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를 되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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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 기록으로만 본다면 통대에서의 내 첫 학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것이다.
총 22학점 이수(학부 때도 들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수업 수)
평균 평점 4.22 (역시 학부에서도 욕심내보지 못한 높은 학점)
하지만!
단순히 수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이 한 학기 동안 쌓였다고 자부할 수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눈에 띄는 통번역 실력 향상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나 자신의 '잘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시간을 30대에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소름 끼칠 만큼 특별한 기회였다고 느낀다.
내 나이와 경력쯤 되는 직장인 대부분은 대리, 혹은 과장을 달고 자기 자신의 뛰어남을 뽐내고 어필해야 하는 시기에 다다른 상태일 거다. 어쩌면 매일매일 적당한 자기세뇌를 반복하면서, 그렇게 실제와는 거리가 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도록 강요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자기부인이 발생하는 순간, 패배한 것과 다름없는 무한 경쟁 궤도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회사라는 환경은 정글의 법칙과도 비슷한, 원시적인 경쟁의 현장이다. 과거의 나는 이 원칙을 내면화하는 데 실패했고, 자타에 대해 투명하고 곧이곧대로인 나의 인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행동을 보며 다른 이들은 나를 약간은 외계인처럼 여겼을 것이다.
이와는 정 반대로, 나는 내 자신의 무능함을 순간순간 맛보고 들키고 자동 인정해야 하는 환경에 4개월을 놓여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긴장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미친 듯이 내달리던 심장 박동은 점차 차분해졌고, 땀도 덜 흘리고, 점차 차분해진 내 자신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올바른 궤도에 오른 듯한 평정심과 겸허함을 갖게 됐다.
아, 그래. 내가 이 정도 실력이지. 한 이 만큼은 할 수 있지.
오늘은 이 정도 목표를 가지고 해 보자.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런 자기인식을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이 개념은 단순화해서 말하면 옛날옛적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것처럼 '너 자신을 알라'의 성공적인 결과물이다. 원래도 자기인식이 민감한 편인 나는 통번역 공부를 통해 철저한 메타인지의 시간을 겪게 되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내 현실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끊임없이 나의 진짜 동기를 의심하고 재확인하며, 하나씩 내면의 편익과 비용 사이의 간당간당한 허들을 넘어서는 것. 누군가에게는 자학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데, 결국 이걸 '즐겨내는' 사람이 끝까지 이 길을 갈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통번역뿐 아니라,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막을 길이 없고, 그렇게 몰두하고 집중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숙연한 숭고미를 느낀다. 나는 나 자체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성적표를 보고 헉 하는 분들이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우선 수업을 9개 수강했다는 사실과 함께 대부분 굉장히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 눈에 띌 것이다. 나도 그 두 가지 점이 경이롭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선 내가 속해있는 대학원의 경우, 특이하게도 통번역대학원이 국제대학원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필수 수강 과목 몇 개를 포함해서 일정 학점을 국제대학원 개설 강의로 채워야 한다. 경제/경영 베이스가 전혀 없었던 나는 가장 빡세다고 하는 Business economics 수업을 우선 수강했고, 소문대로 해당 수업은 빡빡한 강의 밀도와 함께 수많은 과제, 중간/기말고사, 기말발표까지 상당한 수강 난이도를 안겨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난이도 높은 통번역 수업 가운데 국제대학원 이 수업이 나에게 외따른 열정(?)을 지펴주어서 어떻게든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으로 안간힘을 썼고 그 결과가 좋은 학점으로 보상되어서 뛸 듯이 기뻤다. 노베이스였던 내가 앞으로도 요긴하게 쓰일 기본적인 경제/경영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값진 수업이었던 것 같다.
그 외 한영 통역 수업 2개, 영한 통역 수업 1개, 한영 번역 수업 1개, 영한 번역 수업 1개, 한영 통역 세미나 수업 1개, 한국어 말하기(!) 수업을 수강했는데, 전반적으로 교수님들께서 햇병아리를 위해 후하게 점수를 주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한 통역 수업이 아쉬운 수업이었는데, 영한 통역은 100% 연설문 텍스트를 가지고 수업이 진행되었다. 좀 부끄럽지만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연설문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연설문이라는 글의 형식, 내용, 논리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한국어 연설문도 아니고 영어로 된 연설문을 바로 실전처럼 연습을 하니, 통역이 잘 될 리 없었다. 매 수업 시간이 평가에 들어가기 때문에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내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던 결과를 받았다. 덕분에 방학 때는 추가로 영한 연설문 스터디를 하나 더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 술에 배부르랴!
한 학기 마지막 수업이 기말고사로 끝났다. 얼마 전까지 쉬는 날이라고는 연차밖에 없었던 나는 오랜만에 다시 얻은 방학이 기쁘기도 했지만, 사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이 소진되어 있음을 느꼈다. 영어를 꽤나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수업 이외에는 영어를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지겨워져 버린 것 아닌지 두려운 마음도 슬쩍 들었다. 미리 준비해 두었던 뉴욕 여행이 한 주 뒤 기다리고 있었지만 큰 의욕이 샘솟지 않을 정도로 한 학기의 무게감과 부담이 적지 않았나 보다. 뉴욕 여행을 통해서 내가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 영어에 대한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기를, 새로운 에너지와 쉼을 얻을 수 있기만을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