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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내 마음속 유토피아

제주가 나에게만 더 특별했으면 좋겠다.

by 언디 UnD

왜 글로 쓰고 싶은 것이 제주일까? 모두가 제주를 좋아하고 찾아가는데, 내가 무슨 특별한 점이 있다고.

나는 제주에서는 완전한 이방인도 완전한 생활인도 아니다. 이효리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더 자주 오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대구와 제주, 그리고 서울과 제주를 부지런히 오갔고, 1년에 세네 번은 제주에서 시간을 보낸 지가 10년이 넘었다. 언젠가 제주도 집 짓고 살겠다며 무작정 주민등록 주소지를 제주 할아버지 집 아래로 옮긴 기간도 몇 년이나 된다.


내가 제주에서 머무는 공간은 이제는 낡아버린 할아버지의 별장, 혹은 오래된 주택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지은 지가 20년이 넘었으니 집의 구조도, 부엌의 쓰임새도 낡고 엉성하다. 빵빵 터지는 와이파이는 없지만, 사실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대부분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아버지가 집안을 돌본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는 그 제주 집에 할머니는 혼자서는 가기 싫다신다. 꼭 고모나, 아빠, 혹은 며느리인 울 엄마를 데리고 가시게 되었다. 살아생전 우리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꼼꼼하고 사려 깊은 성격이셔서, 집에 놀러 올 사람들을 위해 모든 서랍과 찬장에 견출지 라벨을 붙여 친절히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안내해 놓으셨다. 테이블에는 더 이상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제주도 여행 책자와 제주도 지도가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손녀라는 이름으로, 값을 지불하지 않고 그곳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려왔다. 물론 제주 집에는 여느 호텔과 신식 펜션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여행지에서처럼 돈을 지불하면 모든 것이 자동이 되는 마법은 부릴 수 없고, 삶 속의 실제 노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곳에서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거의 동일하게 아는 마트에 가서 규칙적으로 장을 보고, 내일 아침 메뉴를 미리 고민하고, 끼니를 때울 요리를 하고, 청소와 빨래를 한다.


그냥 좋았다. 한 발 한 발 밟을 때마다 불편한 느낌이 드는 2층으로 향하는 오래된 나무 계단도, 보일러에 쓰이는 기름이 물리적으로 꼴깍꼴깍 채워야 하는 진짜 기름임을 알게 된 것도 제주였다. 겨울에 수도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현관 밖 바닥 깊은 곳의 밸브를 끄고, 수도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도, 집안에 각종 벌레가 그렇게 많이 살 수 있다는 것도, 아침에 건너집 닭소리로 잠이 깰 수 있다는 것도 제주에서 처음, 유일하게 알 수 있었다.


뭔가 불편하고 조금 부족한 듯한 집은 제주로 향하는 내 부담을 줄여줄 뿐, 사실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다.

집 밖을 나서기만 하면 각기 다른 계절, 날씨, 어제, 오늘, 내일마다 무심한 듯 달라지는 제주의 얼굴을 마주하는 장면 장면이 설렜다. 처음에는 바다가 참 좋았다. 양 사방이 다 트여있는 "섬"이라는 사실을 차를 타고 달리면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동, 서, 남, 북 어디로 가도 바다를 만난다. 그 파아란 안색과 밝음, 또 때때로 흐느끼는 듯 희뿌옇기도 하고, 해가 져야만 볼 수 있는 깊은 어두움의 빛깔까지 매혹적이었다.


그렇게 바다를 많이, 충분히, 보고 나면, 눈이 다른 데로 향한다. 바로 제주의 녹음이다. 서울로 돌아온 뒤, 제주를 떠올려보면 어느 순간부터 바다의 푸른 색감보다 비에 촉촉이 젖은 풀 냄새, 숲 속을 지키는 까마귀의 울음소리,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오래 두고 볼 정도로 너른 오름들의 살색깔이 스쳐간다. 내가 정말 싫어했던 비 오는 날씨조차 미소 지으며 걷게 만드는 제주의 초록빛 풍경. 그 초록을 사진으로 담으면, 언제라도 다른 곳과 헷갈릴 일이 없었다. 오직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색깔이다. 바다는 멀리서 보기에 적합한 풍경이라면, 초록은 가까이에서 자세히 바라보게 되는 소중함이다. 그 두 가지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서야 나는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 든다.


나는 제주라는 바다 시골을 사랑하는 육지의 한 여자다. 희한하게도, 내가 도시에서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너무 더운 날씨, 땀 흘리게 되는 강한 햇볕, 꽁꽁 얼어붙는 습한 추위와 바람까지도 '제주다움'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된다. 연애 관계에서도 오래 관계 맺어갈 상대라면, 상대방의 좋은 점이 아닌 단점까지도 보듬고 넘어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토록 제주를 열렬히 짝사랑하는 나의 마음에 제주는 조용하게, 한결 같이, 그러나 매번 다른 모습으로 반응해 주었다. 그 날의 한 조각, 한 조각을 기억하며, 재현하고 싶어 이 매거진을 시작해보려 한다.


2017년 8월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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