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5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오징어게임2, 혹평의 이유는

진짜 같은 가짜, 진짜 그 자체인 현실

by 언디 UnD Dec 28. 2024
아래로

* 이 글은 오징어게임 시즌2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미 시청하신 분들을 독자로 두고 쓴 글이니,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징어게임 시즌1을 일찍이 시청 완료했었다. 뒤이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 그리고 오징어게임2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별 기대감은 없었다. 속편이란 자고로 지극한 인기를 얻은 콘텐츠의 가눌 수 없는 욕망이 아니었던가. 시즌1의 첫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피터지는 죽음들을 마주했을 때, 이 드라마가 주는 충격과 공포의 절정은 이미 충족되고, 동시에 마무리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연말 즈음 시즌 2가 방영된다는 이야기가 미디어와 광고를 통해 전해졌고, 굳이 분초를 다투며 정주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즈음 여유 시간이 날 때마다 넷플릭스를 뒤적이며 '뭐 볼 것 없나?'하는 며칠이 반복되고 있던 터였다. 잊고 있던 콘텐츠 공개 날짜를 누군가 전해주었을 때, 마침 당일 오후 5시에 공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가벼운 손짓 한번으로 재생버튼을 눌렀을 뿐이다. 그리고 연이어 4화까지, 그 다음날 3화를 더 보고 시즌 2의 7화 감상은 모두 끝났다.


시즌2에 대한 반응은 다양한듯 예측 가능한 선에서 머무르는 것 같다.

우선 속편이 본편을 따라잡거나 뛰어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디폴트값이 혹평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역시 그건 예상대로였다. 다만, 이렇게 치부해버리기엔 잘만든 속편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혹평의 이유: 현실 같은 현실은 거북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허구의 이야기 즉 fiction을 통해서 충족시키고자 하는 고유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그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만드는데 장르별로, 목적별로 다른 도구를 사용한다. 가령, 드라마는 '진짜 같은 가짜'를 보여준다. 드라마 작가나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 가짜 이야기에 숨어서 전달된다. 현실에는 없지만 진짜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무게와 밀도로 스며드는 비밀 메시지다. 어떤 시청자들은 등장인물에 공감하고 동조된 만큼 그가 가진 신념에도 자연스럽게 동의하게 된다. 조금 다르게 다큐멘터리는 '가짜 같은 진짜'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 이야기의 실제성을 더욱 강조한다. '저게 말이 돼?'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사실의 효과적 전달, 더 나아가 이해와 행동을 유도하는 콘텐츠다.


사람들은 드라마에서는 진짜가 아닐지라도 붙잡고 싶은 이상향이 있다. 착하게 성실하게 산 사람이 복을 받고, 고생과 노력을 한 만큼 성과를 얻는 그런 아름다운 이상 세계에 대한 믿음이다. 등장인물이 일관되게 이런 법칙 하에서 행동하기를 원하고, 예상된 행동을 벗어나면 거기엔 이해가능한 수준의 동기가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사실 드라마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우주의 이야기다. 이 사실을 모두가 알면서도 그 괴리는 의식하지 않고 허구의 세계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쏟아지는 혹평의 이유를 분석해보자면, 오징어게임은 드라마로 보였지만, 온갖 판타지적 요소를 담았지만, 결국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적어도 드라마를 통해 기대하는 최소한의 것조차 충족시키지 않고 감독은 이번 시즌 이야기를 끝냈다.

한마디로 성기훈과 그 무리들은 죽을 힘을 다해 앵간히 고생했는데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이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매일 매일의 현실이라는 점이 시청자를 찜찜하고 불쾌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감독은 시즌1의 과거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그리고 누구보다 정의로운 동기를 가진 '성기훈'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건 시즌1에서 보인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인간성있는 존재였던 성기훈과는 다르다.


시즌2의 처음은 게임 우승 후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고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 기훈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투사가 되어 오징어게임을 멈추기 위해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기다리고 실행한다. 이미 한번 맛을 봤던 피터지는 게임들도 그에게는 '인생 2회차'와 같은 정도로 무뎌져 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어렴풋하게 기대한다. 기훈은 해낼 것이다.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게임을 멈추겠다는 하나의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기훈, 이 게임의 룰을 아는 기훈이라면 무자비한 억압과 폭력, 무목적의 악에 맞서 뭔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기훈에게 완전히 동조하게 만드는 무게중심으로 스토리를 이어간다.


미리 준비한 Plan B들이 실패하고, 결국 똑같은 게임의 굴레 속에 들어가는 기훈. 광야에서 외치는 선지자(!)가 되어 게임을 멈춰야 한다고 외치는, 설득하는 그의 모습이 반복된다. 약간은 답답하고, 또 반복되는 듯한 무자비한 이야기가 결말로 향해갈 수록, 보고 있는 인간의 뇌는 기대한 장면을 조금이라도 맛보고 싶은 갈증을 느낀다. 어느 순간 001 번으로 게임에 참여하는 이병헌(오영일 역, 묘하게 오일남과 성도 같다.)의 의미심장한 대사들과 섬칫한 표정들이 신경쓰이긴 해도 말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배신을 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은 그저 장치이겠지, 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결말로 향해간다.


오영일은 모두가 완전한 파멸적 실패에 이르기 직전, 결국 악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프론트맨으로 회귀해서 기훈의 쿠데타에 종지부를 찍는다. 강력한 악의 입장에서는 어리석은 선을 속이면서 재미있게 몇 판 게임하며 놀아준 것 뿐이었다. 가짜 같은 진짜, 믿기 싫은 현실이 전면에 대두된다. 은은한 기대감은 한번에 꺾인다. 사람들의 선한 의지나 단결보다 힘이 센 건 총과 힘, 권력이었다. 너무 알 것 같은, 너무 뻔한 현실은 우리가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되새기고 싶은 내용이 아니다.


조금은 허무하고, 환영하기 어려운 결말. 극단적으로 말하면 주요 등장인물과 그들의 피땀눈물, 그리고 무궁화 게임 이후 달라진 K-전통 게임들조차도 모두 "선의 실패"를 위해 첨가된 요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호평의 이유: 등장인물들의 연기

나는 개인적으로 이야기 속 캐릭터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 캐릭터의 행동이 그가 가진 동기로 얼마나 일관되게 잘 설명되는가를 매우 중시하는 편이다. 물론 이를 완전히 가려버려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비일반적' 인물도 있다. 싸이코패스 정도 급으로 앞뒤 인과 없이, 혹은 인간성을 상실한 위해 행동을 보여주는 인물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오영일 캐릭터가 아쉬운 것은, 얼핏 그의 과거사로 인한 상처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시즌1의 결말 시점과 유사하게 완전히 풀어내고 공감을 얻어내지도, 매듭짓지도 않고 인물의 모든 동기와 행동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도록 열어두었다는 점이다. 그는 왜 게임에 다시 참여했는가, 왜 기훈을 도와주고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데 그토록 적극적이었던가, 자아 분열적으로 행동하면서까지 결코 이 게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감독밖에 없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1,2화를 아름답게 수놓은 공유님의 연기 (*오랜 팬입니다.)1,2화를 아름답게 수놓은 공유님의 연기 (*오랜 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연기가 자연스럽고 또 각자 고유하게 돋보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주연, 조연 할 것없이 튀거나 신경쓰이는 연기가 없었고 그 인물 그대로 살아있었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배우 공유의 오랜 팬인데, 최근에 트렁크를 보고 오징어게임2에서의 배달부 역 연기를 봐서 그 대비가 크게 느껴졌다. (너무 가슴아프게 죽어버린) 햇빛캐피탈 이 대표와 함께 극 초반부의 긴장과 몰입을 이끌어내는 일등공신이었다고 생각했고, 연기 집중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박수 드립니다 짝짝짝.


어느 하나 찝지 않아도 다 각자의 스토리가 대부분 잘 전달되서 좋았다. 양동근과 엄마 역할(당연히 누구 한 명 죽을 줄 알았는데 안 죽어서 반전), 트렌스젠더 현주 언니 역할의 박성훈 배우, 탑(...은 평가 생략)..


아쉬웠던건 이진욱 배우 역할의 캐릭터, 그리고 무당녀 캐릭터다. 이진욱 배우가 맡은 역할은 딸이 혈액암이어서 게임에 참여했고, 막판에 쿠데타에 참여했다가 죽었다. 라는 정보밖에 아무것도 주어진 게 없어서 허무했다. 아마 편집 이슈 혹은 분량 이슈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당 캐릭터는 눈을치켜뜨면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이해못할 행동과 말들을 하는 것까진 좋았으나, 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지, 왜 항상 화가 나 있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거슬릴 때가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병대 출신인데 강하늘(강대호)은 왜 총 트라우마가 있고, 정배는 엄청 잘 쏘는 거냐구...) 그리고 코인하다가 망해서 들어온 명기(임시완 배우)는 조금 더 거칠거나 소시오패스 같은 느낌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너무 밸런싱된 연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순둥순둥하고 성실한 마스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등장인물에 대해서 총평을 하자면, 전반적으로 시즌1에 비해서 조연 캐릭터에 대한 터치가 치밀하지 않았던 부분이 보이고, 그렇다보니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나 매력도가 덜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게임하면서 덜 죽어나가서인 이유도 크겠다.


오징어게임2 쿠키영상 해석: 트롤리 딜레마(the trolley problem)?

시즌 2에는 쿠키 영상이 있다.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이 게임장으로 들어서며 높이 서 있는 무궁화꽃 게임 소녀를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다른 한 쪽에는 소년 버전의 볼통통 인형이 앉아있고, 기찻길 같은 배경에 초록색 동그라미 신호등, 빨간색 엑스 모양 신호등이 서있는 게 슬쩍 보인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솔직히 쿠키영상에 대해서 검색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근데 기찻길, 생명, 윤리적 선택에서의 딜레마 같은 키워드가 바로 떠올랐다. 바로 '트롤리 딜레마'라는 윤리학 실험 세팅.


" 제동 장치가 망가진 기차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다.

선로 위에는 5명의 사람이 있어 선로를 바꾸지 않으면 5명이 죽게 되고 선로를 바꾸면 5명은 살지만

바꾼 선로에 있는 사람 1명은 죽게 된다. 분기 조절 스위치는 당신 앞에 있다.

스위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 시즌에서는 모두 함께 살릴 수 없는 게임,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여야 할지가 내 손의 선택에 달린 딜레마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게임화하지 않을까라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총평: 오징어게임 시즌2 - 시즌3를 위한 발판만은 아니었길

시즌2는 잘 만들었지만 의도적으로 몇몇 인물들의 이야기를 숨긴 게 아니라면, 묘하게 엉성한 느낌을 주긴 한다. 아직 많은 의문점을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론트맨 이병헌과 그의 동생 황준호 형사간의 이야기는

'불행한 가족사'라는 컨셉만 던져준 정도에 불과한 느낌이다. 황준호 형사를 내내 도와주는 듯 하다가 결국 그 일당 중 멀미난 드론맨(ㅋ)을 가차없이 찔러 죽여버리는 오달수 선장님은 아예 결론 부분에서는 생략됐다. 시즌3를 고려한 연출과 편집이겠으나, 결국 오징어게임 시즌2에 대한 평가는 이 작품이 독립된 이야기로서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지는지에 달려있기에 무조건적인 칭찬만 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오징어게임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콘텐츠임에 분명하다. 제작팀이 이번 편의 허점들을 과도기적 스토리텔링이라는 이유로 합리화하지 않고 시즌3에서는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물안궁) 브런치 작가명,소개와 로고 변경 소식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