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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의 시간과 1000만 원 1편

이 두 가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by 언디 UnD

제목과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여행"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 족속들은 대부분 같은 지역, 동일한 공간에서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므로, 계절이나 시기와 상관없이 언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갖고 정말로 여행을 떠나도 된다면?

놀라운 것은 실제로 이런 일을 허용해주는 회사가 대한민국에 존재하며, 나는 그 혜택의 수혜자로 과거를 살았다.


때는 입사 4개월 차,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이 추위가 가시기 시작하는 3월이었다. 회사 전체 게시판에 <콜럼버스 프로젝트 지원 접수>라는 공지가 떴다. 프로젝트 명이 ‘콜럼버스’라니 세상에, 신대륙을 발견한 (역사 고증 부족으로 욕하지 마세요. 그냥 대충 하는 이야깁니다.) 15세기를 연 인물 아닌가. 묘하게 구식이기도 하면서 설렘을 자아내는 프로젝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건은 2가지. 회삿돈 천만 원을 가지고 하고 싶었던 거 하고, 뭔가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봐라. 회사에 도움되는 걸로. 결과물은 자유 형식 제출.

혜택은 3개월 간 업무 배제(유급), 즉 3개월을 출근하지 않더라도 출근한 것과 동일하게 인정해주는 완전한 자유시간을 준다는 것.

선발 과정은 프로젝트에 대한 계획서 1차 평가와 면접 2차 평가.


이건 정말 도무지, 미친, 너무나 굉장한, 말이 되지 않는, 엄청난, 멋진 취지의 프로젝트가 아닌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회사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노다지를 캐오라는 취지다. 회사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다니, 그것도 매년 정기 행사로!!! 입사 직후, 룸마다 커다란 사우나 탕이 있던 반얀트리 호텔에서 신입 교육을 받던 그때 이후 그다지 가슴 두근거릴 일이 없었던 나는 처음으로 순수한 설렘을 느꼈다. 이건 내가 가야 해.............. 무조건 가야 해.... 아, 가고 싶다. 뽑히고 싶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고작 입사 4개월 차였다. 일단 회사 일도 잘 몰랐고, 프로젝트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도 몰랐고, 운 좋게 뽑히게 된다고 해도 3개월이나 자리를 비우게 된다는 건 양심적으로 아니다 싶었다. 과연 누가 올해의 운 좋은 사람이 될까. 나는 지원하지 않았지만, 지원서를 작성했다. 1년을 미리 준비한다면, 승산이 높아지지 않겠는가,라고 혼자 야무지게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매우 자유분방하고 직원을 지지하는 듯한 비현실적인 프로젝트는 사실 누군가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여러 모로 제약 사항이 있었다. 일단 직무 특성 등으로 회사 업무가 너무 많거나, 주기적으로 체크해야 하는 물리적인 사항이 있거나, 리더가 허락을 해주지 않으면 선발이 되더라도 평소 업무와 병행해야 하므로 큰 의미가 없거나, 이쪽저쪽으로 짐만 무겁게 드는 셈이 된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를 보거나 저울질을 하면서 망설이게 될 가능성이 컸고, 리더의 눈치를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조용히 알아서 지원하고, 선발이 되기 전까지는 지원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재미있는 것은, 모두가 군침 흘리는 이 프로젝트에 알고 보니 같은 팀 선배가 지원을 했던 것, 그는 공고가 올라온 그 게시판에 선발 발표가 나기 전까지도 합격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멀리 해외로 떠나거나, 돈이 많이 드는 세미나를 수강하거나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 선배는 참으로 독특한 행보를 걸었다. 어디로도 떠나지 않고, 집에서 우리 회사 제품 홍보 유튜브 영상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1000만 원의 예산을 전부 사용하지도 않겠다고 했다. (내 기억으로는 거의 200,300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던 것 같다.) 반전에 반전이었다. 나는 그 선배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 이 선배 정말 출근하기가 싫었구나....’


아무튼 그 선배는 3개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편하게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돌아왔다. 본인 스타일의 B급 무드로 영상도 특이하고 재미있게 잘 만들었다. (알고 보니, 그 선배는 이전부터 유튜브 제작을 하면서 나름대로 영상을 만드는 스킬이 있었고, 고효율 저비용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회사는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선배도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게, 성숙하고 현명하게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비슷한 시기, 똑같은 공지가 올라왔고, 나는 작성해두었던 지원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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