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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Feb 06. 2022

이것은 술상인가 밥상인가, 밥상인가 술상인가

우리집에서 주말에 먹는 음식 빤하다. 시켜 먹는 일이 잦지 않다. 주말에는 주로 내가 음식을 한다. 학원 스케쥴이 다른 아이들의 끼니를 해대느라 아내는 주중에 바쁘다. 하루에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지겨울 만도 한데 아내는 매일 조금씩 메뉴를 바꿔 가면서 변주를 꾀한다. 아이들의 식성이 서로 달라 단일 메뉴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아이들이 입에 맛는 음식을 먹고져 할배 이셔도 마참내 제 입맛을 시러 펴디 못할 노미 하니 이를 어엿비 여긴 아내는 아이들 맞춤형 밥상을 차리는 데 에너지를 많이 쓴다. 주말에라도 주방에서의 동선을 가볍게 해주어야 한다.


수산물 제로페이 사용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오랜 만에 강서 수산시장엘 다녀왔다. 뿔소라, 꼬막, 홍합, 새우, 알탕재료, 멍게, 오징어, 마른 멸치, 마른 디포리, 오징어진미채를 샀다. 이렇게 많이 샀는데도 10만원을 못 썼다. 좋은 재료로 푸짐한 저녁상을 차리는 것은 나의 몫이다. 토요일에는 멍게와 뿔소라 삶은 것, 새우로 만든 감바스 알 아히요를 해 먹었다. 아내는 늘 그랬듯 맥주를 곁들였고 나는 동네 빵집에서 사온 빵으로 밥을 대신했다. 일고여덟 가지 요리를 해 먹는 수년 전을 그리워 하며 아내는 양이 줄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나이가 들면 뱃골도 작아지고 소화능력도 떨어지는 것 같다.


일요일 저녁은 술상인지 밥상인지 모를 상을 차렸다.

알탕, 홍합찜, 뿔소라야채무침, 삶은 꼬막, 오징어 진미채 볶음, 통밀빵, 새우대가리구이, 먹다 남은 치킨.

이 모든 요리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감바스 알 아히요를 하고 남은 새우 대가리는 아무런 간을 하지 않고 오븐에 넣었다. 180도 정도에서 40분 가량 돌리면 바삭한 새우대가리깡이 된다.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맥주를 절로 부르는 맛이라고 한다. 그냥 먹어도 간식으로 딱이다.


배추와 양파가 있어서 겉절이처럼 무치기로 했다. 어제 먹다 남은 삶은 뿔소라를 얇게 썰었다. 골뱅이무침이다 생각하면 된다. 배추는 어슷썰기로 채치고 양파도 채썰었다. 무슨 무침을 하면 오이, 당근이 주로 들어가는데 배추도 좋은 선택이다. 달고 고소하다. 간은 어려울 것이 없다. 간장, 고춧가루, 식초, 설탕, 다진 마늘, 참기름, 볶은 통깨를 적당량(이게 제일 어렵지만) 넣고 잘 무치면 된다.


홍합찜은 언제 만들어도 실패가 없고 맛있다. 홍합 한 봉지 기껏해야 2~3천원 정도니 가성비가 최고인 음식. 궁중팬에 올리브유를 충분히 두르고 다진 마늘과 채썬 파를 달달 볶는다. 마늘향이 훅 올라오면 잘 손질하고 물을 잘 뺀 홍합을 넣고 들들 볶는다. 홍합이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화이트 와인이나 청주를 붓고 뚜껑을 덮는다. 5분 정도 찌면 끝이다. 취향에 따라 허브 종류를 넣어도 좋다. 쉬워도 너무 쉬우니 한 번 도전해 볼 만하다. 실패하면 어때? 그래봐야 피해자는 나와 내 가족 몇 명이며 날린 돈은 기껏해야 수 천원이다. 홍합껍질을 일반 쓰레기다.


꼬막은 그냥 잘 삶으면 된다. 너무 오래 삶지만 않으면 된다. 양념장을 만들어서 끼얹어 먹어도 되는데 우리집은 대개 그냥 쏙 빼서 먹는다. 소위 본연의 맛을 그대로 즐겨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오징어진미채 볶음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오징어의 질겅질겅한 질감도 좋고 고추장에 매콤하게 버무려진 맛이 좋다. 밥 도둑이 아니라 그냥 도둑이다. 오징어채인데 참다운 맛이라는 뜻의 진미채라는 이름을 붙어 있는데 작명가의 통찰력(!)에 박수를 보낸다. 순전히 내 입맛에 그렇다는 뜻이다. 가위로 좀 듬성듬성 미리 잘라 줄 필요가 있다. 젓가락으로 집어 먹다 보면 줄줄이 딸려 올라와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는데 가위질 몇 번으로 이런 상황을 쉽게 벗어날 수 있다. 이 역시 궁중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너무 세지 않은 불에(이게 의외로 빨리 탄다. 마르고 가는 솔기같은 부분이 그렇게 된다.) 노릇하게 익힌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오징어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 고추장과 물엿을 넣고 섞어서 물처럼 녹인다. 약불에서 잘 섞어주다 보면 아이보리색이 어느새 투명한 빨간색이 된다. 취향에 따라 볶을 때 버터를 넣어서 녹이면 파는 맛이 난다. 밥도 부르고 맥주도 부르는 맛이다.


알탕 재료를 사면 알, 곤이, 오만둥이를 준다. 나는 그 중에서 곤이를 제일 좋아한다. 알은 작은 딸 차지다. 다른 재료로는 무, 대파, 마늘이면 된다. 무는 나박썰기를 하고 대파는 어슷썰끼를 한다. 마늘은 다진다. 냄비에 식용유를 조금 두르고 무를 볶는다. 무 표면이 살짝 타는 듯해도 괜찮다. 그리 쉽게 타지 않는다. 무에 물이 얼마나 많은데. 무가 전체적으로 투명해 지면 고춧가루를 넣고 볶는다. 불향이 조금 난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면 그만 볶고 물을 붓는다. 알탕 재료를 넣고 끓인다. 다진 마늘도 넣고 대파도 넣고 끓인다. 간은 멸치액젓, 조선간장으로 한다. 조금씩 넣다가 맛을 보면서 양을 조절한다. 푹 끓일수록 무에서 단내가 올라온다. 콩나물을 넣고 싶으면 미리 안 넣는 게 좋다. 콩나물 오래 끓이면 파뿌리처럼 얇아진다. 아삭함으로 먹는 재료에 질김만 남으니 뭐가 좋겠는가.


먹다 남은 치킨과 빵은 오븐에 데우면 된다. 그렇게 차린 한 상을 아무렇게나 담고 양은밥상에 올리니 이게 밥상인지 술상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사실 밥상이기도 하고 술상이기도 했다. 나는 밥을 먹었고 아내는 술을 먹었으니까. 이렇게 한 상 거하게 먹고 나면 주말에 끝난다. 오늘 하루도 잘 먹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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