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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ler Nov 12. 2020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못 보는 이유

그녀들과의 추억

영화 포스터에 당당하게 선 자주색 유니폼의 그녀들을 보는 순간,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이 영화를 보러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1995년 1월, 나는 대기업 신입사원이 되었다. 

3주간의 그룹 단체교육과 계열사 교육을 받은 후 입사동기들과 함께 파이팅을 되뇌며 각자 통보받은 부서로 출근했다. 

신입사원을 받은 총무 부원들은 적절한 사회적 인사를 건네며 환영해주었다. 드디어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떼낸 24살도 긴장했지만 회사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대졸 여사원을 받은 총무부도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10년 차 고졸 여직원도 있었다. 그녀는 영화처럼 흰 블라우스에 자주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도 29살. 

20대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직장인이라면 10년 차의 위엄을 알 터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녀도 나도 서로를 어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수백 명의 직원들 중에 10퍼센트 될까 말까 한 여직원들. 비슷비슷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20살부터 29살까지 다양하게 포진된 그녀들 사이에 어느 날 내가 뚝 떨어진 것이었다. 


공채 선배들과 동기들은 회사라는 곳에서 그녀들과 내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달라야 한다고 계속 주입했다. 그와 동시에 상사들은 내가 그녀들과 트러블 없이 화목하게 지내길 바랬다. 


그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직원회에서 체면도 있을 것이고, 위계질서도 지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의 룰을 신입사원 하나로 인해 깰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자주색 유니폼을 맞추도록 안내하고, 탕비실을 소개하며 아침 커피와 오후 음료를 나르는 스케줄을 공유했을 것이다. 


동기들이 사수로부터 일을 배우는 동안, 나는 여직원회의에 가야 했고 외근하는 날에는 하루에 3번씩 유니폼을 입었다 벗었다 해야 했다. 

동기들이 비용 영수증과 각종 지원업무를 부서 여직원들에게 맡기는 동안, 나는 차마 10년 차 그녀에게 입을 뗄 수 없어 혼자 끙끙대며 처리했다. 

그 사이에 음료를 나르면 선배에게 네가 그걸 왜 하냐고 혼나고, 안 나르면 왕언니의 심기가 불편하여 부서 전체가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사실 영화 포스터에 보인 유니폼도 상당히 영리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나에게도 (지금도) 여직원들만 입는 유니폼이라는 것도 문화적 충격이었다. 커리어 우먼을 그리며 폼나는 정장류를 살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나로서는 너무나 생소한 일이었다. 입사 준비를 하는 동안 아무도 유니폼에 대하여 말해주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고백이겠지만. 그리고 그 품질이란! 불편하기 짝이 없는 핏이란! 


나의 또 다른 약점은 여성만의 커뮤니티 울타리에서 생활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80년대 선배들처럼 남녀불문 형이라 부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녀공학만 다니며 동아리 활동도 그렇고 소위 말하는 여성들 간의 미묘한 감정교류나 끈끈한 연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3주간의 신입사원교육때까지, 24년 평생 나는 남녀 평등의 교육을 받아왔다. 그러나 사회는 달랐다. 나는 '공채신입사원'이면서 동시에 '여직원'이었다. 


당시 여직원회는 어엿한 공식 동호회로 회사의 지원(?)을 받으며 똘똘 뭉쳤고,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회사가 기대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회사나 그녀들이나 나쁠 것이 없었고, 필요했고 그것이 옳다고 여겼다. 

다만 내가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았을 뿐이다.  


 물.론. 개인적인 성격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사무실에서 언니 소리는 절대 나오지 않았으며 (그것은 지금도 그렇다) 사적으로 여우짓도 못했다. 적절한 멘토링을 해줄 만한 선배도 없었다. 사내 아무도 경험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러니 기존의 그녀들과 내가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나는 튀어나온 돌이었고, 청개구리였으며, 세상 물정도 모르는 철부지였다. 


내가 편협한 판단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인간관계를 지혜롭게 영위할 줄 모르는 초보 사회인이기도 했다. 

그녀들 역시 회사로부터 그동안의 노력과 기여를 부정당하는 배신의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업무별 요구되는 담당자 스펙이 다르고, 나이와 성별은 직급과 상관없는 현재 비즈니스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왜 그때는 승진과 서열에 학력과 성별과 나이가 그렇게 중요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내가 대리가 될 때쯤에는 영화와는 달리 서로 각을 세우기보다는 암묵적인 공존의 룰이 자리를 잡았다. 

이후 그 10년 차 언니와는 10여 년을 같이 더 일했고, 우리는 서로의 업무분야를 존중하며 가끔 술자리에서는 언니라고도 부르며 불가근불가원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제는 서로 다른 회사에서 승진하며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없애보려고 했던 유니폼은 수년 후에 사장님의 지시 한마디로 없어졌다. 


그때 그 경험들을 토대로 다양성을 강조하는 21세기 기업 문화들이 형성이 되었겠지만 (물론 지금도 미완성으로 진행 중이지만)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안다. 걸리적거리기만 하던 나를 둔 것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자 하는 최고경영자의 의지와 인사전략이었으며 내가 버팀으로써, 그리고 회사는 나와 조직원들의 좌충우돌을 보면서 개선하여 대졸 여직원들의 수가 차츰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승진 시험을 치르게 한 것도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대기업 사무직에서 고졸 출신이 손에 꼽을 만큼 적어진 것도 현실이다. 결과적으로 그 당시 그녀들의 불안감이 - 고졸 여직원들을 더 이상 뽑지 않고 대졸 여직원들을 뽑는다는 -  맞아버렸다. 

 

너무나 커 보였던 그녀와 선임들

대졸이던 고졸이던 여직원은 여직원인 부장님

회사의 새로운 분위기를 기대하셨던 사장님

두 고집쟁이 여자들이 사내에서 싸울까 봐 전전긍긍했던 과장님

공채의 자부심을 강조하면서도 요령껏 잘 지내라는 (어쩌라고!) 선배들

그래도 힘이 되어준 동기들

귀여웠던 20살 그녀들


그들은 저 영화를 봤을까?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는 후배들을 보면서 속으로 늬들이 그때를 알아? 를 되뇌는 나는, 꼰대가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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