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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Nov 27. 2023

12,000원이면 저녁 집밥으로 충분해

그 남자의 요리생활



집밥은 맛없어도 맛있다. 말도 안 되는 말 같지만 말이 된다. 집에서 먹으면 다 맛있기 때문이다. 집 밖을 나가서 좋은 식당엘 가면 훌륭한 음식이 차고 넘치지만 그래도 집밥을 쳐준다. 나를 위해서든 가족을 위해서든 음식을 먹는 사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만들면 라면도 계란후라이도 맛있다.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먹는 사람인지 누구인지를 서로 잘 안다는 것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음식 몇 가지가 집밥이라는 이름 위에서 맛 이상의 무언가를 발휘할 수 있게 해 준다. 가족이 해주면 봉지 뒷면 조리법 대로 끓인 라면도 맛소금 안 뿌린 계란후라이도 정찬이다. 


주중에 집밥 만드느라 지친 아내를 위해서 나는 기꺼이 주말 집밥 마스터가 된다. 부부는 집밥을 서로 만들어 먹여주는 사이다. 먹는 입이라는 뜻의 식구라는 말이 이럴 때 찰떡이다. 평일엔 평일답게 아내가 한식을 차려내고, 특별한 주말엔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음식을 내가 한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가까운 동네 전통시장을 찾았다. 제로페이 수산대전 상품권 남은 것이 있어서 유효기간이 지나기 전에 털어야 했다. 잔고를 조회해 보니 딱 1만 2천 원이 남았다. 해산물을 파는 가게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이라 딱히 다른 집을 둘러볼 필요도 없지만 시장이 어디 그런 곳인가. 일자로 쭉 뻗은 시장을 눈요기와 운동 삼아 쭉 훑는다. 그러다가 핫도그도 하나 얻어먹었다. 곧 저녁 먹을 건데 무슨 간식이냐며 눈을 흘기지만 없는 애교를 발사해서 쟁취한다.


저녁거리로 무슨 해산물을 살까? 만이천 원이면 될까? 오징어는 없고 만만한 게 바지락이고 새우였다. 뭘 해도 크게 실패할 리 없는 재료니까. 바지락은 키로에 6천 원, 새우는 15마리에 6천 원이었다. 상품권 잔액에 딱 맞췄다. 바지락은 껍질 무게를 감안해도 1킬로면 제법 양이 많고 새우 15 마리면 둘이 먹어도 충분하다. 거의 다 큰 애들은 각자 바쁜지 우리랑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지. 바지락 하고 새우면 딱히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 집에서 지겹게 해서 먹어서 집밥의 반열에 당당히 오른 메뉴가 있다. 바지락(가끔은 홍합)술찜과 본명이 좀 길어서 감바스(새우)라고 아주 직설적인 이름으로 이 땅에서 불리는 감바스알아히요(마늘과 함께 한 새우)이다. 


이게 무슨 밥이냐고 하겠지만 밥은 쌀로 안친 음식을 뜻하기도 하지만 끼니라는 말도 되니까 이것도 우리 집에선 집밥이다. 아무렴 집에서 만든 끼니니까 집밥이고 말고. 레시피는 특별한 건 없고 기본적인 콘셉트는 “마늘 많이, 올리브유 많이”이다. 한 줌은 될 법한 많은 마늘을 편으로 썬다. 한쪽에 서너 편 정도 나오게 썬다. 막 썰다가 양이 많아져 여기가 식당인가 싶을 때쯤 끝난다. 대파도 대충 몇 조각 썰어 놓는다. 바지락은 해감을 해두고 새우는 껍질을 깐다. 대가리도 은근히 맛있어서 투구처럼 튀어나온 껍질을 벗기고 속살(!)은 취한다. 먼저 감바스(알아히요)부터. 중간 사이즈의 팬에 올리브유를 충분히 붓고 마늘을 자박하게 끓이듯이 볶는다. 그 사이에 다른 팬에서 새우를 겉이 노릇할 때까지 익힌다. 한꺼번에 하는 거 아니냐고 하겠으나 이것은 우리 집밥이므로 내 맘대로 한다. 원래 레시피를 모르는 바 아니나 겉을 좀 지져서 더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새우가 다 익으면 마늘이 끓고 있는 팬에 새우를 넣기만 하면 된다. 소금과 후추, 집에 있는 아무 허브나 집어 대충 간과 향을 더한다. 


바지락술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큰 궁중팬에 기름을 충분히 두르고 마늘과 대파를 볶는다. 마늘이 노릇해지기 시작할 무렵 해감한 바지락을 넣고 마구마구 섞으며 볶는다. 말이 볶는다는 것이지 조개껍질이 볶아져서 특별한 맛을 낼 리는 없고 뜨거운 열로 조개의 입을 벌리게 한 다음 그 속으로 올리브유를 공급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즈음 요리술이든 화이트와인이든 조금 붓고 한 김 날려준다. 뚜껑을 덮은 다음 조개가 완전히 항복한 듯 속을 드러낼 때까지만 기다리면 된다. 스팀의 힘은 생각보다 강해서 너무 오래 조리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는 소금이 필요 없고 취향에 맞는 허브만 좀 더해주면 된다. 우리 집에선 말린 로즈메리를 많이 쓴다. 


그렇게 해서 저녁 밥상을 차렸다. 탄수화물은 얼마 전에 만들었다가 냉동실에 넣어둔 바게트로 보충하기로 한다. 플레이팅을 하는 동안 아내는 버터와 블루베리잼, 그리고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맥주를 세팅했다. 양은밥상 위에 올라간 남의 나라 요리인 바지락술찜과 감바스알아히요(니가 스페인서 와서 고생이 많다)로 일요일 저녁 집밥이 차려졌다. 


아이들이 우리와 밥을 먹는 횟수가 점점 적어지는 요즘 우리 부부의 저녁 밥상은 조금 적적했지만 쓸쓸하지 않았고 단출했지만 보잘것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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