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건 멘탈 관리와 목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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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여 넘게 통번역대학원 생활을 하다보니 어느순간 많은 생각들이 한번에 찾아왔다.
매일 빼곡하게 수업듣고 과제하느라 바빴던 탓도 있지만,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채로 배출하고 싶지 않는 성격이라 그간 글을 통 쓰지 못했다. 다소 자극적인 소재로 시작한 브런치북에 찾아온 정전에 실망하고 돌아설 구독자님들도 계셨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안물안궁일지도..)
하지만 모든 일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바라보아야 명백해진다고 하지 않은가.
그런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하고 이해해주실 분도 계시리라 믿고 다시 틈나는 대로 글을 써보려 한다.
통대생에게 핫 키워드는 '멘탈 관리'다. 대부분의 통대생들은 이 점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멘탈 관리가 필요하다는 건 멘탈을 지키기 어렵다는 말과 동의어다. 그렇다면 왜 멘탈을 지키기가 어려울까?
물론 회사 생활을 할 때에도 멘탈을 지키는 게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통대생의 멘탈 관리는 조금 다른 색깔, 다른 영역에 속한다. 돌이켜 보면 직장에서는 주로 사람 때문에 멘탈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경쟁에서 오는 불편함, 협업을 하는 것의 어려움, 그 외 자잘한 감정 소모들. 통번역대학원에서 왜 마음이 흐늘흐늘해지는지를 생각해보니 몇 가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실 이유들 간에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들이긴 하다.
통역 활동 자체의 난이도
일단 통역이란 항상 모를 수 있는 것, 틀릴 수 있는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태스크다. 이 뿐 아니라, (AB(한영)이든 BA(영한)이든 마찬가지로) 다음 세 가지에 대한 실력 부족이 큰 좌절감을 준다.
1) 리스닝: 완벽한 듣기
2) 노트테이킹&메모리: 들리는 내용을 완벽히 필기/암기
3) 통역: 완벽히 다른 언어로 옮기기
각각의 단계는 순서대로 진행이 되지만, 이전 단계가 클리어되더라도 다음 단계가 되지 않으면 전체 퍼포먼스는 좋을 수 없다는 게 치명적이다. 결국 셋 다 잘 해야 된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가 요구되는 활동인데다가 이 모든 단계는 엄격한 시간 제한을 두고 이루어진다는게 무시무시한 점이다. 틀렸다고 다시 반복할 수 없고, 못 들었다고 다시 들을 수 없다. 태스크 난이도가 높다보니 긍정적 피드백을 받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그런 수업이 일주일 내내 빼곡하게 학생들을 기다린다. 당연히 높은 긴장감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통역자로 지명될 때마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진땀이 뻘뻘 나는데, 이게 반복된다고 익숙해지는 감각이 아니었더랬다. 한 학기 내내, (아니 그 뒤로도) 이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현실과의 괴리감
이렇게 어려운 작업을 매일 매시간 요구받는데 잘하고 싶은 마음은 앞서 있다는 게 마음이 힘들어지는 또 다른 이유다. 소위 영어 좀 한다고 했던 사람들이었는데, 통대에 모여 기준이 확 높아진 종합 언어 예술을 펼치려니 내맘대로 하나 되질 않고 실수 투성인 거다. 들은 내용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거나 주어진 시간 안에 말을 이어나가지 못할 때는 실시간으로 자괴감이 몰려온다. 어쩌면 너무 잘하려는 마음을 비우고 차분하게 임하는 게 평타는 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머리와 마음, 그리고 입은 늘 따로 논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대한 인식
보통 통번역대학원의 통역 수업은 담당 연사가 낭독해주는 출발언어(Source Language) 리스닝을 하고 교수님이 통역자를 랜덤하게 지정하면 도착 언어로(Target Language) 통역을 진행, 통역이 끝나자마자 다른 학우 한 명이 크리틱을 진행하고, 연사 및 교수님이 내용을 정리하고 피드백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크리틱은 Accuracy(정확도), Expression(표현), Delivery(유창성), 이렇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퍼포먼스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모든 수업에 타인의 평가가 기본 전제로 깔려 있고, 그만큼 부담을 떨쳐내기 어렵기도 하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대한 인식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게는 결정적이지는 않은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런 부분이 통역사의 긴장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는 건 명확하다. 사실 통역을 내뱉는 순간 즉각적으로 자기 객관화가 되기 때문에 잘한 것을 못했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못한 걸 잘했다고 착각하기도 어렵다. 통역을 하다보면 적절한 표현을 떠올리지 못하거나 떠올리는 데 시간이 소요되어 pause가 생기는 것, 어색한 영어/한국어 표현으로 문장을 만들어버리는 것, 특정 부분 노트를 해독(?!)하지 못하거나 아예 누락해버리는 것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인식하는 건 우선 나 자신이고, 그 다음 순간에는 몰려올 평가에 대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상처(?)받지 않고 버텨낼 수 있다.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무언가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통역 실무에 임하시는 교수님들의 전언에 따르면, 학교에서 겪는 부담감은 실무의 반의 반.. 아니 그 이하도 안된다고 한다. 직업적으로 통역 분야를 선택했다면 끝까지 싸워 이겨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직업 경쟁력에 대한 고민
입학 전부터 지금까지도 통번역 업계에 대한 의구심어린 질문들을 가졌었고, 또 자주 주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통번역은 직업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일까?
이런 의문이 드는 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AI 기술, 그 중에서도 거대 언어 모델(LLM)을 활용한 대화형 AI의 대두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ChapGTP, deepL, 네이버 파파고 같은 서비스들이 대중들이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되고 있고, (비문학에 한정했을 때) 번역 퍼포먼스도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이르렀다. 번역을 통역으로 옮기는 일은 음성 인식 기술과 TTS 기술을 적절하게 결합하면 문제도 아닐 거다. 삼성 갤럭시 S24에서 처음 탑재된 AI 통화 기술도 이미 상용화된 번역+통역 기술의 예시다. 'Chatgpt를 활용한 영어 공부' 같은 키워드가 화제가 되기도 하고, Chatgpt 4o는 시각 정보를 받아들여 추론, 판단하고, 음성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능력도 갖췄다. 의심의 여지 없이 Chatgpt는 토박이 한국인보다 더 정확하고 유려한 영어 문장을 생성해낸다. AI는 정말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에 틀림 없고, 이는 많은 사람들이 예견했던 일이다.
그래서 통번역은 미래에 대한 근거없는 긍정적 전망을 하기 어려운 ‘솔직한‘ 분야다. 실력적으로 대충 두루뭉술하게 덮고 가거나, 잘하는 척만 하기도 어려운, 적나라한 경쟁과 대결의 현장이다. 더 다양하고 정확한 표현을 적절하게 구사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을 냅두고 한 사람을 고용할 이유가 없잖은가? 이 때문에 통번역대학원이라는 과정을 통해 혹독하고 집중적인 훈련을 받고 졸업을 하고도 끝없이 공부하고 연구한다. 다소 가학적인 과정이라고 생각도 든다. 그만큼 희소하게 뛰어난 실력을 갖춘 자만이 쉽게 인간 경쟁자, 혹은 AI에 따라잡히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공부를 왜 하느냐 물을 수도 있다. 다소 비관적인 논지로 흘러왔지만 이 분야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의 빛 또한 명확하다. 결국 이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 '사람 간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간 내면의 미묘한 생각과 감정, 의도는 인간 이외의 존재가 파악하기가 어려워보인다. 사람 간의 소통이 단순한 언어 전달(통번역에서는 언어 치환)로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각 사람 마다 소통 과정에서의 입장과 목적이 있고 암묵적인 원칙들도 전제되어 있다. 이를 통틀어 '맥락'이라는 단어로 가리킬 수 있겠다. 맥락을 파악하여 언어로 다른 사람들을 연결하고, 생각을 이어주는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사람 통역사이다.
AI가 아직까지는 '스스로 아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정확도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도 종종 문제가 된다.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국가간의 정치, 외교, 경제 사안 뿐 아니라 큰 돈이 오가거나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는 기업 간의 대화 등 실수가 나와서는 안되는 분야에서는 아직 AI를 의존하기엔 신뢰도 문제가 크다. 이 분야에서는 통번역사에 대한 수요가 명확하고 일관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라고 나이가 들면서 '아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을 수없이 경험하며 살아간다. 만일 AI가 셀 수 없는 케이스를 딥러닝하는 것으로 사람과 같이 공감과 맥락 파악이 가능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언어화할 수 있다면 AI는 사람과 동일해져서 더이상 구분이 안될 것이다. 그 때쯤 되면 통번역사는 찾아보기 힘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간과 신체적 제약을 받는 사람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건 비인간 AI 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누가 알겠는가? 그 때는 더 향상된 AI 통번역사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이 이야기의 결말을 열어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