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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Mar 28. 2024

또 다른 봄의 전령사

~ 고통을 이기는 고마움 ~

외출하려고 대문을 여는데 택배 두 상자가 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뭘 시켰는가?’라고 물었다. 서로 ‘나는 아닌데’하는 눈치로 주소 바벨을 확인했다. 받는 사람이 남편 이름이었다. 남편은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단다. 보낸 이를 확인하니 주소는 없고 이름만 있는데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우리가 아는 A이라면 지금 택배를 보낼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락처가 회사 대표 번호 같았다. 우리가 아는 사람과 동명이인인 회사대표인가 싶었다. 일단 남편 이름과 주소가 정확하니 누군가 우리 집으로 보낸 것은 확실했다. 발길을 돌려 택배상자를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상자를 개봉하니 과일이었다. 한 상자는 배였고 한 상자는 천혜향이었다. 본인 주소도 연락처도 밝히지 않고 보낸 선물이라 진심과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그렇다고 그냥 받을 수는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A는 지금 암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런 선물을 보낼 처지가 아니기에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하며 회사대표 번호로 확인 전화를 했다. 역시 녹음된 회사 이름이 나오고 통화를 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안내 음성만 되풀이되었다. 할 수없이 외출을 했다가 돌아와서 다시 확인을 했다. 회사에서 주문자의 연락처를 받아서 전화를 했다. 과일을 보낸 사람은 놀랍게도 암투병 중인 A였다.      

 


 A와 우리가 평소에 왕래를 하는 사이는 아니다. 

결혼하기 전 같은 교회에서 알고 지냈지만 왕래가 끊어진 지 오래다. 삼십 년도 넘게 서로 소식도 모르고 지냈다. 우연히 A가족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가 되었고 암 수술을 받았는데 고생이 심하다고 했다. 청년시절 워낙 순수하고 착했던 사람으로 기억되어서 남편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중환자이고 대학병원 관리상 면회가 어려웠다. 

가족 한 사람만 면회가 허용되었다. 할 수없이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가족 몫으로 남편만 병실에 갔지만 제재가 엄격해서 잠깐 A얼굴만 보는 정도로 면회를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암수술 후 패혈증까지 겹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고 한다. 거기다 의료대란으로 진료까지 순탄치가 않아서 본인이나 가족들이 애간장을 태웠다.      

 


 이런 상황에 있는 A가 잠깐 면회 간 우리에게 답례를 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선물을 보낸 사람이 A라니 너무 의외였다. 감동을 넘어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 황당함이었다. ‘답례가 뭐 그리 급하다고…….’      

 


 A는 혼자 사는 처지라 퇴원해서 동생댁에 머물고 있었다. 

회복을 위한 식이요법도 까다로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를 챙겨 볼 겨를이 있었다니 역시 예전에 알던 A의 사람됨은 그대로였다. 아직 거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하던 일도 쉬고 있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음을 짐작하니 우리는 몸 둘 바를 몰랐다.      

 


 퇴원 후, 늦었지만 문병을 다녀간 고마운 사람들을 챙겨보고 있다는 A였다. 역시 남다른 A였다. 그를 위로하기에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그저 고맙다는 말과 빨리 쾌차하길 기도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A도 자기를 잊지 않고 문병 와줘서 고맙고 병원 사정상 먼 길 왔는데 충분히 머물게 하지 못한 점을 연신 미안해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니 A의 여운에 잠겨 있었다. 

자신이 처한 고통의 양보다 A가 가진 사람됨의 역량이 더 넓고 커 보였다. 암이라는 육체의 고통보다 마음근육이 더 짱짱해 보였다. 암으로도 모자라 패혈증까지 겹쳐 홀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을 때 삶과 죽음을 오가며 얼마나 내면의 전투를 벌였을까.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일반실에서 퇴원을 하고 동생집이지만 집으로 돌아왔을 때 고통을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먼저 떠올린 A였다. 살아서 돌아온 기쁨과 감사를 먼저 나누고 싶었나 보다.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누가 A에게 돌을 던지랴마는 고마움을 먼저 되새김질하면서 고통을 달랬을 A를 생각하니 작은 어려움에도 불평을 일삼는 자신이 참 부끄럽고 한심했다. 고마움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A의 인간 승리에 가슴이 저려왔다. A의 사정을 전해 듣고 무겁게 가라앉았던 마음에 다시 생동감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A와 통화를 끝내고 베란다 창가에 섰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낮은 언덕배기에 노란 봄이 오고 있다. 

군데군데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노란 산수유, 산수유나무 아래로 낮게 울타리를 이어가는 노란 개나리가 A와 자꾸 겹쳐진다. 고마움으로 고통을 이겨나가는 A야말로 또 다른 봄의 전령사였다. 서럽도록 아름다운 노란 봄을 전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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