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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나이 Jun 21. 2023

언젠가 인도를 가야겠어요

제 성인의 시작은 그렇게 순탄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20살 당시에는 어느 기숙학원에 앉아 정확하게 무슨 목적인지도 뚜렷하지 않은 아무개의 공부를 해야만 했거든요. 그런 곳에서 넓은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하면 믿어지겠나요?


사회문화 과목을 가르치던 강사님이 한 분 계셨어요. 제가 있는 서울 근교 어느 기숙학원까지 강의가 있는 날에만 찾아오는 분이셨지요. 제가 기억하기론 오래 강사일을 하셨건만, 그 먼 길을 매번 버스를 타고 오는 고생을 굳이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부터 덜컹대는 지하철을 타고 와서 어느 시장 앞에서 버스로 갈아타, 라디오를 들으시거나 차창 밖을 바라보는 그 낭만을 한 주간 고대하셨을 것 같네요.


여하튼.

어느 날엔가 수업에 지친 아이들의 표정을 보시더니, 본인의 여행 얘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여태 다양한 여행 얘기를 들으며 ‘대학에 가면 여행을 정말 자주 다닐 거야.’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글쎄 왜 그렇게 인도 얘기가 재밌었던지 모르겠네요. 그분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더 이상 가고 싶은 여행지가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인도를 갔더랬죠. 어머니의 품인 갠지스강에 나아가 주변의 성스러움에 이끌려 발을 담갔다고 합니다. 그리곤 한참을 강 반대편으로 수영하며 그곳의 신비로움을 만끽할 즈음, 헤엄을 치기 위해 보냈던 왼쪽 손이 무엇인가에 걸려서 다음 스텝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마치 주먹이 어딘가에 콱 박혔거나, 물려버린 느낌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뒤를 돌아본 선생님은 아마도 그때 인생의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네요. 실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삶의 끔찍이도 지독한 하찮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성스러운 어머니의 품으로 돌려보낸 어느 해골의 턱 사이로 왼 손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려버린 손은 본인의 수영을 도와줄 기미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그 당시, 성스러운 어머님의 은총을 배가 터질 만큼 마셔댔다고 표현하셨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들숨과 날숨 모두에 끊임없이 강물이 몸 안으로 유입되었겠지만요.


그렇게 마셔댄 은총 때문이었을까요. 그 강에서 나온 뒤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달라졌다고 합니다. 삶과 죽음의 멀고도 가까운 그 경계에서 사소한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오신 분 같았습니다.


그리곤 인도 여행을 추천해 주셨어요. 다만 세상의 다른 여행들을 어느 정도 다녀오고,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여행을 갈 때 느끼는 바가 더욱 클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였네요. 아무래도 개인의 경험에 따라 인도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깊이의 차가 있다는 말씀이셨겠죠.


머지않은 것 같아요. 저도 인도를 방문할 순간이. 세상 모든 곳을 다니진 못했고, 아직도 경험이 짧은 부족한 사람이지만 어느 정도 머리가 크면서 저 만의 철학이 생기고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아질 나이가 되었네요. 그래서 지나온 삶을 조금이라도 다듬어 나아가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아마도 인도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그 여행을 고대하며 삶에 대한 단단함과 유연함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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