, 다른 회사를 다닐 때에도 이런 식으로 글의 영역이 달라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기력해지며 내가 원하는 글의 영역을 찾아 이직을 해왔다. 그래서 지금의 회사에서 면접을 볼 때 내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 그동안 내가 원하는 글의 영역이 달라졌을 때가 많았기에, 구성안 쓰는 일을 전담으로 하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나를 뽑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분이 말했다. 1년만 sns 운영하는 일을 도와준다면, 반드시 원하는 스토리 작가 롤을 주겠노라고.
다행히 sns 운영을 하는 1년 동안에도 틈틈이 내가 쓰고픈 글의 영역을 다룰 기회는 있었다. sns에 올라가는 콘텐츠를 웹툰 형태로 기획하여 주 1회 만화 구성안을 쓰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1년을 버텨낸 후에는 약속처럼 원하는 일을 주겠다고 하셨고, 캐릭터를 활용한 웹툰, 홍보만화책 속의 구성 작가로 일했다.
그렇게 2년이 더 흘렀고, 어느새 지금의 회사가 내가 다닌 최장기 회사가 되었다. 오래 다닌 만큼, 함께한 사람들과도 마음이 잘 맞고 정이 들었다. 대화도 잘 통하고 배울 점도 많아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마음이 통했기에, 이 "작심삶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최근, 일과 사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전 직장 때처럼, 글의 영역이 바뀌게 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려면 내가 원치 않은 일을 해야만 하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려면 이 사람들 곁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과 일의 갈림길에서 방향을 정해야만 했다.
내가 오랫동안 이 회사에 다닐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 것이다. 그래서 홀로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이곳에서 오래 버텨왔던 가장 큰 이유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였을까, 아님 메인 업무는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였을까..
정말 깊게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금 사람들이 좋아서 버틴 것도 분명하지만,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었기에, 숨통이 트여서 이 회사에 다녔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원고를 마감한 후 일의 영역이 달라지면서 좋은 사람들과 일하면서도 내 일이 아닌 일을 하는 기분에 의욕도 사라지고 무기력함이 몰려오고 있던 시기였기에, 더욱 내 선택은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을 결정하고 나서 며칠은 잘 결정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진짜 내가 하고픈 일을 하기로 했으니 진짜 잘해서 인정 받아보즈아! 하는 의욕이 오랜만에 샘솟았다. 그러나... 점점 함께한 동료들과 떨어져야 할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마음이 심란해졌다.
이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면, 원치 않은 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안 하던 일이라 능숙하지 못해 길을 헤매더라도 이들과 함께라면 으쌰 으쌰 잘 헤쳐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과
과연 내가 원하는 일을 제대로 맡았을 때 예전처럼 할 수 있을까? 내 선택에 후회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원해서 한 일인데도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면 어쩌지? 내 능력에 맞는 일일까? 일이 또 달라지면? 하는 무수히 많은 걱정이 몰아쳤다.
그렇게 미련과 걱정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내일 새로운 곳에서 내가 원하는 일과 마주하게 된다. 부디 걱정이 무색하게 그곳에서 하는 일이 나랑 잘 맞았으면 좋겠다.
사람 대신 일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내가 꿈꾸는 작가의 길에 더 가까운 선택을 한 것이기를..
ps. 그래도 당분간은,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그 사람들이 그리울 것 같다.
작심삶일 / 글: 김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