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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만난 핀란드, 헬싱키

다른 유럽 도시들과 조금 다른 그 공간

by 언디 UnD

프로젝트로 방문했던 도시 중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던 곳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도시는 헬싱키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그중 한 가지는 음식이다. 다른 유럽 도시들을 처음 여행할 때 느끼는 낯선 두려움과는 사뭇 다르게, 헬싱키에서 파는 음식들에서 왠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이 헬싱키여서인지는 몰라도 한 때 일본에서 핀란드 이민 붐이 불었다는 소문도 들은 것 같다. 일본 음식을 파는 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는 무제한 초밥 뷔페, 일본 라멘 가게 두 군데를 가보았는데, 둘 다 맛도 '진짜'에 가까웠다. 서양인들이 그냥 흉내만 낸 음식이 아니라 진짜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혹은 한국에서 먹어본 일본 음식의 맛이라는 뜻이다. 또 비빔밥이나 덮밥 등을 김치 같은 한국식 재료들을 넣어 만든 퓨전 메뉴를 파는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도 갔었는데, 가게 주인이 한국 사람은 아니어서 더 놀랐다.


유럽 도시들에서 경험한 문화 중 식문화는 특히 기존의 전통에서 크게 변화를 주지 않으려는 듯한 폐쇄적인 인상이 강했는데, 헬싱키에서 만난 식문화는 유럽답지 않게 세련되고 개방적이었고, 한국인인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것이 유니버셜해진건지, 그 나라의 것이 동양적인 콘텐츠를 받아들인 건지는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물론 이곳에도 전통 음식이 없는 건 아니다. (참고로 핀란드의 전통 음식은 '순록 혀' 요리라고 한다.)

난생 처음 해외에서 만난 무제한 초밥 뷔페 / 다른 나라보다 더 맛있었던 일본라멘 / 어느 나라든 맛있는 수제버거

헬싱키가 다른 유럽 도시들과 다르게 느껴졌던 또 한 가지 점은 밤늦게까지 여는 가게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보통 유럽 도시들은 몇몇 레스토랑, 술집을 제외하고 마트 같은 일반 상점들은 6-8시 이전에 문을 닫아서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한 경우 곤혹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헬싱키의 카페들은 10시 이후까지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식당 또한 비슷한 시간까지 오픈되어 있어서 갑자기 여기가 유럽이 맞나 하는 묘한 이질감이 들기도 했다.

자고로 전통 있는 유럽 도시들이란, 매우 불편하고, 뭔가 부족하고, 내뜻대로 되지 않아야 하는데, 밤에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라니! 꽤 괜찮은 수준의 치안 상태도 한 몫하겠지 싶었다.

밤 늦게까지 운영하는 까페들은 왠지 여행자를 안심하게 한다.


국기 디자인처럼 깔끔하고 세련된 인상을 주는 나라 핀란드

거리의 모습이나 색감도 화려하거나 지나치게 고풍스럽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반듯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옷차림이 세련되었다거나 고급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모습과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그 나라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니트로 짠 모자와 패딩, 어쩌면 멋짐과는 조금 거리가 먼 푸근한 차림도 이 공간과는 잘 어울렸다. 이런 것이 바로 북유럽 감성인가. 적극적이지 않지만 매력이 풍기는 누군가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은은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시간들을 보냈다. 유럽 다른 도시들이 한국에서보다 몸과 마음의 속도를 느리게 한다면, 헬싱키는 잠깐 시간을 멈춰 정적을 즐기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한번 방문으로 푹 빠지고 만 까페/ 아보카도 토스트 / 아기의 침대 각도를 맞춰주는 러블리한 아빠

내가 만난 헬싱키는 다른 종류의 사람과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도시였다. 포용력이 넓은 경험 많은 사람처럼, 이 도시에 맞닿는 모든 것들을 끌어안아주고 수용해주는 성숙한 사람처럼 말이다. 도시가 보여주는 모습 속에서 낯선 이를 낯설게 만들지 않고, 그들이 이곳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제든 또다시 그곳 헬싱키와 핀란드 다른 도시들에 가보고 싶다. 가볍게 스쳐가는 여행자가 아니라, 그리움으로 그곳을 다시 찾은 사람이 되어서. 조금 더 오래, 지긋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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