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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어디까지 해봤니, 독일 <바덴바덴> 편

목욕만 하다 보니, 슬슬 걱정이 됐다.

by 언디 UnD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긴장되면서 고민이 된 부분은 ‘이런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물을 나올까? 아니, 어떤 결과물을 내야 할까?’였다.

어쩌면 콜럼버스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초기 단계에서는 간과하기 쉬운 맹점, 아니면 일반화해서 모든 직장인들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회사 돈으로 시도했을 때에 갖게 되는 궁극적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뭔가 그럴싸한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슬슬 찾아오는 것이다. 차라리 작년에 다녀온 선배처럼 아주 확실한 퀄리티의 소박한 양의 결과물을 약속하는 게 더 좋았을까,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세미나나 교육을 참석해서 그 내용을 결과 보고서로 내는 보장된 방법이 나았을까,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봐도 몇 달 전의 내 포부는 제법 컸고, 꿈은 창대했다.


내 MBTI 유형과 유형의 약점.....사람에 대한 관점 설명이긴 하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일 듯. “이상주의적”, “낙관적 기대감”

비용과 예산과 시간은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고, 나는 무언가 뾰족한 게 필요했다. 3개월의 시간과 1000만 원, 어찌 보면 매우 넉넉한 시간과 예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대되는 결과물에 따라서는 충분치 않은 자원이 될 수도 있었다. 이것이 심리학을 공부할 시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바로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인가, 내 계획의 유리한 면, 밝은 면만 보고자 했던 칵테일파티 효과인가, 미래를 온전히 예측하지 못한 자의 뒤늦은 후회인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이 모든 게 처음이었는 걸.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나있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 건 이런 것이겠지. Rober frost의 유명한 시 ‘The Road Not Taken’에서처럼 두 길 모두 갈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적게 다닌 길을 택한 이유로, 택하지 않은 길과는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으리라.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확률이 아닌, 지금 이 순간 나의 선택으로 변화되는 미래를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구체적 현실과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고, 이 시기부터 상상력과 논리력을 바탕으로 한 연역적 방법으로 스토리의 얼개를 좀 더 상위 레벨에서 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새로운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려면 내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확인을 해야만 했다. 내 머릿속 부산스러움과는 별개로 현실의 나는 탐방 중이었으므로, 오늘은 바덴 바덴의 가장 유명한 온천, (또다른)카이저 프리드리히 스파로 향해 본다.


비스바덴이 일상적인 도시의 생활 영역에 자연 온천을 활용한 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분위기라면, 바덴 바덴은 좀 더 특화된 고급 온천 휴양도시 느낌이다. 이 도시는 집값 비싼 도시 중 하나로, 은퇴 후 노년을 보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고 하는데, 전반적으로 야트막한 지형으로 높지 않은 건물들이 분포해 있고, 마을을 따라 작은 강도 흘러간다. 공공장소의 많은 영역에 잔디밭이 넓게 깔려 있으며, 공원도 많고 도시 중앙에는 카지노도 있다.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 와서 온천욕 하면서 쉬고 심심치 않게 재미있는 놀이(!)도 하라는 의미인가 보다. 이 곳에서 체험해 볼 목욕 문화는 사람을 통해 받는 스파 프로그램이었다. 탐방 목적은 앞서 길게 설명한 도시의 분위기와도 연관이 깊은데, 바로 다음의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왜 우리나라 목욕 문화는 ‘대중목욕탕’이라고 부르며 남녀노소 빈부귀천 상관없이 관여하는 친밀한 성격을 띠고 있는데, 외국, 특히 서유럽에서 유래된 스파 서비스나 제품은 ‘프리미엄’, ‘고급’, ‘럭셔리’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으면서 비싼 이미지가 형성이 되었을까? 화장품 회사 연구소를 다니면서 순수하게 궁금했던 부분이다. 아마도 서양권 국가가 강자로 오랫동안 군림한 역사적 전통에서 기인한 것이 클 것으로 예상은 되었지만, 기업의 영리적 활동에서는 사용자들이 갖는 이미지나 감성적인 측면이 서비스와 프로덕트의 가격을 비논리적으로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기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공급자 입장에서는 퀘스쳔 마크를 띠고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뭐가 그리 다르길래? 정말 다르긴 한 거야?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그 차이를 직접 온몸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여기 프리드리히 스파는 입구에서 내가 받을 스파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한다.

옵션은 4가지.


-Basic: 3시간 목욕 (25 Euros)

-Wellness: 3시간 반 목욕 + 비누&브러시 마사지 (37 Euros)

-Luxury: 4시간 목욕+비누&브러시 마사지+크림 마사지 (49 Euros)

-Luxury Plus: 4시간 목욕+비누&브러시 마사지+크림 마사지+레스토랑에서의 식사와 음료 (59 Euros)


나는 Luxury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다 받아보기로 했다. 오냐, 다 받아주마!


비스바덴에서와 같이 여기도 혼탕이었고, 내가 들어가자마자 뒷사람이 뒤이어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아마 직원들이 손님 간 거리가 너무 붙지 않도록 순차적으로 입장을 시키는 듯했다. 혼성 락커룸도 좀 익숙해질 뻔했는데, 여기는 내부 공간이 넓어서 설사 사람이 있더라도 눈치 안 보고 입고 벗고 몸을 말리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스파에서는 목욕 순서가 조금 더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지, 직원한테 꽤나 간섭을 받는 느낌이었다. 직원은 먼저 샤워를 하라고 알려주었고, 그 뒤에 크고 뜨거운 건식 열방(사우나가 아니다, 완전히 폐쇄되어 있지 않고 뜨거운 독방 같은 느낌)에서 한 10여분, 습기 가득한 사우나에 10여분을 머무르게 했다. 아마 한국에서처럼 몸을 좀 불리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안구건조증이 심한 나는 건식 열방에서는 눈을 뜨고 있으니 각막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 들어서 위험할 것 같아 더 오래 머무르지 않았고, 습기 가득 사우나는 반대로 각막을 촉촉이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조금 더 머물렀다. 안팎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관리하는 직원은 남 녀 모두 있었고, 직접 몸에 손을 대는 서비스는 나이가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이 해주셨다. (때밀이 아줌마가 생각나는 대목) 때밀이 침대 같은 곳에 누웠는데, 익숙한 포즈를 취하자 한국 생각이 물씬 나면서도 이질감이 들어 약간 무서웠다. 나를 담당한 노란 머리의 안경 쓴 아줌마가 스펀지에 비누를 묻혀 온몸을 거품으로 덮어주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갑자기 구두솔(!) 같은 어마 무시한 브러시를 꺼냈다. (저걸 내 몸에.... 문지르는 건가.......) 연약한 동양인의 피부에는 걸맞지 않게 위협적인 브러시였지만, 아주머니를 믿고 묵묵히 누워있었다. 아줌마는 혹시 아프면 말을 하라고 했다. (이것도 왠지 한국에서의 때밀이 경험과 비슷하다.)


벅벅, 벅벅.

당연히 아팠다. 피부가 다 까질까 봐 너무 아프다고 엄살을 더 부렸다. 아주머니는 눈치 보면서 살살 비빈다고 비벼주는데, 나는 온몸의 감각이 즉각 위축되는 기분이었다. 근데 또 한국인의 DNA가 있어서인지, 받다 보니 약간 익숙해져서 피부가 벌게질 게 뻔한 시원한 기분도 들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솔질은 끝이 났고, 물세례를 받으며 비누&브러시 마사지 서비스는 끝이 났다. 당장 크림 마사지로 직행해서 피부를 위로받고 싶었으나, 목욕에 할당된 시간이 최대 3시간이었고 크림을 바른 뒤에 다시 몸을 적실 수는 없으므로, 크림 마사지는 제일 마지막에 받아야 한다고 직원이 알려주었다.


그다음으로 이어진 다양한 온도의 수많은 탕들도 나름의 입욕 순서가 있었다. [36도 탕 > 34도 월풀(마사지 효과) > 28도 운동 목욕(신체 순환) > 18도 냉수욕]으로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몸을 따듯하게 이완시켰다가 서서히 식혀가는 방식으로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목적에 따라 구성되어 있었다. 물에 담그기를 끝내고 나면 몸을 건조하며 식힐 수 있는 별개의 방이 있었는데, 얇은 전신 수건으로 누에고치처럼 몸을 돌돌 감싸고 침대 의자에 누워 있으니, 열이 내 몸에서 조금씩 호흡에 맞게 흘러 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간단한 차도 마실 수 있게 준비되어 있어서, 캐모마일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 방에는 쪽방처럼 바로 외부로 노출되는 작은 테라스가 있었는데, 수건을 감싸고 그곳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갑분 바깥. 차를 마시며 테라스 의자에 앉아 있으니, (수건으로 가리긴 했지만) 갑자기 헐벗은 상태로 길거리에 나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테라스 가까이까지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있다고 해도 그다지 신경 쓸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무심히 ‘저기 목욕 왔나 보다.’ 할 것 같은.)

테라스에서 내다 본 풍경


몸이 노곤노곤 풀어진 상태로 고대하던 크림 마사지 서비스를 받았다. 크림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크림이었고, 8분의 시간은 너무나 짧았지만, 어느새 내 마음은 몰래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니 벌써요? 좀만 더요..’


재미있게도 이 목욕 프로그램의 17단계에는 “수면 단계”도 포함되어 있다. 친절하게도 잠이 들면 무료 모닝콜 서비스도 해준다고 설명되어 있었지만, 나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고 판단하고 스파 체험을 마무리했다.


반전일지 모르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목욕탕에 가는 것이나 탕 안에 앉아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갔던 목욕탕 물은 늘 생각보다 뜨거웠고, 뭔가 오래 들어앉아 버텨야만 한다는 목적의식이 있어서인지 오랫동안 목욕을 하고 나면 좀 어지럽거나 숨쉬기가 힘들다고 느꼈던 게 컸다. 한국식 목욕은 그런 것 같다. 뜨거운 탕에 몸을 푹 담그고 오래 지지는 것. 어떤 피로나 불편함을 더 강한 자극으로 눌러내는 것. 그러면서 모든 감각이 리셋되는 효과.


그런데 내가 외국에서 경험하는 목욕은 전부 뭔가 했나 싶을 정도로 미적지근한 온도와 강도의 마일드한 것들이었다. (브러시 마사지 제외) 그리고 한 곳에서 오래 담그고 있기보다는, 미묘하게 다양한 온도에서 잠깐잠깐 몸을 토렴 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 부드럽게 자극해주는 것이 특징이었다. 근데 진짜 신기한 것은 이런 방식으로 한 듯 안 한 듯한 목욕 이후에 몸과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진다는 점이었다. 과정을 정확히 분석해내기는 어렵지만, 몸의 긴장이나 경직을 푸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면, 이건 마치 ‘외투를 벗기는 햇볕’ 같은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다.


입장권에 따라 주어지는 목욕 시간을 보면 알 수 있듯, 목욕 활동은 시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흘려보내면서 그 조용한 흐름을 느끼는 활동이다. 반 효율적으로, 더 천천히, 느긋하게, 편안하게, 여유롭게 보낼수록 그 목욕은 더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목욕이 럭셔리라고 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더 가진 자들만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관련 링크:

목욕 어디까지 해봤니, <비스바덴> 편

https://brunch.co.kr/@uniqueme/38


왜 이러고 있을까요?

프로젝트의 시작

https://brunch.co.kr/@uniqueme/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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