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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Apr 28. 2024

통대생의 시간은 세차게 흐른다

3월, 4월: 냉철한 자기인식, 현타와의 싸움

(Cover image generated by Adobe Firefly)


이런 시간표라니 OTL

회사를 다닐 때는 회사를 빌미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다. 피곤하다고 투정도 부릴 수 있었다. 적어도 퇴근 후에는 내 멋대로 시간을 낭비해도 죄책감이 들기는 커녕, 나를 보상해주는 시간을 갖는 게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거칠 자가 없었다. 왜냐? 내 금쪽 같은 시간을 내어주고 생활 필수재인 돈을 벌어왔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내 맘대로 내 모든 시간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24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돌려받은 게 얼마만인지. 처음에는 얼떨떨하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6시대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했던 과거와 달리 아침잠도 30분 1시간 원하는 만큼 더 잘 수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 일주일은 비슷한 시간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지난 몇 년간 몸에 배인 습관은 나로 하여금 일어나 당장 회사로 향하라는 자동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육체의 적응과 수용은 생각보다 더 빨랐고 금세 한두시간 늦게 일어나는 일도 익숙해졌다.


이론대로라면 시간이 널널하게 남아돌고 피로감이 없어야 하는데, 현실은 예상과는 아주 달랐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집에 오자마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한 피로가 몰려왔다. 분명히 소진된 건 정신적인 에너지밖에 없는데 몸까지 각성되어 피곤한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머리만 대면 잠드는 나에게 있어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해불가능한 건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무언가를 바쁘게 하고 있음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부족하다는 것. 통대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따지고보면 시킨 것은 맞지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나열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매 수업 주어지는 과제 (보통 마감 기한은 3-5일 내)

통/번역 수업, 한국어 수업 할 것 없이 모든 수업에는 과제가 따라붙는다. 매 시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과제가 늘 있기 때문에, 한 주차마다 수업의 개수만큼 과제가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여러 수업에서도 과제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은 모든 교수님들의 공통점인 것 같다.

 

2) 학우들과의 통역 스터디

우선 수업에서 배정해준 스터디 파트너가 있었다. 우리 학교 기준으로는 두 통역 수업에서 각자의 영어 관련 경험 및 고민 등에 맞춰 교수님께서 2명씩 혹은 3명씩 짝을 지어줬다. 1학년 때 스터디는 보통 통역 수업과 유사하게 진행되는데, 연사 역할을 할 사람이 통역용 텍스트를 선정하고, 그 텍스트에 관련한 어휘 보따리인 글로서리(glossary)와 배경 지식 등을 구비해서 공유한다. 텍스트를 읽어주면 통역 역할을 하는 상대방이 노트테이킹 후 순차통역을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스터디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만만치가 않다.


2-2) 학우들과의 통역 스터디 준비

앞선 2번 항목을 위한 스터디 준비 시간이다. 학원에서 입시 준비를 한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로 입학한 나는 텍스트 선정만해도 시간이 너무너무 많이 걸렸다. 최소 2시간에서 3,4시간까지도 걸린다. 하기 나름인지라 사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이상 시간을 들여서 스터디 준비에 완벽을 기할 수도(?) 있다.

 

3) 통역 수업 예습

통역 수업은 처음에는 노트테이킹의 원리 등 통역의 기본기를 익히는 것으로 가볍게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피드백도 날카로워지고(!) 예습을 하지 않으면 통역을 온전히 하기가 어려워진다. 사실상 통역 분야 및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이 사용되는 어휘와 통역의 퀄리티를 좌우하기 때문에 예습 유무가 중요한건 실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습에 대한 압박감이 날로 더해진다. 일부 수업은 교수님께서 미리 글로서리와 참고할 수 있는 텍스트를 공유해 주시는데,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릴 수 있다. (물론 이건 실제 경험이다.)


3-2) 통역 수업 연사 준비

연사(speaker)는 주제에 맞게 통역할 텍스트를 선정해 와서 수업시간에 실제로 대신 말해주는(읽어주는) 사람이다. 통역할 내용은 사회, 경제, 문화, 국제관계, 기술 등 특정 주제에 대한 연설문, 기사, 일반 담화 형태인데 이를 첫 몇 수업 제외하고는 학우들이 직접 선정하고 갈무리해와야 한다. (일종의 자급자족 경제..?) 어떤 텍스트가 적절한 텍스트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입학 초기 상태였던 지라('이거 가져가면 되는거 맞아?'), 연사 준비 또한 굉장히 스트레스였는데, 각종 뉴스 사이트, 정부/외교부 사이트, UN 공홈 등 뒤지느라 시간도 어마무시하게 잡아먹는다.


4) 통역 수업 복습

 복습은 습득한 내용을 강화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근본적인 단계다. 숙제처럼 누군가 확인을 하는 것은 아니라 우선순위는 다른 것에 비해 다소 낮긴 하지만, 이걸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비슷한 패턴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기 십상이다.

 

5) 중간고사 준비

한달이 훌쩍 지나고 4월 중 후반으로 접어들면 중간고사를 치르게 된다. 이렇게 과제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중간고사를 친다(!). 프라이팬 위에서 살갗이 터져나가는 뜨거운 고통을 겪어내는 비엔나 소시지처럼 인정사정 볼 것없는 시험 공세를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 물론 통/번역 시험은 평소와 비슷한 과제 수행 방식이지만 완전히 랜덤한 텍스트가 문제로 나오기 때문에 미리 뭔갈 더 준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준비를 안할 수도 없어서 더 불안하고 막막함이 가중될 수 있다.


매일 말하고 듣고 또 말하고, 밤 늦게까지 과제하다 잠들고, 점점 목이 잠기기 시작했다. 왼쪽 귓볼 아래 쪽에는 정말 피곤할때만 생기는 멍울이 잡혔다. 매일 매일 낯선 텍스트들과 분투하면서도 조금도 실력이 나아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새로 배운 것은 까먹고, 알던 것은 떠올리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상태로 통역에 주어진 시간은 흘러갔다. 교수님, 학우들이 해주는 피드백은 거의 비슷했다.

'목소리가 너무 많이 긴장한 것 같아요.'

'pause가 너무 길어요.'

'영어 문장이 매끄럽지가 않네요.'


나는 비로소 차가운 현실을 인정하게 됐다.

'아, 나는 영어를 못하는 구나. 지금까지 뭔가 단단히 잘못 생각했던 거구나.'

'가장 기본적인 문장 하나 제대로 맘대로 내뱉지 못하면서, 수나 시제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서 내까짓게 무슨 통번역을 공부하겠다고 이곳에 온걸까.'


회사에서 많은 긴장과 수난을 겪어왔고 어지간한 어려움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했다.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회사라는 배경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잘해낼 수 있을 거라 믿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마주하는 새로운 미션들과 그 속의 내 모습은 나를 적잖이 당황케 했다. 문득, 가장 약한 부분이 찔려 다쳤는데, 미처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눈만뜨면 전쟁터로 나가야 되는 군인의 마음이 이런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로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닐까. 적어도 아직은 해서는 안될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사실, 어려움 그 자체는 괜찮지만 그 어려움의 최종 목적지가 내가 원하던 그 곳이 아닐까봐 더 두려웠다. 육체적 피곤함은 잘 자고 쉬고 하면 금방 회복될 것이지만, 이게 내가 원하는 삶으로 향해가는 루트가 아니라면? 그런데도 스스로를 속이고 그냥 이렇게 뭉개고 지나가는 것이라면? 지금 이 공부에 들이는 노력과 시간, 버리는 기회 비용이 나에게 기쁨으로 보상되지 못하면 어쩌지? 이 일이 힘든 만큼 나에게 의미있는 일인가? 그렇다. 생각보다 더 빨리, 현타가 찾아온 것이다. 며칠 동안 고민하며 질문을 던지는 그 시간을 조금 더 공부하는 데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나는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학우들에게 공부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물었다. 왜 통번역사가 되고싶었는지 그 처음 계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나는 그 중 어떤 케이스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가 다를 뿐이었다.


의미라는 건 저절로 주어져 있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통번역을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고, 통번역사 직업이 간단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결과도 아니다.

의미는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합격이 선물이었을까를 이전 글에서 질문했던 것처럼, 나는 이게 선물만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합격하지 않아야 될 사람이 합격했다는 것도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뿐이다. 그 기회를 어떤 의미로 완성해낼 것인지는 지금 나에게 달려있다. 

초심을 잊지 않는 편이 차라리 도움이 될지 모른다. 나는 더 편하고 좋은 삶을 위해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내 삶의 초점을 되찾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물론 누군가에겐 이해 안될, 손해 보는, 혹은 무모한 선택이었을 거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부터 깨닫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나이가 들 수록 더욱 어려워질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에게는 '지금'이 진정한 축복의 시간이다.


I am doing this not for a better life, but the life directed to the point.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끝내 찾을 수도, 못 찾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결과보다 중요한건 과정이라는 뻔한 말에 기대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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