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길 다행이다

일상의 모든 활동이 기적이었음을...

by bigbird

살아가다 보면 기분 좋은 일도 있고, 잊고 싶은 일도 있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많이 있었다. 기쁘면 기쁜 대로 좋고, 슬픔도 슬픔대로 즐겨야 한다. 슬프거나 안 좋은 일이 있었을 때 버티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TV를 보며 깨달은 방법이다.


어린 시절 우연히 TV에서 본 애니메이션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한 장면. 하이디 아빠가 죽어가며 하이디에게 남긴 유언이 기억난다.


"하이디 야,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루 한번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한다. "

하이디는 그 후 어려운 일이 생겨서 힘들 때마다 이 말을 하며 밝게 살아갑니다. 많은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외친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내 나이 오십. 이 나이 되도록 잊지 못하는 걸 보면 인상 깊은 장면이었나 보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정말,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나서도 생각했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일상의 모든 활동이 기적이었음을...

언제 어디서든 재미를 찾아라.


재활훈련은 지루하고 힘들다. 매일매일 반복연습에 나아지는 모습이 안보이니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재미를 찾아서 운동을 해야 한다.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도록 재미를 찾아야 한다. 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운동하는 것이 좋다.


환자 중 대학생이 있어서 함께 운동을 하며 운동의 중요성과 꾸준함을 알아간다. 그와 이야기하며 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운동법에 대해 서로 교류하며, 매일같이 일과가 끝나고 지하(자율 운동실)에서 봤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유사 질병 환자끼리 서로를 위로한다. 그건 커다란 위로와 치유가 된다.


재활 치료사와 친하게 지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재활 치료사를 친분을 쌓고 알아가는 것,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커다란 재미가 된다. 처음부터 이 직업을 원하는 이도 있었고, 하면서 이 직업의 장점을 알아가는 이도 있었다. 대부분은 직업인으로서 봉사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직업의 특징은 봉사정신이 없으면 많이 힘들 것 같다. 대부분 치료받는 분들이 나이 많으신 분들이라 더욱 그러하다.


“기가 빨리는 것 같다.” 나이 든 노인분 들을 치료하다가 나를 치료하러 온 재활치료사의 말이다. 노인분 들은 움직이길 싫어하신 분도 계셔서 계속 치료하기가 어렵단다. 그러다 보면 주물러 주다가 치료시간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것에 익숙해진 분들은 치료시간에 계속해서 주물러 주길 바란다고 한다.


같은 공간에서 치료를 함께 받다 보면 어느 치료사가 어느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한 치료사가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를 치료하는 중이었다. 할아버지의 걷기 연습을 도와 보조하며 걷게 하신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기우뚱하시더니 쓰러질 뻔하신 거다. 어린 치료사가 온몸으로 바닥에 부딪칠 뻔 한 할아버지를 받아내고는 한숨을 내쉰다. 많이 놀랐던지 울음을 터트린다.


재활병원에 있는 것은 지루하다. 지루한 일상. 반복된 재활 연습. 간혹 일상 속 사건들. 그 지루함에 매몰되면 안 되고 의지를 가지고 하루하루 반복된 생활 속에서 재미를 찾아야 한다. 빠른 재활훈련을 통해 얼른 일상으로 복귀할 생각을 해야 한다. 재미를 느끼면 일상이 지루하지 않다. 또한 재미를 느끼면 운동에도 집중하게 된다.

나의 커피 친구


젊은 나이에 고층아파트 페인트칠하다가 떨어져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친구가 입원했다. 38세 젊은 나이의 그 친구는 떨어지며 죽는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자전거를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보호막 위에 1차로 떨어진 뒤 반동으로 바닥에 떨어졌다고 한다. 허리에 철심을 박고 다른 곳은 이상이 없다고 한다. 허리 재활을 위해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나의 병세가 조금 호전되어 간병인이 필요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그 친구가 있는 병실로 옮겼다. 활동에 큰 지장 없는 환자가 있는 병실. 간병사가 없는 병실. 내가 그래도 많이 좋아졌나 보다. 간병인이 없이도 활동이 가능한 방으로 옮겼다는 것이.


그 친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했다. 점심을 먹고는 자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같이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병원 밖으로 나가 가까운 커피숍으로 향하곤 했다. 살아온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나누며 친하게 지냈다. 그가 좋아하는 재활치료사가 있었다. 그 치료사에게 초콜릿도 사주고, 좋아하는 표현도 하며 재미있게 보냈다. 퇴원해서 사귀다가 헤어졌다고 한다. 나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거의 띠동갑 차이가 났으니...


이렇게 병원에서 재미를 찾아 치료를 계속할 수 있게 해 나가야 한다.

일상이다. 치료를 위해 만났지만, 병원생활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완치가 되어 나가는 사람도 있고,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이도 있다. 계속해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 재활병원. 치료 선생님이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환자가 오면 호기심이 많이 발동한다. 젊은 치료사의 경우 젊은 환자가 오면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 같다.

일상의 모든 활동이 기적이었음을...


아~ 혼자 씻을 수 있다면. 혼자 화장실 갈 수 있다면.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하는 아픈 사람의 가장 큰 소망은 화장실 가서 볼일 보고 혼자 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도움 없이 혼자 화장실 가는 것과 혼자 씻을 수 있는 행복.


가장 원했던 것은 혼자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생리현상을 혼자서 해결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처음에 쓰러지고 나서 조치 후 중환자실에서는 소변 줄을 차서 소변은 해결했으며, 대변은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다행히 2박 3일 동안 대변은 보지 않았다. 소변은 몇 번 봤었다. 소변을 보면 줄을 타고 통에 저장하는 방식이었다.


일반병동으로 내려와서는 간병인을 불렀다. 처음엔 남자 간병인을 찾아 불렀다. 같은 성별이 편하다는 생각으로 아내의 배려였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일이 벌어졌다. 대변검사를 위해 간병인이 나를 화장실로 앉혀줬다. 대변을 보고 검사 용기에 변을 담기 위해 일어서려다 넘어진 것이다. 나는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나가 있으라고 했으며, 변을 보고는 다시 불러서 일으켜 달라고 했었어야 했는데, 그게 좀처럼 안 된 것 같다. 내가 해보려고 하다가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안았지만, 내가 느낀 충격은 컸다. 혼자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가능하리라 생각했으나, 가능하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남자 간병인은 볼 수 없었다.


그 일이 있게 된 후 여자 간호사 출신 간병인으로 바꿨다. 60대의 간병인은 자신은 간호사 출신이고, 간병 경험이 많다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줬다. 간병인이 화장실 안에 들어와서는 바지를 내려주고, 용변을 본 후에는 장애인 화장실에 있는 보조기구를 잡고 스스로 뒤 처리를 할 수 있었다.


이것을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는 한쪽이 마비된 환자는 중심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활동에서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하며, 혼자 스스로 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간병인이 없는 방으로 바꾸고 나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샤워하는 기쁨을 만끽했다. 느리지만 천천히 옷을 벗고 샤워기의 물을 틀고, 왼쪽 한쪽에 의지한 채로 샤워를 하는 즐거움. 이건 기적이다.

일상의 모든 활동이 기적이었음을...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큰 행복이었음을 나는 쓰러지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 모든 일. 아주 사소한 일들까지도 포함해서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아주 큰 행복임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내겐 축복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걸어 다니는 것. 너무도 행복한 일임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아무 도움 없이 용변을 보고 뒤처리를 하는 것. 이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혼자 씻을 수 있다는 것. 이만큼 행복한 것은 세상에 없으리란 걸 나는 깨닫게 되었다.

뛰는 것은 더 말해 뭐하나?

보는 것, 듣는 것, 만지고 느끼는 것. 이것은 세상의 행복임을 깨닫게 되었다.

먹는 것, 삼키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의 행복임을 알게 되었다.


장애가 있다는 것은 많이 불편하다. 처음에는 멀쩡하게 살다가 뒤늦게 장애를 만나게 되면, 처음 장애가 없던 삶이 기적이었음을 알게 된다.


“인생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모든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커다란 행복이었음을 나는 쓰러지고 나서야 알게 됐다. 나는 기적의 삶을 살고 있었음을 쓰러지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 모든 순간, 살아온 나날의 일상생활 그 모든 순간들이 기적이었음을...

이전 04화의사는 80% 회복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